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원한 8일 en Paris(2018)

eternity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9.2.12
생테티엔 뒤 몽 성당 Saint-Etienne-du-Mont 과 팡테옹Pantheon은 거의 옆집처럼 붙어있다. 메트로 4호선 생제르맹 데프레 역 부근에서 버스를 타고 라탱 지구로 건너온다. 내가 파리에서 다녀 본 지역 중 가장 한적한 동네인 것 같다. 나도 여행객이지만, 여행객이 몰려다니는 곳은 피하고 싶고, 아무리 정신없이 쏘다는 여행을 좋아하더라도 가끔은 이처럼 여행객도 없고 다니는 사람조차 잘거의 없는 곳에서 '휴우' 숨통을 터주어야 한다. 버스에서 내려 팡테옹까지 걸어가는 길은 조금 오르막이다. 거리의 좌우로 카페들이 즐비하고 예쁜 꽃집도 있다. 팡테옹이 보이면서 주변은 다시 활기를 띠기 시작, 여행객이든 방문객이든 갑자기 사람도 많아졌고 파리의 어디서든 익숙한 풍경이 돼버린 공사현장을 여기서도 볼 수 있다.
한적한 골목을 오르면 커텐이 열리듯 스르륵 팡테옹이 나타난다
팡테옹에 앞서, 생테티엔 뒤 몽 성당을 먼저 찾는다. 대부분의 성당이 예배때가 아니면 일주일내내 문을 열러 두고 있는 것과 달리, 이 성당은 월요일 휴무이다. 여러 상황상 월요일에 라탱지구와 생제르맹 데프레를 둘러 보기한 우리는 따라서, 성당 안을 볼 수 없다. 성당이 문을 닫지 않아도 아마 성당 안보다 바깥에 머무는 시간이 더 길 것이다. 바로 그 유명한 '계단'때문이다. 파리에 대한 또 한 편의 송가라 할 만한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 파리에서 이름난 장소는 거의 모두 보여 주여 파리라 하면 자동적으로 링크되는 영화이다. 이 영화를 보면서 화려하거나 대단한 볼거리가 아닌 것 같은데 유독 강하게 와닿는 곳이 있다. 주인공 '길'이 밤늦게 파리에서 길을 잃어 우왕좌왕하다가 이내 곧 자유를 느끼며 아무렇게나 파리의 밤거리를 걷는다. 계단에 앉아 이 자유를 만끽하는데, 밤 12시가 되고 이를 알리는 종소리가 울리자 갑자기 (요즘의 스타일이 아닌) 자동차 한 대가 등장. 운전사는 '길'에게 다짜고짜 타라고 소리치고, '길'은 뭐에라도 홀린 듯 차에 오른다. 순간, 시공간의 이동이 이루어진다. F. 스콧 피처츠럴드. 헤밍웨이, 거트루드 스타인, 피카소 등이 활동했던 시절의 파리로 이동---작가인 '길'에게 인생을 바꾸어 줄 판타지가 시작된다.
정면파사드의 계단를 중심, 좌우로 계단. <미드나잇인파리>의 계단은 왼쪽으로 꺾어들어가야 있다.
밤 12시, 은은히 퍼지는 종소리와 함께 아름다운 시공간으로의 이동이 시작된다.
좋아하는 영화의 명장면을 연출했던 실제 장소에 도착했다는 즐거움에 빠릿빠릿 걸어간다. 예상했던 것보다 성당은 훨씬 높다. 휴관일이라 성당 주변도 조용하여 영화의 감동을 떠 올리며 행복해하기에 딱 좋은 환경이다. '길'이 여유롭게 앉아 있던 계단, 어느 계단이더라?! 내 눈에 보이는 계단은 4개이다. 어느 여행안내서에서 '왼쪽 계단'이라 콕 짚어주었는데, 왼쪽으로 계단이 두 군데 있다. 오른쪽-왼쪽을 구분한 걸로 보아 성당의 입구로 연결된 중앙계단을 기준으로 좌,우로 자리잡은 두 계단 중 왼쪽 아닐까,라고 생각하여 일단 이 계단을 공략한다. 여러 번 오르내리며 앉았다 섰다 해본다. 그런데, 뭔가 좀 이상하다. 영화에서 자동차가 생뚱맞게 다가온 자동차로 '길'이 걸어가던 상황을 떠올려보니 거리랑 각도가 좀 아닌 듯하다. 혹시 헛발질하고 있을까 봐, 이런 만일의 사태를 대비해 저장해 두었던 영화의 '길'이 계단에 앉아 있던 장면을 불러낸다. 큰일 날 뻔했다! '길'이 앉은 계단에는 쇠로 된 난간 손잡이가 보이는 것을 포착, 우리가 사진 찍으며 야단을 부리는 이 계단에는 난간손잡이가 없다. 즉 성당의 입구계단을 중심으로 왼쪽에 자리한 계단이 아니고, 한번 꺾어 성당의 측면에 나 있는 계단이었다. 이리저리 열심히 사진 찍으며 좋아하다가 집에 돌아가서야 이 계단이 아님을 알게 되었더라면 얼마나 속상했을까---뒤늦게라도 '진실'을 발견하여 수정하게 되었으니 천만다행, 가슴을 쓸어내린다.
