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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드디어 Paris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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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파리 여행의 주요 테마 중 하나는 <클로드 모네 Claude Monet>였다. 본디 엄청 좋아하는 화가는 아니었지만, 파리에서 가장 많이 발견하게 되는 화가인지라 자연스레 관심도 생기고 호감도도 높아졌다. 2016년 8월에는 어쩌다 보니 그의 집이 있는 지베르니까지 가게 되었었다. 별로 관심도 없는 데다가 일정도 빠듯한데 그 멀리까지... 탐탁지 않아 하며 나섰지만, 모네를 왜 사람들이 좋아하며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아직도 모네가 정성껏 가꾸고 있을 것만 같은 그의 집에는 세상 그 어디에도 없을 여유로움, 화사함, 아름다움을 발견했다. 다만, 모네의 수련 연못은 오히려 수수해 보였다. 햇빛이 그리 잘 들지도 않고 그저 바람만이 선선히 나부끼는 옅은 초록의 물과 나무로부터 각양각색의 수십 개의 수련을 새로이 탄생시킨 모네의 솜씨에 더욱더 경외심을 갖게 되었다. 



 



 



파리의 숙소도 모네를 가까이하게 된 데에 큰 기여를 했다. 모네의 수련 연작으로 이름난 '오랑주리 미술관'. 그리고, 모네를 포함, 인상주의 화가들 작품의 중심지라 할 만한 '오르세 미술관'. 오랑주리 미술관은 '튈르리 공원'안에 있고, 오르세 미술관은 오랑주리에서 도보 5분이면 닿는다. 나의 숙소는 이 공원 바로 앞이다. 그러니까 몇 박이든 상관없이 나는 파리 여행마다 바로 코앞에 모네를 두고 있었다. 그의 작품을 (특히, 수련을) 못 볼 가능성은 거의 제로에 가깝다.



 



 



이번에는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의 역할도 컸다. <모네와 미첼>이라는 특별 전시가 성황리에 개최 중이었다. 미국 태생 화가로 인생의 후반부 중 상당한 세월(죽을 때까지)을 프랑스에서 보낸 화가, Joan Mitchell의 회고전 및 모네와의 콜라보 전시이다. 소장품 전시 없이 재단 미술관 전관을 이 특별 전시로 채우고 있다(2023년 2월 27일에 종료됨). 모네를 통해 (나는 전혀 모르는 화가) Mitchell을 알게 되는 기회이며. 모네를 새로운 시각에서 발견하는 계기가 된다. 예술가의 전성기란 명성과 부를 쌓게 되는 시기가 아니다. 모네도, 연계 전시된 미첼도 각자만의 예술적 신념에 따라 자신이 인정할 만한 예술적 과업에 몰두하던 그 막바지의 시간들이 바로 황금기였지 않을까. 모네의 수련이 꽃피운 수많은 흔들림과 반짝임은 '혼연의 힘'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다.



 



 



