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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영
- 작성일
- 2019.6.17
소년이 온다
- 글쓴이
- 한강 저
창비
너에게 하고 싶은 말
- 한강, <소년이 온다.>, 창비, 2014
10613 신선영
나는 다른 장르도 다 좋아하지만 한국의 역사를 담은 내용을 특히 좋아한다. 그리고 나는 같은 말이라도 좀 더 예쁘게 설명하고 좀 더 세세하게 설명하며 전개되는 이야기를 대체적으로 더 좋아한다. 그래서 어떤 책이 좋을지 고민을 하다가 글을 예쁘게 쓰신다는 한강 작가님의 작품이자 평점도 높았던 ‘소년이 온다.’를 선택하게 되었다.
먼저 ‘소년이 온다.’의 표지를 보면 안개꽃이 많이 있는 것을 볼 수 있을 것이다. 이 책 내용이 광주 5.18 이라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은 그냥 ‘아 작가님이 안개꽃을 좋아하시나보다.’ 하고 넘길 수 있는 부분이다. 하지만 광주 5.18 이라는 것을 아는 나는 저 안개꽃이 의미하는 바가 있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안개꽃의 꽃말을 찾아보았다. 긍정적인 의미로는 간절한 기쁨, 밝은 마음 등이었고, 부정적인 의미로는 슬픔과 죽음이었다. 꽃말을 보고 나는 그저 간절하게 민주화를 요구했을 뿐인 광주시민들과 그것을 폭동이라 여기며 탄압하려한 정부에 의해 죽음을 당한 광주 시민들을 한 편의 소설에 담기 전에 책의 얼굴이라 할 수 있는 표지에 그 의미를 담고자 한 작가님의 큰 그림이 아니었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리고 ‘소년이 온다.’는 장마다 서술자가 계속 바뀌기 때문에 살짝 이해하기 힘든 경향이 없지 않아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의 입장에서 그 사건을 접할 수 있다는 좋은 면도 있다.
그 날의 아픔
‘소년이 온다.’에서는 고문을 당하는 장면을 매우 구체적이고 실감나게 표현해 놓았다. 그래서 책을 다 읽고 나면 고문을 당하는 장면들이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다.
나는 특히 진수 형이 감옥에서 고문 받는 장면이 오래 기억에 남았다. 진수 형이 받은 고문 중에 특히 모나미 볼펜 고문. 모나미 볼펜 고문은 모나미 볼펜을 손가락에 교차시켜 끼우게 한 다음 비트는 것이다. 피가 나고 진물이 나 서로 뒤섞이고, 심지어 뼈가 드러나도 멈추지 않는다. 내가 이 장면을 읽을 때에는 정말 온 몸에 소름이 쫙 끼치고 눈물이 맺혔던 것 같다. 상처가 난 곳은 스치기만 해도 아픈데 상처가 심하게 난 곳에 똑같이 계속 고문을 가한 것만 봐도 고문의 수준이 얼마나 잔인했는지 알 수 있는 것 같다.
그 다음으로 기억에 남는 이야기는 은숙누나의 이야기이다. 은숙누나는 민주화 운동에 직접적으로 참여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작가의 책을 출판하기 위해 만났다가 그 작가와 만났다는 이유로 추궁을 받게 되었다. 모른다고 이야기해도 아는 대로, 사실대로 말하라며 때리는 상황이 너무 이해가 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때 당시에는 너무나도 당연하다는 듯이 행동한 것이라고 생각하면 너무 마음이 아프고 안쓰러웠다. 원래 나는 총을 들고 계엄군과 맞서 싸우는 것만이 민주화 운동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3장 부분을 읽고 은숙누나가 연극을 하는 것과 같이 민주화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알리는 것 또한 민주화 운동 중 하나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만약 내가 은숙누나처럼 뺨을 맞으며 추궁 당했다면, 뺨을 몇 대 맞았을 때쯤에 이미 무서워서 덜덜 떨며 몰라도 안다고 하면서 내가 아는 모든 것을 실토했을 것 같다. 그런 점에서 은숙누나가 참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마지막으로는 선주누나 이야기가 떠올랐다. 선주누나의 이야기에서는 그 당시 여성들의 힘든 생활상을 엿볼 수 있었다. 머리채가 잡혀 끌려 나가고 입원을 해서 며칠 공장에 나오지 않았다는 이유로 해고 통보를 받았다. 거기다 선주누나는 여자로서 가장 수치스럽고 끔찍한 성고문도 받았다. 이 장면을 표한한 글을 보는 순간 온 몸에 소름이 돋고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선주누나가 했었던 말 중에 가장 안타깝고 마음이 아팠던 말이 있었다. 바로 이 구절이다. ‘몸을 증오하게 되었다고, 모든 따뜻함과 지극한 사랑을 스스로 부숴뜨리며 도망쳤다고 증언할 수 있는가? 더 추운 곳, 더 안전한 곳으로. 오직 살아남기 위하여.’(167p 中) 이 한 구절을 통해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 자체가 힘들고 그 당시의 여성들의 힘듦을 알 수 있게 되었다. 살아남기 위해 더 먼 곳으로 도망쳤다는 의미 인 것 같아서 더 슬프고 마음이 아팠다.