엉뚱한 자리에서 엉터리로
정확한 자리에서 제대로
성당 앞쪽은 대낮의 햇빛에 그대로 노출되어, 눈 뜨기도 힘들었는데, 이곳 측면의 계단은 그늘이 드리워져 있고 서늘한 바람도 일고 있다. '길'처럼 앉아 본다. 영화에서 자동차가 올라오던 저 아래 골목길을 바라보며, 영화의 이 장면을 충실히 만끽해보려 한다. 이 골목을 길이 휘어지는 곳까지 내려가보는데, 내 구두의 또각또각 소리가 울린다. 시간이 된다면 영화처럼 밤 12시 정각에 다시 와보고 싶다. 정말로 자정을 알리는 청아한 종소리가 울리며 주변이 새로운 세상으로 변할 것만 같다. 이번 여행에서는 불가능하더라도 다음 번 또는 그다음 번 여행에서라도, 꼭.
<미드나잇 이 파리>에서는 저 골목아래 모퉁이를 돌아 자동차가 다가온다
원없이 한없이 실컷 계단주위를 맴돌다 성당의 외관에 눈을 돌려본다. 정면 파사드를 기준으로 전면에서 바라보는 성당은 지극히 대칭과 균형을 살렸다. 이에 밋밋해 보일까봐 왼쪽에는 종루를 하늘높이 세웠다. 굵직굵직한 장식보다 세세한 장식이 주를 이루어 섬세함이 돋보인다. <미드나잇 인 파리> 계단이 있는 성당의 좌측은 파란색의 겹겹 장식이 있어 좀더 경쾌한 느낌을 준다. 건물을 마치 조각품처럼 우아하게, 돌을 마치 밀가루처럼 부드럽게 대할 수 있는 손길이 경탄스럽다.
여행의 전체 일정을 맞추다 보니, 월요일이 휴관인 것을 알면서도 월요일에 올 수밖에 없었다. 성당 내부는 못 줄 알았지만, 이 닫힌 문 앞에 서니 예상보다 더 격한 아쉬움이 몰려온다. 저 문 하나만 열면 어마어마한 보물이 있는데 그냥 뒤돌아서야 한다. 역사적 및 예술적 가치가 상당하여 성당 내부도 분명 상상 그 이상일 텐데. 다음을 기약하며 다시 간략 정리해본다, 성당 내부에서 장차 우리가 보게 될 면면들을.
1. 파리의 수호 성녀 주느비에브 Sainte Genevieve(422-512)를 모시기 위해 건립한 성당이고, 실제로 성당 안에는 성녀의 관을 바치고 있던 돌과 유물이 보관되어 있다.
2. 파스칼, 라신, 장 폴 마라 ( 자크 루이 다비드가 그린 <마라의 죽음 La Mort de Marat>의 주인공)가 이 성당에 잠들어 있다.
3. 파리의 여타 성당에서 찾아보기 힘든 독보적인 구조물이라는 루드 스크린이 있는데, 본당 양측의 나선형 계단을 다리처럼 연결한다.
4. 목재 설교단도 유심히 봐야 하는데 성서 속 인물 삼손이 떠받치고 있다.
5. 입구에서 4번째 소예배실에는 아름다운 16세기 스테인드글라스가 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의 한순간을 체험한 것에 만족, 바로 옆 '팡테옹'으로 간다. 로마의 팡테옹과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컨셉을 차용, 기라성 같은 프랑스의 위인들이 이곳 지하묘지에 잠들어 있다.
생테티엔 뒤 몽 성당에서 바라보는 팡테옹. 모두 파랗고 푸른 지붕을 얹어 두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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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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