그렇다면, 이참에 파리 안에 있는 모네를 다 찾아보자. 모네의 팬이라면 일찌감치 달려갔을 <마르모탕 미술관 Musee Marmottan Monet>도 일정에 넣는다. 마침 여기서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이 비교적 가까워 (택시로 10~15분) 하루에 연이어 방문하면 되겠다. 오르세의 5층-오랑주리의 0층-마르모탕의 0층과 지하 1층-루이비통의 거의 전층, 이렇게 모네에 포커스를 두고 다닌다면 모네에 대한 식견도 확장되고 그를, 그의 수련을, 더욱 특별히 애정하게 되리라. 마르모탕 미술관은 아예 모네를 미술관 이름에다 넣은 만큼 지하 1층은 전체가 오로지 모네를 위한 모네의 방이다. 전시실의 디자인은 그저 직사각형으로 평범 그 자체이어서 모네의 작품이 유독 빛난다. 무엇보다도 우리가 잘 아는 '인상주의 impression'이라는 단어 또는 유파의 탄생에 직접적 계기가 된 그림 <해돋이:인상>이 소장되어 있다. 그 영향에 비해 그림의 크기는 매우 작은 편이라 기대만큼의 감흥이 일지는 않는다. 역시 이곳에서도 수련에 눈길이 간다. 큰 사이즈의 캔버스에 다양하게 그려진 수련들을 보노라면 모네=수련이라는 공식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오랑주리 미술관은 모네를 위한, 모네에 의한 공간이다. 화가의 구체적이고 특별한 주문에 따라 디자인되었고, 화가는 이곳에 전시될 작품 8점을 그렸고, 아직까지도 그의 수련들은 그가 정한 방식에 따라 전시되어 있다. '도시의 한복판에 평화로운 명상을 제공 to provide a peaceful meditation in the heart of the city '하자는 의도였다. 두 개의 타원형의 방에 각각 네 점의 수련을 걸어 두었다. 작품에 집중하도록 벽은 온통은 하얀색이고, 자연 채광을 최대한 끌어들일 수 있는 설계를 도입했다. 실제로 방의 중앙에는 마련된 벤치에 앉으면 어디를 향하더라도 수련과 연못에 잠겨들 수 있다. 다만, 관람객이 차고 넘친다. 모네는 사람들이 조용한 환경에서 탁월한 작품을 발견하게 되리라고 바랬지만, 이는 아마 영원히 실현되기 어려운 바람일지도 모른다. 2018년 9월, 운이 좋게도 8점의 수련 대작을 사람이 제외된 상태로 찍는 데에 성공했다. 2019년 4월 말에 다시 수련을 보러 갔고 여전히 붐비는 상황에서도 내 마음에 드는 수련의 장면들을 요리조리 잘 담을 수 있었다. 이번에는 비교적 이른 시간에 달려갔지만 상상 이상으로 많은 관람객들에게 막혀 깔끔하게 찍어 보는 데에 실패했다. 눈으로 보고 마음에 새겨 두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어설프게나마 '나의 것'으로 내 손안에서 언제든지 펴 보는 것도 중요한데.... 대신, 전체 보다 부분에 집중하여 그림 안의 그림을 찾아보기로 했다. 물 흐르듯 힘들이지 않고 희뿌연 구름처럼 큰 덩어리로 처리한 것처럼 보이는 붓질들은 수만 개의 형상을 담고 있다. 앞으로 이곳에 백 번을 더 찾아와서 보고 또 본다 해도 나는 결코 모네의 수련을 다 볼 수 없을 것이라는, 아마득한 기분이 든다.



 



 



오르세 미술관에서는 상대적으로 수련이 잘 보이지 않는다. 5층 전체에 숱한 인상주의 화가들의 우열을 가릴 수 없는 작품들이 너무나도 많이 전시되어 있다 보니 모네 한 사람에게 집중하기란 힘들다. 모네의 작품만 해도 유명 작품들이 쫙 깔려 있고 그중 어느 하나 진귀하지 않은 게 없다 보니 수련에만 매달려 있을 수 없다. 수련의 화가 모네에서 잠시 벗어나 인물과 풍경에 이르기까지 다방면에서 대작을 일구어낸 열성적인 화가 모네를 다시 기억하게 된다.



 



 



이번 파리 여행을 기점으로 지금껏 만났던 모네를 이리저리 정리해 보게 된다. 현장에서는 지나쳤던 부분들이 다시 눈에 띄기도 하고, 그 순간 특별하게 보였던 부분들이 다시금 감동을 일으키기도 한다. 여행에서 대충이란 없어야 한다. 여행은 쉼,이라고 생각하여 슬슬 본 것은 나중에 항상 아쉽고 후회가 된다. 특히 예술 작품은 설마 그 자리에서 자세히 보지 못한다 하더라도 정성껏 사진으로 담아 올 필요가 있다. 여행이 끝난 후, 이를 되돌이켜 볼 때 또 다른 여행이 시작된다. 기억으로 남은 데다가 '기록'으로 가져왔기 때문에 여기에서 새로운 호기심이 촉발된다. 자발적인 배움과 발견이 이어지며 그야말로 여행은 끝나지 않은 채 현실을 풍성하게 채워 나간다.



 



 



이제 나는 모네를 다시 보게 되었다. 클로드 모네... 웬만한 해외 미술관 어디에서나 쉽게 보게 되는, 주의를 환기시키기에는 특별함이 부족한 그런 이름이 아니다. 모네의 작품 중 가장 많이 발견되는 수련 역시 다른 차원으로 바라보게 되었다. 워낙 유명하니까 한 번은 읽어 보려고 사 두었던 모네 관련 책들도 책꽂이의 중앙 부분으로 옮겨 놓았다. 책을 꼼꼼하게 읽으며 내가 그동안 저장만 해두었던 작품들을 하나씩 공부해 본다. 모네라는 거대한 세계를 조금씩 파고들면서 나의 삶과 정신을 일구어 줄 자양분을 얻고자 한다.



 



 



이때, 마르셀 프루스트 Marcel Proust.



