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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바르셀로나 그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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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르셀로나 몬주익은 참 독특한 지역이라는 생각이 든다. 가장 높은 곳에는 '몬주익성'이 자리 잡고 있어 바르셀로나 시내와 지중해를 훤히 내다볼 수 있다. 외세의 침입에 맞선 전쟁과 내전의 흔적이 남아 있는 곳이지만, 바르셀로나 최고의 전망대 역할에 손색이 없다. 94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경기장도 있고, 주변에는 오래된 나무들이 숲을 이루며 여유로운 산책코스도 많다. 또한, 동절기(12월, 1월, 2월)를 제외하고 거의 밤마다 열리는(월별로 분수쇼의 요일과 시간이 상이하여 홈페이지 확인이 꼭 필요!) 매직 분수쇼로 평일에도 축제의 분위기를 맛볼 수 있다. 까만 밤을 화려하게 밝히는 다채로운 색상의 분수가 음악에 맞춰 하늘로 거대한 물줄기를 퍼 올리는 장관은 평생 잊지 못할 추억이 된다. 

이에 못지않게 몬주익에 들러야 하는 또 다른 이유는 '호안 미로 미술관'과 '카탈루냐 국립 미술관'이다. '카탈루냐 국립 미술관'은 사실 카탈루냐의 역사를 거의 모르고 예술도 거의 아는 것이 없다 보니 '일부러' 찾아가려는 일정은 아니었다. 다만, '반드시 갈 일정'으로 계획한 '호안 미로 미술관'의 지척에 있다는 이유, 카탈루냐를 대표하는 '국립' 미술관이라는 상징성, 바르셀로나 카드를 소지하면 '무료'입장이라는 어드벤티지 때문에 '잠시라도 들러는 보겠다고'  계획한 곳이었다. 여러 여행 안내서에서 '꼭'봐야 한다고 추천한 '세 점의 작품'을 찾아볼 생각이었다. 카탈루냐의 Taüll이라는 지방에 있는 성당(산 클리멘트 성당)에서 그대로 옮겨온 프레스코화 <전능한 그리스도>가 1번 목적이다. 벽에 그려진 그림을 어떻게 떼내어 어떻게 보존, 전시하는지 궁금했다. 또한, 이곳에는 카탈루냐를 대표하는 화가 '라몬 카사스'의 작품들이 무수히 많다. 그중에서 제일 유명한 <자전거를 타는 카사스Ramon Casas and Pere Romeu on a Tandem>를 찾아볼 것이며, 그의 다른 그림들도 근처에 있을 테니 몇 점 더 볼 생각이다. 세 번째 기대작품은 가우디가 만든 가구이다. 바르셀로나 도착하자마자 찾아갔던 구엘 저택과 레이알 광장의 가우디 가로등, 하루를 통째로 '가우디 투어'에 할애하여 바르셀로나 내 가우디 건축물은 거의 다 보았지만, '가구'라고 하면 또 다르다. 가우디의 후원자였던 구엘이 가우디에게 반하게 된 첫 계기는 가우디의 건물이 아니라 '책상'이었지 않나? 이 세 가지 미션 말고도 카탈루냐 미술관 '건물 자체'를 가까이서 보고 싶었다. 바르셀로나 여행 관련 책자 어디서나 에스파냐 광장에서 정면으로 높은 위치에 웅장하게 서 있는 카탈루냐 미술관을 볼 수 있다. 위압적인 규모에 비해 섬세한 화려함이 느껴졌던 이 건축물을 직접 보고 싶었고, 그곳에서 바라보는 바르셀로나의 모습이 어떨지도 궁금했다. 입구 앞 테라스의 카페를 강추하는 책들도 있어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며 여유 있게 쉴 수 있는 공간'으로서 미리 찜해두었다.


