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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sachina
  1. ━ 중국 상식 A to 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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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7080세대 핵폭탄 록커, 최건(추이젠, 崔健)을 아시나요?


 


안녕하세요? 리틀씨 기자단 4기 안지혜 입니다. 중국의 젊은이들은 무엇에 기뻐하고 무엇에 슬퍼하며 살까요? 그들은 무엇을 희망하며 무엇에 절망하고 있을까요? 우리나라의 젊은 사람들과는 어떤 점에서 닮았고 어떤 점에서 다를까요? 이 질문들에 대한 대답을 구해가는 한 가지 방법으로 젊은이들의 문화, 청년문화를 살펴보는 방법이 있습니다. 그래서 1980년대 중후반부터 1990년대의 청년문화를 대표하는 문화아이콘 가운데 한 사람인 최건(추이젠, 崔健)과 그의 음악을 통해 중국 청년문화의 시작을 살펴보도록 할게요.


 


 


<읽기 전 손가락을 눌러주는 센스!>


 


 


 








 





< 一无所有 >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


 


我曾经问个不休 你何时跟我走
난 줄곧 내게 물었지 언제나 나와 함께 가려냐고



可你却总是笑我 一无所有
하지만 넌 늘 날 비웃었어,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我要给你我的追求 还有我的自由
난 네게 나의 꿈을 주고 싶고 또 나의 자유를 주고 싶어



可你却总是笑我 一无所有
하지만 넌 늘 날 비웃었지,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噢 你何时跟我走
오 넌 언제나 나와 함께 가려나


 


脚下的地在走 身边的水在流
발밑의 대지가 움직이고 우리 곁의 저 강물은 흘러가네



可你却总是笑我 一无所有
하지만 넌 늘 날 비웃었어, 아무것도 가진 게 없다고



为何你总是笑个没够 为何我总要追求
왜 넌 날 비웃고 비웃는지, 왜 난 끊임없이 꿈을 추구하는지



难道在你面前 我永远是一无所有
설마 네게 난 영원히 아무 것도 가진 게 없는 존재일까



噢 你何时跟我走
오 넌 언제나 나와 함께 가려나


 


告诉你我等了很久 告诉你我最后的要求
내 말 들어봐 난 한참을 기다렸어, 이제 내 마지막 바람을 말해줄게


我要抓起你的双手 你这就跟我走
난 네 두 손을 꽉 움켜쥐겠어, 넌 이제 나와 함께 가는거야



这时你的手在颤抖 这时你的泪在流
지금 네 손은 떨리고 있어, 눈물이 흐르고 있어



莫非你是在告诉我 你爱我一无所有
분명 넌 내게 말하고 있는 거겠지, 내게 아무것도 없음을 사랑한다고



噢 你这就跟我走
오 이제 나와 함께 가는거야



 


 








 
 중국 록음악의 아버지라고 불리는 최건(崔健)의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一無所有)>의 가사입니다. 록음악이라는, 당시로서는 생소했던 ‘새로운’ 음악을 시도하고 있던 최건은 1985년에 북경의 텔레비전 방송국이 주최한 가요경연대회에 출연하면서 대중에게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이듬해에 ‘국제평화의 해’를 기념해 ‘세상에 사랑이 충만하길’이란 주제의 음악회에서 이 노래를 연주하여 폭발적인 호응을 얻었습니다. 최건은 이 무대를 통해 일약 중국 청년문화의 중심에 들어서게 됩니다.


 


 







 
 그렇다면 과연 최건 노래의 어떤 면이 동시대 청년 청중들과 어떤 지점에서 만났던 것일까요? 바로 그를 세상에 알렸고 또한 그를 곤란한 처지에 있도록 만든 곡, <아무 것도 가진 게 없어>로부터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습니다.



