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원한 8일 en Paris(2018)

eternity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8.10.4
이번 8일간의 여행 중 오르세 미술관에 두 번 째로 들르는 날.
레알 지구의 숙소에서 리볼리 가rue de Rivoli에 위치한 숙소로 이동, 체크인만 해 두고 나온다. 숙소에서 리볼리 가를, 건너 '튈르리 정원'을 통과, 세느 강의 다리(레오폴 세느뇨 세다르 보행자다리[asserelie Leopold-Senar-Senghor)를 건너면 바로 오르세 미술관. 파리의 사랑스러움을 다시 한 번 실감한다. 자동차, 메츠로, 버스가 끊임없이 지나다니는 파리 한복판에 나무와 꽃, 분수를 들여놓은 큰 정원이 있고 이 정원 바로 앞에 세느 Seine가 유유히 낭만적 물빛을 드러내며 그 바람을 기분 좋게 맞으며 보행자 전용 다리를 걷다 보면 끝자락에 19세기 프랑스 회화를 가득 품고 있는 미술관, 오르세가 서 있다니. 정말 행복한 15분간의 걸음이다.
오르세로 가는 길, 튈르리정원을 지난다. 세느 강같은 민트 빛 초록일색이다. 저만치 루브르 앞 카루젤개선문도 보인다.
튈르리에서 보이는 오르세
오늘은 화요일, 루브르가 휴관하는 날이라 오르세 앞의 대기줄은 더욱 길다. 줄 서지 않고 바로 들어가는 뮤지엄 패스의 위력이 지난번 1차 방문 때보다 더 강력하다. 오늘은 짐보관소cloakroom에 들르는 과정을 생략하려고 아예 크로스백만 갖고 왔고, 오디오도 대여하지 않는다(의외로 무겁고 설명을 다 들으며 관람하기에는 시간이 많이 걸린다). 지난번은 한국어 안내도를 챙겼으니 오늘은 영어 안내도를 받으려했으나,정오도 안됐는데 벌써 동이 났다. 미술관 측이 이렇게 준비성이 없나 싶어 어리둥절. 한-중-일 공용 안내도를 한 장 더 챙겨들고, 중앙홀 기준 왼쪽 전시실로 향한다. 지난번에 0층 5층 2층 순서로 오른쪽의 전시실들을 휩쓸었으니, 오늘은 왼쪽. 5층은 아예 왼쪽에 전시실이 없고 3층과 4층도 왼쪽에는 전시실이 몇 개 안되기 때문에 오늘은 상대적으로 시간적으로 여유롭다.
중앙홀 기준 오른쪽 전시실들에 비해 왼쪽은 인기가 덜하다. 관람객들 대부분은 2층의 고흐-고갱 전시실과 5층의 인상주의 전시실에 몰려 있다. 따라서, 내 생각으론 이들 못지않게 관심을 기울일만한 화가, 귀스타브 쿠르베 Gustave Courbet, 1819-1877의 작품들을 편하게 실컷 볼 수 있다. 당시로서는 반항아였다. 모두가 역사 속의 영웅, 종교, 신화적 주제를 그리고 있을 때, 쿠르베는 자신이 살고 있는 시대의 평범한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켰다. 영웅도 없고 신도 없고 도덕적 메시지도 전혀 없는 일반인들의 일상을 그렸기 때문에 아카데믹한 역사화에 익숙한 당대의 화단이든 관람자든 쿠르베의 그림에 반감일색이었다. 오르세에서 어쩌면 가장 큰 그림인 <오르낭의 매장>은 살롱전에 출품한 당시 "농부의 죽음에 이렇게 많은 양의 물감을 써야 했느냐"라는 비난을 받았다. <화가의 작업실>은 파리 만국박람회에 출품했다가 퇴짜를 받은 그림이다. 쿠르베는 사비를 들여 박람회장 근처에 '사실주의관Pavillon de Realisme'을 세워 자신의 작품 40여 점을 전시했다. 이를 계기로 쿠르베는 '사실주의 화가'로 불리기 시작했고, 사실주의는 그 이전의 그림들과 명확히 다른 방향으로 틀어서는 미술의 경향을 집약적으로 나타내는 고유명사로 자리 잡았다. <부상당한 남자>는 쿠르베의 자화상이다. 멋지게 자신감에 차 있거나 깊은 성찰을 하는 품위 있는 모습이 아니라 핏자국을 안은 고독한 모습이다. 쿠르베의 에트르타트 바위, 물고기 등 보기엔 덜 낯선 그림들도 있다. 한편 이 앞선 모든 그림과 너무나도 다른, 더 충격적인 그림이 하나 있다. 예나 지금이나 누구나 보기에 불편한 그림(나도 여기에 포스팅하지는 않는다) 일 것이며, 예술과 외설의 논란에서 아마 영원히 벗어날 수 없는 그림일지도 모르겠다. 제목은 <세상의 기원>. 아름답고 보기 좋은 것만을 그리는 당대의 미술에 가장 높은 수위의 반항과 도전을 한 작품일 것이다. 제일 처음 이 그림을 주문한 사람부터 어쩌어쩌하여 이 그림을 사게 된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 그리고 그 이후 여려 명의 개인 소장가들 모두 이 그림을 아무렇게나 아무에게나 보여줄 수 없었기 때문에 현재 이 그림의 상태가 온전하다는 얘기들도 한다. 1995년에 과감히 이 그림을 사들여 아무렇지 않게 전시하고 있는 오르세 미술관의 반적 매력을 느낄 수 있다, 내 개인적 의견으로는.