카탈루냐 국립 미술관은 어떤 의미에서 '국립'이고, 어떤 방식으로 카탈루냐를 대표하고 있을까? 1929년 바르셀로나 만국박람회에서 핵심 건물이었고 '국립 대저택(또는 궁전)'이라 이름했다가 박람회가 끝나고 미술관으로 개조했다. 로마네스크, 중세고딕, 르네상스를 아울러 현대에 이르기까지 시대양식별로 카탈루냐 예술품 위주의 전시를 하는데, 소장품과 전시물의 규모가 엄청나며 특히, 로마네스크 시대의 종교 예술 전시로는 세계 최대 규모라 한다. 그러나, (미안하게도) 카탈루냐와 스페인의 역사와 예술사를 잘 모르고 큰 관심이 없는 데다 시간도 여유롭지 못한 나로선, 작품들이 아무리 시대별로 잘 전시되어있다 하더라도 별다른 감흥이 없을 거라 별 기대 없이 찾아갔다. 호안 미로 미술관 바로 앞에서 150번 버스를 타면 금방 도착. 내린 곳에서 길을 건너 오른쪽으로 걸어가면 곧 카탈루냐 미술관의 옆모습이 드러난다. 위치가 높은 곳이라 미술관 주변에는 미술관 관람과 상관없이 많은 사람들이 여기저기 앉아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다. 가장 먼저, 미술관 앞 테라스에 서서 매직 분수대와 베네치아 탑이 저만치 보이는 에스파냐 광장 쪽의 전경을 봐줘야 한다. 제법 높은 지대라 에스컬레이터도 설치되어 있다. 우리처럼 호안 미로 미술관 또는 더 높이 있는 몬주익성에 먼저 갔다가 버스를 타고 내려오지 않고, 에스파냐 광장쪽 아래에서부터 올라온다면 상당히 힘든 걸음이 될 것 같다. 입구 앞, 테라스의 카페는 전망은 좋으나 이렇다 할만한 분위기를 갖춘 곳은 아니라, 카페라기보다는 매점에 가까웠다(조금 실망). 바르셀로나 카드로 입장, 홀부터가 으리으리하다. 대저택의 위용 그대로이다. 그러나, 바로 문제에 직면. 이 넓디넓은 곳에서 프레스코화, 라몬카사스 그림, 그리고 가우디의 가구를 어떻게 찾아낸담? 일단 안내도를 편다. 다행히도, 세 작품 모두 이곳의 대표작이라 위치가 그림과 함께 잘 나와 있다. 우선, 스코화 <전능한 그리스도>를 비롯한 산 클리멘트 성당에서 옮겨온 작품들은 0층의Medieavl -Romanesque Art구역 ROOM7, 안내도상 가장 깊은 곳에 있다. 총총걸음으로 출발.  

 

 


겹겹이 문을 열고 전시장으로 들어서는데 외부와는 달리 너무 어둡다. 깊이 파놓은 굴로 내려가는 듯하고 관람객도 너무 없어 슬슬 무섭기까지. 벽의 그림들은 모두 종교화인 것 같고, 색채도 어둡고 선도 굵직굵직하여(크기도 얼마나 큰지) 스산한 엄숙함이 사방을 뒤덮고 있다. 우리가 찾는 프레스코화가 전시된 ROOM7은 한참을 가고, 더군다나 계단을 내려가서 저 깊은 곳에 있다. 창문도 없고 어둡고 으스스한 전시실, 군데군데 등이 켜져 있고  전시실 직원들이 여기저기 서 있긴 하나 무섭다. 으슥한 곳 벽하나 전체를 차지하고 있는  <전능한 그리스도>, 드디어 그 앞에 서서 자세히 들여다본다. 12세기 작품이라는 희소성, 먼 곳에서 그대로 옮겨왔다는 믿기지 않는  '전설'이 깃들인 작품이다. 21세기를 살고 있으며 거기에다 지구 반대편에서 날아온 내가 이 그림을 올려다보고 있는 이 순간, 바로 대단한 '사건'이 되는 셈이다. 그림의 기법은 잘 알지 못해도 궁금하던 작품을 애써 찾아, 결국 보게 되었다는 사실이  그 자체로 감동이 되고 또 하나의 선물이 된다.


