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쓱싹쓱싹' 써 보는 리뷰

eternity
- 작성일
- 2020.1.26
밤은 부드러워라
- 글쓴이
- F. 스콧 피츠제럴드 저
문학동네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대학교 때 들었던 미국 소설 시간에서부터 최근까지 나에게 찜찜한 기분을 덧씌운 작품이다. 소설을 별로 열심히 읽지 않는(또는 읽지 못하는) 나로선 이렇게 기나긴 세월 동안 신경을 쓰고 있는 작품이 있었다는 점이 마냥 나쁜 것은 아니었다. 문득문득 '왜 위대하지 않은 게 분명한 인물을 위대하다고 규정지어 놓은 걸까?'라는 의문은 어디서든 피츠제럴드를 발견하면 관심이 가게 했다. 영화 <미드나잇 인 파리>에서도 가장 집중한 인물은 피츠제럴드와 그의 아내 젤다였고, 헤밍웨이가 파리에서 보낸 젊고 가난했던 시절을 아름답게 술회하는 『파리는 날마다 축제』에서도 피츠제럴드가 등장하는 부분이 유독 깊게 읽혔다. 아르테 시리즈 중 피츠제럴드 편을 점찍어 두었다가 언제라도 읽을 작정으로 『피츠제럴드×최민석』을 사 두었다.
운이 좋았다. 오랫동안 '의문'으로 붙잡고 있던 개츠비의 위대함에 대한 반발심이 단번에 이토록 개운하게 해결될지 몰랐다. 『월간 정여울』 중 2월의 책 <콜록콜록>을 읽다가 정신분석학자 자크 라캉의 3단 이론을 알게 되었다. 상상계-상징계-실재계로 이어지는 3단은 유아적인 환상-삶의 고통을 극복-무의식으로 깊이 들어가는 세계로 점점 단계가 높아진다. 이중 실재계는 '객관적으로 보면 안 될 것 같은데, 주관적으로는 어떻게든 반드시 그걸 해 낼 수 있을 것 같다'라는 확신을 가지는 단계이다. 이 대목에서 나는 개츠비를 떠올렸고, 그의 모든 환상, 자기 기만, 고집, 헛수고, 자기 파괴 등등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족적들이 그저 '실재계'를 역력하게 실현한 과정이자 결과라고 순순히 인정하게 되었다. 허무한 그의 종말마저도 이해하게 되었다.
( https://shinae7lee.blog.me/221461263021에 이 극적인 유레카 순간을 남겨 두었다)
대학시절 때도 개츠비를 이해하지 못하고 피츠제럴드에 대해 불편한 시선을 갖고 있는 한편, 이 불가사의한 세계에 대해 궁금했는지 『밤은 부드러워라』를 영어판으로 사 놓았었다. 언제 읽었는지 기억나지 않는데 사전에서 뜻을 찾아 적어 놓은 흔적을 쫓아보니 '완독'한 상태였다. 이 사실을 지난달에 발견, 과거 어느 시기에 내가 쏟았던 노력이 나 스스로부터 잊혀 버렸다니 당황스러웠다. 영어공부만 한 거였는지 내 기억 속에는 이 소설의 주인공 이름이라든가 주요 장면이라든가 대략적으로나마의 줄거리라든가 그 어떤 것도 남아 있지 않았다. 이 감쪽같은 황당한 사실을 뒤늦게나마 수습하기 위해 번역판을 구입하여 영어판과 병행 읽기에 나섰다. 번역본은 발간 당시의 초판본을 옮긴 것이고, 내가 '이미 읽은 것으로 발견된' 영어판은 피츠제럴드가 (이 책이 인기를 얻지 못하자 시간의 흐름을 조정한) 손수 작업한 수정본이었기 때문에 두 책의 순서를 짜 맞추느라 고생을 했지만, 충분히 흥미로운 몰입의 순간이었다. 혹시라도 이해하지 못하고 줄거리만 쫓아가는 초라한 읽기가 될까 봐 피츠제럴드 전문가 최민석의 『피츠제럴드』를 중간중간 참고하며 읽었다. 소설 속 개츠비, 영화 속 개츠비, 영화 속 피츠제럴드, 헤밍웨이가 말하는 피츠제럴드, 최민석이 풀어주는 개츠비와 피츠제럴드 등이 겹치고 얽히며, 나만의 개츠비-딕(『밤은 부드러워라』의 주인공)-피츠제럴드를 만들어가는... 실로 의미와 흥미가 충만한 읽기였다.
