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London

eternity
- 공개여부
- 작성일
- 2023.3.15
다시, 시작된 런던 여행.
그동안 가장 그리웠던 장면이 무엇이었지? 하얀 낮이 핑크빛으로 어슴푸레해져 가고, 그 뒤로 밤이 찬란하게 스며드는 광경.... 이를 360도로 내다볼 수 있는 곳, 바로 스카이 가든 Sky Garden!
이곳에서 자연과 도시의 일품 파노라마를 여유 있게 만나기 위해 내가 선택하는 방법은 36층에 자리한 Darwin Brasserie에서 저녁 식사를 하는 것이다. 우선, 예상 일몰 시간을 알아본다. 이보다 1시간 30분 정도 일찍 전망대에 올라가면 낮의 런던, 해지기 직전의 런던, 해 질 녘의 런던, 밤이 된 런던을 모두 감상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해지기 전까지 전망대를 한 바퀴 산책하며 런던을 살펴보고 해지기 직전에 Darwin에 입장하면 된다. 저녁을 먹으면서 하루가 낮에서 완전히 밤으로 바뀌어 가는 순간순간을 바라보는 것이 포인트이다. 결론은, 5시 15분에 예약. 비교적 조용할 평일에 방문하더라도 한 달 전에 예약을 해두었다. 미리 예약할수록 창가 자리를 받을 가능성이 높을 것이라는 순전히 내 개인적인 이론에 의거해서 말이다. 예약 시 메시지란에도 '첫 방문 때 당신들의 브라서리를 얼마나 좋아했는지, 이번 방문에 대해 얼마나 큰 기대를 갖고 있는지'를 강조해 두었다.
Sky Garden은 이미 탁월한 뷰로 명성을 굳힌 지 오래되었다. 이토록 멋진 광경을 무료로 즐길 수 있어 그 인기는 사그라들지 않을 것이다. 홈페이지에서 예약을 하고 (코로나 시국 이후 타임 슬롯별 입장 가능 인원수에 제한이 생겨 예약이 엄청 수월한 편은 아니다) 0층 입구에서 소지품 검사를 위해 (airport-style control이라고 명시되어 있다) 한참을 줄 서 기다려야 한다. 다음으로 엘리베이터를 타고 35층에 내리면 바로 눈앞에 더 샤드 The Shard가 등장, 템즈를 중심으로 런던의 모든 이름난 랜드마크를 통유리 너머 훤히 내려다보게 된다. 35층에는 Sky Pod라는 캐주얼 바가 있어 무료로 올라온 사람들은 이런저런 음료나 알코올을 구매하는 데에 인색하게 굴지 않는다.
가든이므로 식물이 있기 마련인데 조화가 아니라 실제 식물이고 규모에 있어서도 보통을 능가한다. 두 개의 레스토랑 (Darwin Barsserie 외에 좀 더 고급인 Fenchruch Restaurant이 있다)이 자리한 36층 및 37층과 구별되어 있지 않고, 어찌 보면 레스토랑이 공중에 붕 떠 있는 양식으로 설계되어 35층부터 3개의 층이 높다란 천장을 공유하게 된다. 당연히 천장은 하늘을 향해 유리로 되어 있다. Darwin Brasserie 앞쪽에는 또 다른 바가 있는데, 바 앞에 테이블석이 꽤 많고 창가에는 걸터 앉을 수 있는 툇마루처럼 생긴 넓은 자리가 길게 이어져 있다. 35층 보다 좀 더 조용한 분위기이다.