그의 작품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A la recherche du temps perdu>을 알게 되면서 나는 파리를 더욱 좋아하고 프랑스적 정신에 대해 큰 호감을 갖게 되었다. 아직도 이 작품을 '읽는 중'이지만, 여전히 끝까지 제대로 읽지 못할까 봐 두렵지만, 철학-역사-예술을 총망라한 문학 이상의 대작을 가까이에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늘 설렌다. 모네(1840~1926)와 프루스트(1871~1922)가 살았던 시기가 상당 부분 겹치기는 하지만, 두 사람이 개인적 친분이 있었는지 잘 모르겠다. 생전에 두 사람이 누렸던 명성에 비추어볼 때 서로의 그림과 글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이런 나의 개인적 추측에 근거하여 나는 프루스트의 수련을 읽으면서 모네의 수련을 떠올리게 된다. 프루스트의 단어와 문장을 하나씩 더듬으며 모네의 수련들을 전체와 부분으로 살피게 된다. 이 두 예술가들이 각자의 자리에서 그려내는 수련이 시공간을 넘어 나에게로 당도하는 것이다. 예술에서 내게로 뻗쳐 오는 광채 속에서 어찌할 바 모르겠는 즐거움 ... 나의 여행, 나의 독서, 나의 삶은 그저 행복할 따름이다.



 



 



좀 더 멀리 가면 비본 내의 흐름이 느려지면서 한 사유지를 통과한다. 이 사유지 출입을 일반인에게 허용한 소유주는 수생초 재배에 재미를 붙였는지 비본 내가 만드는 몇몇 연못에다 진짜 수련 정원을 꽃피워 놓았다. 이 지대에는 나무가 아주 많았기 때문에 냇물은 일반적으로 커다란 나무 그림자에 가려 진한 초록빛을 띠었고, 때로 오후에 소나기가 쏟아질 듯하다 다시 갠 저녁 무렵 집으로 돌아갈 때면, 일본 취향의 유선칠보 (역자 주:금속 윤곽선으로 만든 문양을 뜻한다) 같은 보랏빛에 가까운 맑고 선명한 푸른빛을 띠었다. 수면 이곳저곳에는 가운데가 빨갛고 가장자리가 하얀 수련이 딸기처럼 붉게 물들어 있었다. 조금 더 멀리에는 보다 창백하고 덜 반짝거리며, 더 오톨도톨하고 주름잡힌 무수한 꽃들이 우연히도 꽃줄로 배열된 듯 우아하게 물결쳤는데, 마치 느슨하게 풀린 꽃줄에서 이끼 장미의 꽃잎이 서글프게 한 잎 한 잎 떨어지는 페트 갈랑트(fete galante:전원에 모여 앉은 궁중 남녀들을 그리는 회화의 한 주제)의 한 장면을 보는 듯했다. 다른 쪽 구석에는 주부가 닦은 도자기마냥 깨끗하게 씻긴 장대꽃 같은 깨끗한 흰색 분홍색 꽃이 달린 보통 수련을 위한 곳이 마련되어 있었다. 더 멀리에는 빽빽이 들어찬 수련들이 진짜 물 위에 떠다니는 화단을 만들어, 정원 제비꽃이 나비마냥 그들의 푸르스름하고도 윤기 나는 날개를 이 수상 화단의 투명 경사 위에 내려놓으려고 온 것 같았다. 이 수상 화단은 또한 꽃 자체 색깔보다 더 소중하고 더 감동적인 색깔의 땅을 꽃들에게 줬기 때문에 천상의 화단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 화단은 오후에 수련 밑에서 주의 깊고도 고요하며 움직이는 행복의 만화경을 반짝이면서, 또는 저녁 무렵 어딘가 먼 항구에서처럼 석양의 분홍색과 몽상으로 가득 채워져서는, 비교적 색깔이 변하지 않는 꽃관 주위에, 끊임없이 변화하면서도 시간 속에서 가장 깊고 가장 덧없는 신비스러운 것과 - 모든 무한한 것과-조화를 이루며 하늘 한가운데 수련을 꽃피우는 것 같았다.



--- 마르셀 프루스트,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 1, 스완네 집 쪽으로 1> 민음사 293쪽~294쪽



 



 



오랑주리 미술관에 전시된 모네의 수련 연작:



































 



 



오르세 미술관의 모네의 작품들과 수련:































 





 











 



 



마르모탕 미술관에서 만나는 모네의 수련들:































 



 



루이비통 재단 미술관 특별 전시 <모네와 미첼>에서 볼 수 있었던 모네의 수련:























 



 



지베르니에 있는 모네의 집: 모네의 수련이 탄생할 수 있었던 환경 자체에 특별함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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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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