이 중에서도 딕 다이버는 피츠제럴드로 읽히며 딕의 아내 니콜은 피츠제럴드의 아내 젤다로 읽혔다. 소설의 인물이 아니라 실제로 소설 같은 삶을 살았던 이 피츠제럴드 부부를 직접 알아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피츠제럴드가 '재즈의 시대'라 불렀던 미국의 호들갑스럽고 이례적인 호황이 끝나가듯, 이 소설을 쓰고 있던 피츠제럴드도 『낙원의 이편』의 대성공이 선사했던 모든 호화로움에서 비켜나고 있었다. 자신의 인생에 드리워지는 어두움에 굴복할 수 없었던 피츠제럴드는 자신의 최고의 소설을 써내리라는 결의에 불타 장장 십 년간 『밤은 부드러워라』에 공을 들였다. 평단과 대중으로부터 시큰둥한 반응을 받자 이를 인정할 수 없어 내용을 수정하고 순서를 바꾸는 등 최고의 작품으로 되살려놓겠다는 의지를 불살랐다. 여전히 냉담한 평가(더불어 이미 파산지경에 이른 경제 상황, 젤다의 병세 악화 등 불운한 현실)에 괴로워하며 알코올에 더욱 의지하다가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난 피츠제럴드... 이렇다 할 만한 게 없는 집안 출신이지만 자신의 재능 덕택에 정신분석학자로서 전도 유망한 길을 가던 청년 딕이 (순진한 책임감에 의해서인지 부를 통한 신분 상승을 의도해서인지) 어마어마한 부자이지만 끔찍한 비극을 품은 환자였던(그 이후로도 어쩌면 영원히 환자의 상태 속에서 살았던) 니콜을 만나면서 롤러코스터 같은 인생에 접어드는 궤적과 거의 일치한다. 주체할 수 없는 호황으로 들썩이다가 대공황과 제2차 세계대전을 맞아 급격한 쇠락에 접어든 미국 사회의 변화와도 겹친다. 심각한 트라우마로 정신분열증을 겪고 있는 환자를 치료해야 하는 의사로서 역할을 견실히 수행하고 있었지만, 니콜이 지니고 있는 아름다움과 부가 약속하는 가능성을 뿌리치지 못하여 (아마도 이런 것이 얄궂은 운명의 장난 아닐까) 딕은 이 빛과 어두움을 오가게 될 롤러코스터에 탑승했다. 부, 아름다움, 명성, 인기가 보장된 것 같은 화려한 롤러코스터지만, 짜릿한 쾌감과 자기만족적 함성은 오래갈 수 없다. 뒤틀리기 시작한 현실은 그 어두움을 아슬아슬하게 가려주는 베일에 덮이고, 괴로움과 후회가 삐져나오는 위기의 순간에는 로즈메리로 대변되는 또 다른 환상이 내려앉아 파탄과 파멸을 숨겨버린다. 그러나, 본인들은 알고 있다. 모든 것이 허위이고 가장이고 신기루라는 점을. 누가 먼저 그만두자라고 말할 것인가라는 문제만 남았다. 딕은 내적으로 숨어들며 알코올에 더욱 의존하게 되고 니콜은 자신이 환자라는 사실이 더 이상 약점이 아니라는 자각에 이르러 당당해진다. 이 정도쯤 되면 결별은 수순이고 최종 승자는 니콜과 평생 그녀를 지켜온 돈이다. 딕은 니콜과 그녀의 집안의 돈이 몰고 온 소용돌이에 말려 건실한 인생의 빛을 잃었고 모든 회환에서 벗어나고 그 어떤 희망이라도 붙잡기 위해 알코올을 필요로 하는 나약한 인간으로 퇴락해버렸다. 참 사랑(역시 허무만이 가득한 인생을 놓아버릴 용기가 없었기에 지푸라기 잡는 심정으로 '참'이라고 이름 붙인 사랑)을 찾아 새로운 인생의 맛을 알아간다고 생각하는 니콜, 미국에서 의사로 활동을 재개하지만 여러 사건사고를 일으키며 점점 더 작은 동네로 옮겨 다니는 딕. 소설의 결말은 『위대한 개츠비』못지않게 여자 주인공이 승리한다. 바보처럼 한 우울만 파 오던 남자는 자신의 오판에 대한 책임을 고스란히 떠맡는다. 반면 크고 작은 도덕적 결점은 현실적 당위로 관대하게 덮어 버리고 부의 위력에 기대어 자신의 새로운 삶을 스스로 응원하는 쪽을 택하는 여자 주인공은 현실 속에 당당히 살아남는다.
