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

shinsee
- 작성일
- 2009.3.15
- 감독
- 제작 / 장르
- 개봉일
하지만 그러한 장면들이 연출되어 나온 배경 역시 당시 사회 안에 형성되어 있는 '맥락'이라는 것에서 비롯되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맥락은 자세히 들여다 보면 오늘날 우리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음을 알게 된다.
과장된 문어체 대사와 어줍잖게 영어를 섞어 쓰는 여대생의 모습,
한쪽에선 사랑에 목매지만 다른 한 쪽에선 자존심에 상처받을까 두려워 멀리 도망가는 연인.
불구가 된 자신의 몸을 스스로 한국전의 잔재라 부르며 자괴감에 빠지는 군인도,
택시 안에서 목적지를 잡지 못한 채 혼란스러워 하며 자신을 '조물주의 오발탄'이라 부르는 주인공 철호도,
배경이 바뀐 오늘날에도 어딘가에 살아가고 있을 법한 남루한 인생들이다.
갈 곳을 모르는 주인공 철호의 모습은 정작 본인은 치과에 들르지 못할 정도로 경제적 압박에 시달리면서도 아빠구실,
아들구실, 남편구실, 오빠&형구실, 서기구실 등등.. 수많은 사회적 기대와 역할에 휘둘리는 현대인의 모습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유현목 감독이 한국 영화 리얼리즘의 거장이라고 불린다고 하지만
한편으로 '리얼리즘'이란 전후 시대를 살아가는 극빈층을 세세히 묘사한 영화들에게 훈장처럼 수여되는 수식어인 듯한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리얼리즘' 영화가 평가받는 건 역사의 한 단면을 기록하는 측면에서의 가치가 높아질 시점에 이르러서야 가능한 것 같기도 하다.
영화 자체의 작품성도 그렇지만, 다큐멘터리적 성격을 지닌 '사료'로서의 기능을 인정받기까지는 적지않은 시간이 흘러야 하기 때문이다.
지금 이 영화는 60년대 초 암울했던 한국의 소시민의 생활을 적나라하게 보여줌으로써
당시를 경험해 보지 못한 젊은 세대에게 더욱 교육적인 텍스트로 기능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물론 지금 보아도 전혀 지루하지 않고 훌륭한 작품이라는 사실은 알겠지만
당시 여타 작품들과 비교해서 어떠한 차이점이 있으며 어떻게 훌륭한지도 설명할 능력이 아직 내게는 없으니
그 부분에 대한 진지한 감상은 다음 기회로 미루자.;;
주목해서 보고 싶은 것은 이 영화에 등장하는 6명의 여자 캐릭터에 관한 것이다.
맨 먼저, 가장 나이가 많은 철호의 어머니는 아마도 전쟁으로 인해 받은 정신적 충격으로 인해 앓아누운 채 매일 헛소리만 늘어놓는다.
'가자~ 아가.. 가자~'라고 끊임없이 중얼대는 어머니의 헛소리에 가족들은 이제 지쳤다는 듯 별로 신경조차 쓰지 않는다.
어느날 철호는 어머니에게 '가세요, 가실 수 있다면 제발 가시라구요!'라고 소리친다.
하지만 그 어머니가 가고자 하는 곳이 이미 과거에 있으며 그곳으로 다시는 돌아갈 수 없다는 사실을 철호는 너무나 잘 알고 있다.
철호의 어머니는 과거에 사로잡힌 망령이자 한국 역사의 희생양이다.
일궈놓은 모든 것을 남겨두고 차마 세상을 뜨지도 못하는 살아있는 '귀신'이 되어버렸다.
두 번째 여성은 철호의 여동생 '명숙'이다.
전쟁에서 불구가 되어 돌아온 애인을 여전히 깊이 사랑하지만
자존심 때문에 그녀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남자 때문에 그녀는 방황하다가 결국 양공주가 된다.
명숙에게는 두 오빠와 가족들, 애인이 있지만 그 누구로부터도 보호받지 못하는 존재이며
스스로 돈을 벌기 위해 미군들의 성적 노리개가 되는 길을 택하고 만다.
전쟁을 겪고 난 후의 한국사회는 그녀의 생존권을 보장해 주지 못하는 '반쪽짜리 인생'으로 전락했으며
그녀는 미국에 기대 목숨을 스스로 부지할 길을 찾게 된 것이다.