 이 곡의 노래 가사에서 주목되는 바는 ‘나에게는 아무것도 없다’는 의식 그리고 ‘떠남’의 추구입니다. 최건이 속해 있는 ‘신생대(新生代)’는 문화대혁명의 직접적인 영향을 거의 받지 않았고 1970년대 말부터 진행된 개혁개방의 혜택을 받은 세대입니다. 이들은 물질적•문화적인 면에서 이전의 세대들과는 비할 데 없는 풍요와 다양함을 누릴 수 있게 된 세대이지요. 그런데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그것은 이들이 이전 세대들이 가졌던 확고한 가치 기준, 인생의 목표, 부강한 사회주의 국가 건설의 비전, 인류의 미래에 대한 믿음 등을 결여하고 있다는 것과 상통합니다. 이 세대는 개혁개방과 함께 중국이 세계적 차원의 자본주의화와 사실상 동보적(同步的) 입장에 서게 되면서, 집단보다는 ‘나’를 인식과 사유의 중심에 두게 됩니다. 이로 인해 이들은 사회주의 체제 성립 후 수 십 년 동안 보류되고 있던 곤혹스러운 질문들에 접하게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야스퍼스가 지적한 바 있는 전인류의 의식을 규정하게 된 세 가지 ‘결핍’ – 역사적 전통의 몰락, 주도적인 추세 혹인 방향성에 대한 기본적 인식의 결여,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당혹감과 좌절감을 이들 역시 경험하게 된 것이지요.


 


 (*야스퍼스? - )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음’은 한편으로는 자유와 꿈을, 한편으로는 상실과 공황을 뜻합니다.


 


 최건의 노래들은 바로 이 같은 경험을 하고 있던 세대의 내면과 제대로 접속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최건이라는 사람


 





 최건은 조선족 중국인으로 1961년에 트럼펫 연주자였던 아버지와 무용수였던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습니다. 인민공화국 수립 이후에 태어난 세대이면서 문화대혁명의 영향을 직접 겪지 않은 세대 즉 ‘제4세대’에 속하는 인물이지요. 어려서부터 음악 수업을 받은 최건은 1981년 북경관현악단의 트럼펫 주자로 입단합니다. 그리고 바로 같은 시기에 그는 북경을 드나들던 외국인 여행객들과 유학생을 통해 소개되기 시작한 서양 대중음악을 접하게 되며 기타를 본격적으로 치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1984년, 그는 자신과 비슷한 흥미를 가지고 있던 동료 음악인들과 함께 ‘칠합판(七合板)’이라는 밴드를 조직합니다. 이들은 외국인들이 출입하는 호텔 바 같은 데에서 서양 대중음악을 연주했는데 자신들이 연주하던 번안곡을 모아 음반을 내기도 했습니다. 이 밴드가 연주하던 음악은 당시 중국에서 유행하고 있던 포크송 부류의 음악이거나 달콤한 연가 풍의 노래들이었습니다. 최건이 본격적인 록음악을 접하게 된 것은 이 즈음이었다고 합니다. 최건은 같은 해에 <내가 모르는 건 아니야>를 작곡하면서 곧바로 록음악으로 전향했고 이와 함께 칠합판 밴드는 이듬해 해체되었습니다.  클래식 악단(북경관현악단)에 소속되어 있으면서 대중음악을 연주하는 밴드(칠합판)를 조직한 것이 한 차례 일탈이었다면 대중음악으로부터 록음악으로의 방향 전환은 또 한 차례 일탈이었던 셈입니다. 


 


 







 





 그는 1986년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의 발표와 함께 그를 대중에게 확실히 각인시킴과 동시에 대중으로부터 격리되기 시작했습니다. 이 곡이 발표될 즈음 북경의 대학가에서는 기타 열풍이 불고 있었는데, 최건의 음악은 그 붐에 불을 당겼어요. 강렬한 소리와 격정적인 비트, 그리고 무엇보다도 최건의 거친 목소리는 당시 유행하고 있던 전원적이고 사색적인 캠퍼스 포크송으로는 도저히 충족되지 않는 어떤 열망•욕구와 만났습니다.


 


 그의 음악의 잠재적 위험성을 감지한 당국은 그가 혁명 가곡 <남니만(南泥灣)>을 부적절하게 연주했다는 꼬투리를 잡아 한 해 동안 연주 활동을 금지시켰습니다. 제4세대들의 목소리가 구체적인 주장으로 결집되고 있던 것이 1985•1986년 즈음이었으며 동시에 이들의 행태가 직접적 제재의 대상이 되기 시작한 것도 이 무렵부터였습니다. 최건이 바로 이 무렵 록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고, 곧바로 제재의 대상이 된 것이죠. 1987년, 스스로 자초한 셈이었지만 최건을 결국 그 동안 몸담고 있던 ‘딴웨이(單位)’인 ‘북경관현악단’에서 제명됩니다. 음악인으로서의 안정된 생활을 뒤로하고 본격적인 아웃사이더로서의 삶을 시작하게 된 것이지요. 1989년 봄, 최건은 밴드 ADO와 함께 천안문 광장에 모인 시위 군중 앞에서 한 차례 공연을 하는데, 이때에도 <아무것도 가진 게 없어>는 즉각적인 반응을 얻어 시위가로 탈바꿈하였습니다.