<오르낭의 매장> 꽤 넓은 벽 한면을 차지한다.
<화가의 작업실> 중앙의 화가는 쿠르베 자신이다.
쿠르베 자신을 그린 <부상당한 남자>
이곳 중앙홀의 0층 왼쪽 전시실에는 쿠르베의 작품들 옆에 모네의 그림도 몇 점 있다. 이런 점이 궁금하다. 모네의 그림은 5층에 엄청 많은데, 왜 몇 점은 이곳 쿠르베 옆에다 갖다 놓았을까? 안내도를의 '모네 및 사실주의 풍경화'라는 설명에서 이 궁금점이 풀린다. 풍경만한 사실주의 그림이 어디 있겠는가? 5층의 모네 작품은 인상주의화풍이라서 화가의 느낌이 포인트이고(따라서 사실적 묘사와 거리가 있고), 이곳 0층의 모네 그림은 있는 그대로 사실적으로 그린 풍경화이다.
이렇게 쿠르베 중심으로 0층 왼쪽 전시실을 보고, 2층으로 올라간다. 2년 전 방문했을 때 오르세에 있는지도 몰라 놓친 로댕의 갤러리로 간다. 이번 여행 때 첫 번째 오르세를 찾기 전에 로댕 미술관에 가서 보았던 '지옥의 문'의 석고판 원형이 오르세 2층에 있다. 이 외에도 로댕과 그의 제자이자 연인이었던 카미유 끌로델의 조각 작품이 가득 있다. 하나하나 세세히 보지 못해 아쉽다. 여기서 문득 중앙홀을 내려다보니 가까이에서 볼때보다 <쇠퇴기의 로마인들>의 규모가 더욱 실감 난다. 로댕갤러리에서 정면으로 보이는 중앙홀과 조각들 그리고 오르세의 상징인 대형 시계도 예술적인 뷰를 선사해준다.
로댕갤러리에 있는 청동조각'지옥의 문'의 석고원판
위의 석고작품 세 개는 모두 한 곳에 있다 -로댕갤러리
2층에서 내려다보니 그 규모가 더 실감난다 <쇠퇴기의 로마인들>
조각공원인 중앙홀 그 위로 반짜반짝 레몬빛 라이츠 그리고 우아섬세한 시계
지난번에 피곤이 절정에 달하고 야경투어 일정이 있어 스르륵 지나쳤던 5층 인상주의 전시실에 한 번 더 간다. 물론 오늘도 라데팡스 La Defence에 가고 저녁엔 우리끼리 야경을 보러 나갈 생각이므로 시간이 넉넉지 않지만. 2층에서 5층으로 올라가는 길에 3층인지 4층인지 장식예술 전시관을 찾는다. 베르 사유풍의 화려한 방이다. 2년 전에는 옆 전시실까지 들어가 보았지만 오늘은 입구에 서서 사진만으로 담는다.
천정도 벽면도 전등도 모두 장식이고 예술이다
5층의 스타는 에두아르 마네이다. 지난번 보았던 작품은 과감히 지나치고 (오르세미술관①에 포스팅함), <올랭피아>앞에 선다. 마네가 그린 <에밀 졸라의 초상화>도 있다. Carolus -Duran이 그린 마네의 초상화를 발견! 아, 그렇게 숱한 화제를 불러일으키며 미술계의 말썽꾼임을 자처, 매독으로 다리 하나를 절단한 채 곧 세상을 떠나버린 마네가 이렇게 생겼구나. 이 그림을 중심으로 다시 마네의 <풀밭 위의 점심> <발코니> <올랭피아>를 한 번 둘러보니 이런 강한 그림을 그린 사람이 바로 이 초상화의 순하게 생긴 이 사람인가 싶다.
<올랭피아> 관람자를 똑바로 쳐다보는 여인의 시선에 모두들 경악했다.
에밀졸라, 마네의 친구였다.