정말 어떻게 같은 사람한테 이토록 잔인한 짓을 할 수 있을까. 저런 짓을 하고도 죄책감이나 미안함은 들지도 않았을까? 저런 잔인한 짓을 한 사람에게도 ‘사람’이라 칭하며 존중해야한다는 자체가 너무 싫다. 또, 저런 나쁜 짓을 저질렀던 사람들이 당시 피해자분들이나 유가족 분들보다 훨씬 더 멀쩡히 풍요롭게 살아가고 있다는 사실이 너무 어이가 없고 화가 났다. 내가 이 일을 벌인 것도 아니고 저 당시에 태어나서 직접 고문을 당했다거나 그 분들을 도울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피해자분들과 유가족 분들의 마음을 다 이해할 수는 없다. ‘소년이 온다.’를 읽으면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고작 함께 슬퍼하고 공감하며 민주화를 위해 자신의 목숨을 희생하고 가족을 잃으신 분들께 감사하며 사는 것이 전부 일 뿐이라는 것이 죄송스러웠다.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면서 살아가는 것보다는 하나라도 더 알고 살아가는 것이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내 인생에 불평하지 않고 주어진 것에 항상 감사하며 살아야겠다고 다짐했다.
그 날의 슬픔
작품 속에서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았던 인물이 여러명 있었다. 기억에 남았던 첫 인물은 정대이다. 정대가 가장 오래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정대가 서서히 죽어가는 장면이 머릿속에서 잊혀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내가 만약 정대였다면, 볼 수밖에 없다 하더라도 내 자신이 죽어가는 모습을 차마 볼 수 없었을 것 같다. 다른 시체들과 뒤섞여 있는 내 몸, 그 몸들이 썩어가는 모습, 그 위에 날아다니는 파리와 각종 벌레들. 아무리 영혼이 되어서 제3자 입장에서 보는 것처럼 보인다 하더라도 엄연히 내 모습이기 때문에 너무 무섭고 ‘내가 왜 그랬을까?’ 후회했을 것 같다. ‘썩어가는 내 옆구리를 생각해. 거길 관통한 총알을 생각해. 처음엔 차디찬 몽둥이 같았던 그것, 순식간에 뱃속을 휘젓는 불덩어리가 된 그것, 그게 반대편 옆구리에 만들어놓은, 내 모든 따뜻한 피가 흘러나가게 한 구멍을 생각해. 그걸 쏘아 보낸 총구를 생각해. 차디찬 방아쇠를 생각해. 그걸 당긴 따뜻한 손가락을 생각해. 나를 조준한 눈을 생각해. 쏘라고 명령한 사람의 눈을 생각해.’[‘소년이 온다.’ 2장 中] 이 말을 정대가 서서히 죽어가면서, 피가 온 몸에 뒤덮여 썩어가는 자신의 몸을 보면서 하는 말이라고 나는 생각했다. 그래서 정대가 더 안타깝고 가슴이 아팠다.
두 번째 인물은 동호이다. 동호는 정대와 친구이자 정대가 계엄군이 쏜 총에 옆구리가 맞아 죽어가는 모습을 목격했던 인물이다. 나중에는 동호도 괴로워하며 살아가다 계엄군이 쏜 총에 맞아 죽고 만다. 동호는 정대의 시신을 찾기 위해 시신을 수습하는 알을 돕는다. 내가 만약 동호였다면, 동호처럼 친구를 찾기 위해 시신을 수습하는 일을 돕기는커녕 친구가 내 눈앞에서 죽었다는 것만으로도 충격이 커서 일상생활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동호가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어린 나이에 그런 끔찍하고 잔인한 일을 겪게 된 동호와 정대. 나보다 어린 아이들이 그런 일을 겪었다는 것에 대해 굉장히 놀랬고 안타까웠다.
세 번째 인물은 동호엄마이다. 동호엄마의 이야기가 기억에 남았던 이유는 동호를 향한 모성애가 잘 느껴졌기 때문이다. 동호를 데리고 돌아오지 못해 그 날 동호가 죽게 되었다는 죄책감에 슬퍼하며 하는 모든 말들이 가슴에 와 닿았다. 특히 ‘네 중학교 학생증에서 사진만 오려갖고 지갑 속에 넣어났다이. 낮이나 밤이나 텅 빈 집이지마는 아무도 찾아올 일 없는 새벽에, 하얀 습자지로 여러번 접어 싸놓은 네 얼굴을 펼쳐본다이. 아무도 엿들을 사람이 없지마는 가만가만 부른다이. 동호야.’(192p) 이 부분이 가장 슬픈 감정이 들었던 것 같다. 나는 아직 엄마를 해 본적이 없지만 이 부분을 읽을 때만큼은 내가 엄마가 된 것 같은 기분을 느꼈다. 그래서 동호엄마의 감정에 몰입이 더 잘되었던 것 같다. 나는 이렇게 생각했다. 자식이 부모를 잃을 때는 늙은 부모를 떠나보내는 것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마음의 준비를 하는 편이 많을 것이지만 태어날 때부터 몸이 약했던 아이들을 제외하고는 자식이 먼저 떠날 것이라는 생각하는 부모는 이 세상에 없을 것이라고. 그래서 나는 자식 잃은 부모만큼 슬픈 사람은 없다고 생각했다. 물론 그 날의 광주에 슬프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누구나 이별을 하면 슬프고 마음 아픈 것이 당연한 것이지만 부모자식관의 관계보다 두터운 것은 없다고 생각했다.