누구나의 인생이든 갈수록 더 견고해지고 아름다워질 수는 없는 걸까? 세월이 흐를수록 어떤 이유에서든 또는 삶의 당연한 이치에 의해서 점점 '작아지는 자아'를 부둥켜안고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것일까? 차츰 허물어지는 인생에 '왜'라고 물음을 제기하고 '싫다'라고 반기를 든다면, 젊은 나날 자신 있게 꿈꾸었던 항로에서 한참 벗어나 방황하는 오늘의 모습에 더 민감하게 된다. 산사태처럼 덮쳐오는 후회와 회환마저 받아들일 수 없어 희망이라는 빛바랜 무기를 꺼내들고선 아무렇지도 않은 척, 내일이 더 나아지리라고 억지로 확신하기를 서슴지 않는다. 나도 마찬가지이다. 늘 굳건히 믿고 있고 이따금씩 친구들에게 말하기도 한다: 아직 나의 전성기는 오지도 않았다고. 나의 화양연화花樣年華(인생에서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순간)는 곧 다가올 거라고. 그래서 계속 살아가고 있게 된다. 딕도 그랬고, (좀 더 정확하게는 자기가 딕의 인생을 망쳤다는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지 않으려는 니콜이 바라건대) 딕은 언젠가 제때를 만날 것이었고, 피츠제럴드 역시 『밤은 부드러워라』로 자신의 최고의 시대를 열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다. 이 장편을 구상하고 집필하는 십 년 동안 확신은 의심으로, 자신감은 절망으로 바뀌는 사이 빛은 결국 어둠을 뚫지 못하고 피츠제럴드는 마흔다섯이 채 못되어 죽음을 맞이해버렸지만.
책을 다 읽기는 했지만, 진하게 곱씹으며 소화하지는 못한 독자로서 우선은 피츠제럴드에 대한 안타까움에 마음이 스산하다. 주인공 딕과 끝없이 오버랩되는 피츠제럴드의 인생을 생각하며 나의 인생에 대해서도 무기력과 허무함이 일고 있지만, 소설은 소설일 뿐이라고 일단락 짓는다. 다행스럽게, 『밤은 부드러워라』가 피츠제럴드의 사후 지위가 계속 상승하여 지금은 대중적 인기는 『위대한 개츠비』에 미치지 못하지만 평단의 평가에서는 우열을 가리기 힘든 대접을 받고 있다 한다. 따라서, 피츠제럴드의 확신이 억지는 아니었고, 그의 삶도 비극적으로 끝나버린 것은 아니라고 말할 수 있겠다. 오랜 세월 개츠비의 위대함에 딴죽을 걸어왔지만 알게 모르게 피츠제럴드 자체에 관심을 끊지 못하다가 '연구'하는 듯한 겸허한 자세로 『밤은 부드러워라』를 읽게 되었고 그래서 결국은 그를 내가 좋아하는 작가 리스트에 망설임 없이 올려놓게 된 지금, 적어도 내가 보기에 피츠제럴드는 객관성보다 주관성에 의지해 자신의 삶에 믿음을 가졌던 '위대한' 작가임에 틀림없다.
PS> 이 책의 제목 '밤은 부드러워라'는 영국 낭만주의 시인 존 키츠가 쓴 <나이팅게일에 부치는 노래 Ode to a Nightingale>에 나오는 한 구절이다. 나이팅게일은 유한한 인간세계와 달리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모든 사람들에게 즐거움과 아름다움을 가져다주는 불멸의 상징이자 무한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존재에 비유된다. 키츠의 아름다운 싯구를 빌어 피츠제럴드는 자신의 작품이 이러한 영원성을 가질 수 있기를 소망했을지도 모른다. 물론 그의 소망은 이루어지고 있다.
(---)벌써 그대와 함께 있노라! 부드러운 밤이여, 때 마침 달의 여왕께서, 선녀 별들에 둘러 싸여, 옥좌에 앉아 있네(---)
(---)Already with thee! tender is the night, And haply the Queen-Moon is on her throne, Cluster'd around by all her starry Fay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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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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