에드가 드가의 발레 그림들도 여전히 귀엽다. 몰려 있는 사람들을 헤치고 사진 찍어내는 일이 오늘도 쉽지 않다. 전시실을 쭉쭉 관람하다 보면 드가의이름으로 되어 있는데 발레가 아닌 작품들도 있다. 그중 나는 이상하게 <압생트를 마시는 사람>이라는 그림에 유독 끌린다. 사실 마시지 않고 앞에만 한 잔 두고 물끄러미 아래로 시선을 던지고 있는 여인이다. 무엇 때문이지 지쳐있다. 옆에 앉은 남자는 시선이 향하는 방향이나 무심한 표정으로 보아 동행 같지 않은데 왜 드가가 이 그림 속에 이 여인과 같이 그려 넣었을까?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어둔다. 무슨 일이냐고 다가가 묻고 싶다.
매우 큰 크기, 단체사진 같은 스타일 및 검은색이 두드러지는 색감 등 상당히 비슷해 보이는 두 점의 그림도 눈길을 끈다. 이젤이 등장하는 그림은 <바티뇰의 화실>. 평소 마네를 존경하던 화가 앙리 팡텡 라투르가 바티뇰에 있던 마네의 화실에 모여든 당대 지식인들을 그린 그림이다. 이젤 바로 앞에 앉아 우리를 바라보는 사람이 바로 마네 -자세히 보면 아까 보았던 마네의 초상화와 똑같다(당연하지 두 점 모두 초상화니까). 액자 앞 모자를 쓴 사람이 르누아르, 그 옆의 콧수염에 보우타이를 한 사람이 에밀 졸라, 오른쪽 귀퉁이의 인물이 모네이다. 모네 앞 키가 큰 사람은 화가 바지유라는데 나는 잘 모르는 사람.
다음 그림 역시 앙리 팡탱 라투르가 그렸고, 제목은 <들루크루아에의 경의>이다. 낭만주의의 대가 외젠 들라크루아의 초상화를 중심으로 당대의 미술과 문학의 새로운 지평을 추구했던 이들이 둘러서 있다. 초상화의 오른쪽이 마네, 왼쪽의 흰 셔츠를 입은 사람이 이 단체 초상화를 그린 팡탱 라투르.
르누아르의 그림은 언제 보든 행복이 번져온다. 불편한 드레스 차림인데도 통통하고 해맑은 여성들의 표정은 이 세상 모든 행복을 다 담고 있는 듯하다. 솜사탕같은 부드러움이다. 이번 여행 동안 오랑주리 미술관에서 르누아르의 더 다양한 작품을 만날 수 있었다.
<전원의 무도회>
<도시의 무도회>
잘 알지 못하면서 그 이름에 익숙하다는 이유만으로 때로는 경탄을 덜 하는 그림이 있다. 내겐 모네가 그렇다. 양산을 든 여인 외 몇 점만 찍고 돌아선 내 자신이 원망스럽다. 이 양심의 가책을 덜기 위해, 다음날 모네의 수련 8점이 대대적으로 전시된 '오랑주리 미술관'에 가서는 겸손하게 한 점 한 점 사진으로 담고 한참을 앉아서 감상했다.(오랑주리 미술관 포스팅도 쓸 것!)
클로드 모네 <정원의 여인들>
세잔의 사과와 오렌지도 변함없이 풋풋하고 알록달록하다. 오렌지와 사과를 이토록 많이 그리면서 세잔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바구니가 있는 정물>을 보면 무질서하고 좀 이상하다. 항아리의 안이 들여다보일 위치가 아닌데 보이고 탁자도 수평이 맞지 않다. 이 모두 세잔의 혁명적 시도라 한다. 서구 미술의 불문율이었던 일시점을 벗어나 여러 시선으로 대상을 그리는 다시점으로 그렸다. 일반적인 원근법으로 그리지 않았다. 그러고 보면 그가 즐겨 그린 생트빅투아르 산도 일반적인 시선과 시점으로 보이는 산과 다르게 생겼다. 평평한 캔버스 위에 대상을 여러 개의 시점으로 본 대로 그리는 그림, 피카소의 입체주의도 같은 맥락이다. 그러면, 입체파의 선구자는 세잔인가?