80년 5월의 광주
나는 앞서 말했다 시피 역사 관련된 이야기를 평소에도 좋아해서 우리나라 역사를 담은 영화를 자주 보는 편이다. 그런데 영화를 보는 것에 비해 역사 관련 책을 찾아 읽는 것은 드물었다. 어떤 계기로 인하여 ‘소년이 온다.’를 읽게 되었는데 그런 영화를 자주 본 것이 ‘소년이 온다.’를 보면서 장면을 상상하거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던 것 같다. 이 책의 주요 내용은 80년 5월의 광주이다. 내가 본 영중에 가장 먼저 떠올랐던 것이 하나 있다. 바로 ‘화려한 휴가’이다. 책을 읽다보면 4장 ‘쇠와 피’에서 계엄군이 도청에 도착하기 10분 전에 스무 살의 어린 학생이 열일곱, 열여덟 정도의 어린 고등학생에게 이런 말을 하는 장면이 있다. ‘우리는 버틸 수 있는 데까지 버티다 죽을 거지만, 여기 있는 어린 학생들은 그래선 안 된다. 항복해야 돼. 만약 모두 죽을 것 같다고 생각되면. 총을 버리고 즉시 항복해. 살아남을 길을 찾아.’(116p 中) ‘그러니까 이 사진에서 이 아이들이 나란히 누워있는 건, 이렇게 가지런히 옮겨놓은 게 아닙니다. 한 줄로 아이들이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 우리가 시킨 대로 두 팔을 들고, 줄을 맞춰 걸어오고 있었던 겁니다.’(133p 中) 이 장면을 읽고 ‘화려한 휴가’의 장면 중 계엄군들이 한 명의 시민을 마치 과녁인 마냥 수없이 많은 총알을 쏘아 죽이는 장면이 소설 속의 내용과 비슷하다고 생각하여 떠올리게 되었다. 그리고 또 떠오른 영화가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26년’이라는 영화이다. 이 영화 초반을 보면 계엄군들이 광주 시민을 어떻게 무차별하게 학살 하였는지 잘 표현되어 있다. 그런데 학살하는 장면은 너무 잔인해 만화로 표현되어있다. 예를 들면 총알이 몸을 관통해 장기가 몸 밖으로 쏟아지는 장면이 있다. 하지만 만화로 표현함으로써 그 날의 잔인함이 더 잘 표현되는 것 같았다. 영화 마지막에는 전두환 전 대통령을 사살하려는 장면으로 끝이 나게 된다. ‘당시 얼마나 힘들고 잔인했으면 이런 영화가 나왔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이 온다.’와 두 영화에서 공통적으로 표현되는 부분은 ‘계엄군들이 광주 시민에게 총을 겨누었다.’라는 것이다. 시민들을 지켜야할 의무를 가진 군인들이 어떻게 시민들에게 총을 겨눌 수가 있을까.
너에게 하고싶은 말
이 책을 읽으면서 80년 5월 광주의 모습과 광주 시민들의 모습을 원래 알고 있던 것보다 훨씬 더 자세히 알게 된 것 같아 좋았다. 우리는 우리들의 역사를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아니, 우리는 우리의 역사를 알아야 한다. 멋진 역사든, 부끄러운 역사든 사실 그대로 배우고 알아야 광주 5.18과 같은 비극이 다시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다. 과거를 반성하지 않고 똑같은 실수를 반복 한다면, 그것이야 말로 정말 부끄러운 역사가 될 것이다. ‘39년이 지난 지금이라도 그때 나쁜 짓을 한 사람들은 벌을 받고 피해자, 유가족 분들에게는 보상을 해주었으면 좋겠다.’ 하는 생각이 들었다.
‘소년이 온다.’는 80년 5월의 광주, 광주 민주화 운동을 자세히 알지 못하는 사람, 당시 상황을 자세히 알고 싶은 사람, 광주 민주화 운동을 폭동이라 여기는 사람들이 꼭 읽었으면 좋겠다. 저런 사람들이라고 예를 들기는 하였지만 사실 한글을 읽을 수 있는 모든 사람이 한 번쯤은 읽으면 좋을 책이라고 생각한다. ‘소년이 온다.’를 읽는다면 우리의 아픈 역사를 다시 한 번 가슴에 새길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고, 이를 반성하며 다시는 이러한 비극이 일어나지 않도록 노력하게 될 것이다. ‘소년이 온다.’를 읽는, 이 글을 읽는 모든 사람들에게 이런 말을 해주고 싶다.
“‘소년이 온다.’를 읽을 때만큼은 주인공들의 친구, 가족이 되어 1980년 5월 18일 그 당시로 돌아가 함께 공감하고 분노하고 슬퍼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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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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