명숙이 양공주가 되었단 사실을 알게 된 남자는 아예 멀리 떠나 버린다.
세번째는 대학에 다니는 여대생 '설희'다.
영호가 사랑하(는 것처럼 보이)는 여인으로 말 중간중간에 영어를 섞어 씀으로써 스스로 식자층의 여성임을 드러내고 있다.
욕망에 솔직하고 활달한 그녀는 학비를 벌기 위해 지하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지만 사람들을 내려다 보며 살고 싶어 일부러 옥탑방을 얻는 성공지향적인 면모 역시 갖추고 있다.
하지만 그녀의 희망은 이루어지지 못하는데 그녀를 사모하는 옆집 청년에 의해 동반자살(당)하게 된 것이다.
당시 꿈꾸는 자에게 희망이 허락되기란 참으로 힘든 세상이었다는 듯.
네번째는 철호의 처다.
주인공의 아내임에도 불구하고 변변한 대사 한 마디 없고 항시 피곤한 얼굴로 살림하는 모습만 나오는 이 여인은
시어머니의 헛소리가 이어질 때도 초점없는 표정으로 시어머니 얼굴을 응시하고,
남편이 내미는 월급봉투를 아무렇지 않게 받아 주머니에 쑤셔 넣으며 말없이 지나쳐 버리는, 이미 현실에 무뎌질대로 무뎌진 여인이다.
매일 겪는 생활고에도 지긋지긋하다는 푸념 한 번 뱉지 않는 그녀의 하루하루는 그저 시간이 빨리 지나가 죽음에 이르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사람처럼 보이기도 한다.
결국 둘째 아이를 낳다 죽게 되는 그녀는 망가진 전세대의 뒷처리와 다음 대를 잇는 역할 이외에는 별달리 할 수 있는 것이 없었던 그 당시의 숱한 여인들의 모습을 대변하는 듯 하다.
다섯째는 영호와 약간의 연분이 있는 신여성 '미리'다.
60년대에 '신여성'이라는 표현이 잘 어울리지 않을지 모르지만 '미리'는 이제 갓 데뷔한 신인여배우로서 가장 현대적인 직업을 갖고 있는 인물로 그려진다.
그녀는 영호에게 배우직을 권할 정도로 적극적이고 생활력이 강하지만
영호의 변덕에 순종하는 전통적 여성상을 보이기도 하고 경찰에 쫓기는 영호에게 자수를 권하는 평범한 윤리의식의 소유자이기도 하다.
하지만 먼저 그녀에게 일자리를 부탁했던 명숙에게는 싸늘한 반응을 보임으로써
남성에게는 순종적, 적극적이면서도 같은 여성들끼리 연대하지 못했던 당시 여성들의 관념을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으로 또 한 명의 여성 캐릭터는 철호의 딸아이다.
예닐곱살 쯤 되어 보이는 이 아이의 관심사는 누룽지를 훔쳐 먹거나 새 신발을 갖는 것이다.(대부분의 모든 아이들이 그러하듯이)
삼촌(영호)이 새신발을 사다 준다고 하거나, 화신(백화점) 구경을 데려간다거나 하는 말에 대뜸 '거짓말'이라고 받아치는 냉소적인 이 소녀의 희망사항은 이제까지 그다지 실현된 적이 없어 보인다.
하지만 영호는 조카에게 새 신발을 사주겠다는 약속을 결국 지키고, 철호에게 화신 구경을 시켜주라는 부탁을 한다.
그리고 명숙은 철호의 둘째 아이를 보며 우리가 이 아이를 웃게 해 주어야 하지 않겠느냐고 독백한다.
이렇게 모든 희망은 다음 세대로 미뤄졌다.
하지만 그 모든 짐을 어깨에 짊어진 철호는 그 시간 택시 안에서 갈 방향을 잃어버리고 헤매고만 있다.
이를 뽑고 나서 정신이 혼미해진 상태로 택시에 탄 철호는
정신나간 자신의 어미처럼 '가자~'고 읊조린다.
택시 운전사의 말처럼, 그러게, 대관절 어디로 가잔 말인가?
본인도 그 목적지를 모르면서.
60년대 한국영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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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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