여러 개의 시선과 시점으로 그렸다 <바구니가 있는 정물>
미술사에서 인상주의 다음은 신인상주의다. 인상주의 화가들이 점점 자신만의 독보적인 화풍으로 갈라서면서 인상주의 공동전시회였던 인상파 전시회가 8회로 마지막을 맞는다. 이때 새로운 미술에 대한 기대를 불러일으킨 화가들이 등장했는데, 조르주 쇠라와 폴 시냐크 같은 일명 '점묘파 Divisionisme'이다. 원색 위주의 물감을 섞지 않고 화면에 나열하듯 점을 찍는다. 가까이에서 보면 그냥 점을 찍어 놓은 모습이지만 일정 거리를 두고 보면 그 점들에서 형태가 살아나고 명암까지 나타난다. 인상파와는 다른 표현법이지만, 빛과 색에 대한 주관적 신념을 표현한다는 점에서 인상주의의 확장이라고 할 수 있어 '신인상주의'라고도 불린다. 어느 정도 크기가 있는 데다 일일이 점을 콕콕 찍어야 하니 그림 한 점 그리는 데에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렸을까? 게다가 세잔은 전염병에 걸려 서른두 살에 세상을 떠났으니 그가 남긴 작품은 적을 수밖에 없다. 특히, <서커스>가 눈길을 사로 잡는다. 쇠라의 마지막 작품이며 파란색 그림틀도 세잔이 파란 물감으로 점을 찍어 완성했다. 가까이서 보고 멀리서 보고 여러 번 보면서 점묘법의 마술을 눈으로 체험한다.
세잔에 다소 인지도가 밀리지만 오르세에는 폴 시냐크의 환상적인 작품이 꽤 많다. 물 긷는 여인들이나 힘차게 일하는 남자나 배가 유유히 떠 있는 바다의 풍경이나 모두 고운 색감이다. 지금 생각해보니 인상주의 이야기가 있는 곳에는 거의 항상 시냐크의 이름이 있는 것 같다.이제 관심 있게 공부해봐야겠다.
첫 번째 방문 때 들렀지만 오늘도 2층의 고흐-고갱 전시실에 간다. 며칠 전 야경투어를 하면서 몽마르뜨르에 갔는데 그곳의 유서 깊은 레스토랑(2년 전 저녁식사를 한 곳으로만 나는 기억함)을 고흐가 그렸고 그 그림이 바로 오르세에 있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별이 빛나는 밤과 자화상 등에 파묻혀인지 이 그림은 도저히 그 존재 자체가 내 기억엔 없어 꼭 확인을 해야 한다. 전시실에 들어가자마자 왼쪽에 걸려 있는데 나는 보지 못했고 지금도 이 그림 앞에 서 있는 이는 없다. 모두 지난번처럼 <론 강의 별이 빛나는 밤>앞에 몰려 있다. 내가 2년 전 밥을 먹은 곳인데, 고흐도 와서 밥을 먹었고 조금은 외관이 변했지만 고흐가 그 옆 길에 앉자 그림을 그렸고 그 그림이 오르세에 있는 거다. 파리의 매력 중 하나 - 예전에 화가나 문학가들이 다녔던 장소들이 그 자리에 큰 변화 없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점. 오늘을 살아가는 내가 지구 반대편에서 날라와서 그 옛날 그들이 있었던 자리에 서 있다는 사실은 늘 생각보다 큰 감동으로 다가온다.
La Guinguette à Montmartre La Billard en bois, devenue La bonne franquette
현재 La bonne franquette의 모습. 입구에 고흐 등 유명인사들의 단골집이었다고 자랑하는 글이 있다.
비교적 전시실이 적은, 중앙홀의 왼쪽 부분만 들를 생각이라 오늘은 여유가 좀 있겠거니 했는데 아니다. 오른쪽의 5층 전시실도 또 가게 되었고 2층도 또 갔다. 당연히 예상했던 시간을 초과. 아쉽지만 모든 그림을 다 볼 수는 없는 법이니 이만하고 오르세를 나선다. 아쉬움이 남아야 다음에 오기를 소원하며 그리워할 수 있다. 정문을 나서니 여섯 대륙을 상징한다는 청동상 6개가 눈에 들어온다. 한산한 틈을 타 사진을 찍고 진짜로 오르세를 떠난다.
대륙의 여신 6인방. 이 앞 빨간 라인이 뮤지엄패스전용인 라인 C
점심 먹을 시간도 한참 넘겨, 오르세 근처에서 밥을 먹을까라는 생각도 했지만 일단 참기로 한다. 계속 서서 다니다가 자리 잡고 앉고 밥까지 먹으면 노곤함이 몰려와 뒤 일정을 포기할 위험이 있다. 무조건 다음 일정인 라데팡스로 출발. 마침 오르세 바로 옆 블록에서 샹젤리제를 거쳐 라데팡스까지 가는 버스 75번이 있다! 출발 전 10분 정도 정차 중이고 승객도 아무도 없어, 좋은 자리를 골라 앉는다. 다리를 건너 세느 강을 지나면서 멀어져 가는 오르세를 뒤돌아본다. 기차역에서 미술관으로 변모한 독특한 역사, 인상주의를 위시한 19세기 프랑스 회화의 보금자리,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세느 강변에 위치함, 지금껏 총 세 차례 방문했지만 매번 아쉬움에 끝이 없는 곳 - 다음은 언제일까, 내가 오르세에 다시 올 그날은?
파리에서의 마지막 밤, 세느 강 건너편에서 바라보는 오르세 미술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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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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