애써 감흥을 거두고, 두번째 미션을 수행하러 다시 걸음을 재촉한다. 왔던 길을 잘 찾지 못하여 아무 데나 문이 있는 곳으로 막 나왔더니, 희한하게 넓고 둥근데 아무것도 없는 운동장 같은 공간이 툭 튀어나온다. 그런데 이상하리만큼 너무 아름답다. 아들과 나, 서로 얼굴을 쳐다보며 '여기가 뭐 하는 곳인지?' 의아해한다. 안내도를 보는데, 문제는 우리가 안내도상 어디에 서 있는지 모른다는 점. 청중석처럼 사방에는 계단식으로 앉을 자리가 마련되어 있고 장식이 가득한 기둥과 아치들이 공간을 안고 서 있으며 천장으로 둥글게 올라가는 벽들이 가히 아름답다. 오르간이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천장도 무슨 작품처럼 아주 화려하게 장식되어 있다. 예사롭지 않은 곳 같으나, 용도가 무엇인지 알 수 없다. 한 편에는 카페가 있는데, 아까 지나온 테라스의 카페보다는 훨씬 카페 다운 분위기이다. 마침 이 카페 앞에 안내 직원이 있다. 달려가서 다짜고짜 안내도의 가우디 의자를 보여주며 이 전시실에 어떻게 갈 수 있는지 문의했다. 왼쪽으로 보이는 유리로 된 엘리베이터를 타고 바로 한 층위에 내려 바로 문 열고 들어가라며 친절히 안내해준다. 내 귀에 매끄러운 영어였다. 이 공간에 대한 설명인듯한 글을 일단 사진으로 찍어 나중에 읽어보니, 이 특이하게 아름다운 공간의 이름은 'Oval Room'.1929년 만국박람회 당시 개회식이 열렸던 역사적 장소였다. 이 화려하고 웅장한 아치들은 스페인의 여러 다른 지역들을 나타내며 오르간같이 생긴 것은 진짜 오르간이 맞다. 유럽 내 민간 용도로는 가장 규모가 크며, 이 미술관 내에서도 가장 큰 공간으로서 다양한 종류의 행사에 쓰인단다. 미술관 내 주요 작품들을 검색할 수 있는 터치스크린도 한편에 설치되어 있고. 이그런데, 이렇게 넓은 공간에 냉난방은 어떻게 가능한지 궁금하다. 


두 번째 미션인 라몬 카사스의 작품과 가우디 작품의 위치를 파악해야 한다. 우선, <자전거를 탄 라몬 카사스>는 ROOM54에 있다. 저 구석 ROOM54를 향해 ROOM39에서 시작한다. 넓은 박물관, 미술관을 관람할 때는 처음에는 이 안내도라는 map이 눈에 잘 들어오지 않아 무조건 길을 잃는다. 그러다가 시간이 차차 지나면서 실내의 구조와 분위기가 이 길 잃은 자를 감싸며 방향감각의 안테나를 잡아준다. 관람안내도를 손에 들고도 이리 갔다 저리 갔다 우왕좌왕하는 내 모습, 처음에는 바보 같고 열불 터졌지만(루브르 박물관 드농관에서 갈피를 못 잡았던 첫 30여 분을 생각하면 지금은 웃음이 나오지만 그 순간에는 식은땀을 흘리며 스스로를 자책하고 있었다) 경험이 누적될수록 여유가 생긴다. 어차피 처음 온 곳이고 안내자가 옆에 붙어 다니는 것도 아니니까, 안내도가 알려줘도 못 찾아가는 것이 당연하다. 그래도 당황하지 말고 '느긋이 길을 헤매면' 곧 내 오감이 알아서 방향감을 터득하고, 곧 내 발이 가야 할 곳을 가게 되어 있다.

Room 39부터 쓱쓱 걸어가는데 자연스럽게, 이런 말이 생각났다. 하나도 아는 게 없이 나섰는데 기대 이상의 발견의 하는 경우, 여행에서 보석 같은 순간이라는 말. 우리처럼 이 미술관의 작품에 대해 거의 하나도 모르고 달랑 세 작품만 보겠다고 달려온, 사전 준비가 전혀 안된 여행자에게 '우연에 의한 대박'의 순간이 있다니 고마울 따름이다. 뭉크라고 화가의 이름이 적혀 있는데, '절규'와는 너무 달라 보이는 그림이라 발길을 멈춘다. 이런 '평범한' 그림도 그렸는지 몰랐다. 이건 또 무슨 횡재인지! 정작 프라하의 '알폰스 무하 박물관'에 갔을 때는 삼엄한 감시와 엄중한 경고로 인해 그 여리여리 화사한 그림들(사실 알폰스 무하의 고국에 세운 그의 '박물관'이라고 하기에는 소장 규모가 소박하여 당황스러웠다. 카프카 박물관도 방문하면 두 박물관 중 한 곳에서 50퍼센트의 할인을 받을 수 있다는 한 가지 장점은 있었다)을 한 점도 사진으로 담지 못했는데( 화보집만 3만 원 정도에 구매!) 바로 여기 그 그림들이 있다. 알폰스 무하의 그림들을 바르셀로나에서 마음껏 사진을 찍고(넘사스러운 셀카까지 과감하게) 관람객이 거의 없는 여유 속에 가까이서 볼 수 있다니! 로트렉의 귀여움 넘치는 포스터 같은 그림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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