Sky Garden에서의 일정은 더 시티 The City에서 시작된다. Sky Garden에만 가려면 모뉴먼트 역에서 내려 걸어가면 되지만, 이 건물이 위치한 구역을 좀 더 걸어보는 편을 택한다. 원래는 세인트 폴 대성당에서부터 걸을 생각이었지만, 항상 실제 일정은 계획보다 빡빡해져 시간적 여유가 급격히 줄어든다. 영국 은행 Bank of London과 (구) 로열 익스체인지 Royal Exchange에서부터 걸을까, 잠시 망설여진다. 모든 것을 다 할 수 없다면 핵심 일정에 포커스를 두는 게 맞다. Sky Garden에서 충분한 시간을 가질 수 있도록 더 시티 탐방 동선을 과감하게 단축, 거킨 빌딩 부근에서 시작한다. 영국이 자랑하는 건축가 노먼 포스터가 설계한 '거킨 Gherkin'의 정식 이름은 '30세인트 메리 엑스 30 St. Mary Axe (건물이 위치한 도로명을 그대로 따서 지은 이름). 위로 올라갈수록 좁아지는 모양새가 오이 피클을 닮았다는 이유로 붙여진 닉네임 '거킨'이 더 애용되고 있다. 내가 보기에는 우주로 향하는 매끈한 발사체처럼 보인다. 상층에 있는 레스토랑을 제외하면 업무용 건물이라 실내를 구경할 수 없어 아쉽다.
더 시티에서 가장 보고 싶은 장면은 거킨- St. Andrew Undershaft Church -로이즈 오브 런던Lloyd’s of London로 이어지는 모습이다. 로이즈 오브 런던은 거킨에서 사거리 하나를 건너 자리하고 있는 현대식 건물이지만, 건축가가 다른 만큼 또 다른 세상을 연상케 한다. 이탈리아 건축가 리처드 로저스 Richard Rogers가 설계한 로이드 보험의 본사 건물로서 거킨에 비해 투박한 형체이다. 수직적 높이뿐 아니라, 횡으로 건물의 규모가 커서 한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이 건물을 좀 더 알차게 감상하기 위해 리처드 로저스가 파리의 퐁피두 센터를 담당했다는 사실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일명 'inside-out buidling'으로 건물 내부에 있어야 할 수도관,환기구관,전기배관, 승강기 등을 모두 건물 밖으로 노출시켜 버린 그의 혁신적 발상을 로이즈 빌딩에서도 찾아볼 수 있기 때문이다. 다만, 빨강-파랑-노랑-녹색 등 컬러를 입힌 퐁피두 센터와 달리 로이즈 빌딩은 콘크리트-스테인리스 스틸-유리 등을 원래 그대로 사용해 색감이 없다. 사실, 거킨에서 로이즈 빌딩으로 내려오는 거리의 양편에는 이 둘만큼 유명하지는 않아도 나름의 독특한 디자인과 높이를 내세우는 화려한 건물들이 빼곡하다. 이들 건물들은 하늘이 안 보이는 도시에 갇혀 있다는 답답한 위압감을 주기보다는 각자 다르면서 함께 어울려 역동적인 도시 풍경을 만들어 낸다. 우중충한 겨울 날씨를 잊게 하는 활력을 내뿜는다.
이들 고층 건물들 틈 사이에서 유독 내 눈길을 사로잡은 게 하나 있으니, 바로 St. Andrew Undershaft Church. 1200년대 초부터 시작된 유구한 역사를 지닌 교회 한 채가 21세기의 최첨단 거리 한복판에 자리 잡고 있는 상황이라니! 거킨과 아주 가까이 있어서 로이즈 빌딩으로 내려가기 전 사거리 여기저기서 두 건물을 함께 볼 수 있다. 옛것과 현대적인 것의 조합은 도시의 거리에 묘한 매력을 발산하고 이를 보는 사람에게도 여러 갈래의 상상력을 불어넣는다. 건물들은 고층이지만 거리는 상대적으로 좁아서 내가 희망했던 시티뷰를 나의 앵글에 담기란 거의 불가능하다. 거리 한복판에서 다른 세상에서 떨어진 외계인인 양 (다소 어리벙벙한 걸음걸이로) 주위를 올려다보느라 휘청거려 보는 것이 사진으로 순간을 남기는 것보다 한 수 위에 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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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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