(*ADO? 헝가리 출신 베이시스트 카사이 발라츠Kassai Balasz와 마다가스카르 출신 기타리스트이자 타악주자 에디 피오노나Eddie Randriama Pionona가 속해 있던 밴드) 이 공연으로 요주의 인물로 지목된 그는 공식적인 활동 특히 대규모 공연의 기회를 박탈당합니다.


 


 1990년, 최건은 공연에서 얻은 수입을 북경 아시안 게임의 경비로 기부하기로 하고 전국 대도시 순회공연을 허가받게 됩니다. 가는 곳마다 대규모 관중을 동원한 그의 공연은 결국 중도에서 치안 문제로 금지당하고 말았어요. 사천(四川)성 성도(成都)에서의 공연이 거의 폭동에 가까운 상황을 야기했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유로 그의 음악이 군중의 정치적 행동과 연계되는 것이었을까요?



 최건의 노래들은 정치적 메시지를 드러내 놓고 있지는 않습니다. 그렇지만 정황에 의해 ‘정치성’을 부여받았고 청중들이 그의 음악에 강한 정치성을 부여하고 있었던 것은 분명합니다. 그의 노래가 천안문에 모인 시위대의 마음을 움직인 것은 그것이 ‘가자’, ‘떠나자’라고 외치고 있기 때문이지, 딱히 ‘어디로’ 가자가 규정되어 있기 때문은 아닙니다. 오히려 ‘어디로’가 모호하기 때문에 제4세대가 대부분을 이루었던 시위대의 심정과 만남을 이룰 수 있었던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언제까지고 반항적인 더벅머리 청년일 것 같던 최건도 어느덧 50대에 들어섰습니다. 그의 음악에 열광하던 젊은이들도 이제는 중년의 나이입니다. 당시 청년층의 그와 같은 혼란과 갈망은 거대한 정치적 갈등의 소용돌이 속으로 말려들어갔고 결국 인민의 군대가 자신이 지켜야할 인민들에게 총구를 겨누고 유혈 진압을 행함으로써 1989년의 천안문 시위는 끝을 맺습니다.


 21세기로 접어든 지금, 개혁개방 이후에 태어난 ‘제5세대’의 젊은이들은 최건의 존재를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사실 현재의 젊은 중국인들은 음악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최건’이라는 가수가 당시 얼마나 많은 영향력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인지 잘 알지 못합니다. 한국의 ‘서태지와 아이들’이 한때 한국 대중음악계에 획기적 문화현상이었지만 현재 10대, 20대 초반 세대들은 그들에 대해 잘 모르는 것과 같은 맥락이죠.


 


  








 


 생각해보면 한국에서도 ‘최건’과 공통점이 있는 가수들이 있습니다. 바로 한국 포크음악 가수 양희은과 트로트의 여왕 심수봉입니다. 그들은 어두운 한국 현대사에서 대표적으로 음악적 희생을 강요당한 가수들입니다. 양희은은 군사정권에 의해 1973년 ‘아침이슬’을 시작으로 ‘작은 연못’, ‘백구’, ‘늙은 군인의 노래’ 등 30여 곡이 잇달아 금지곡 리스트에 올랐습니다. 심수봉은 1979년 10.26사태 당시 현장에 있었던 이유로 방송출연을 금지 당한 이래 ‘순자의 가을’, ‘무궁화’ 등이 방송금지 당했습니다. 지금은 시대적 상황이 변했지만 그들 노래에 담겨있는 혼과 의미, 정신은 현재까지도 큰 영향력이 있습니다.


 




(최건의 최근 공연 모습과 열광하는 중년 관중들)


 


 







 


 같은 의미로 시장화에 따른 지역간•계층간 빈부격차가 점점 심화되고 있는 중국에서, 최건의 외침은 여전히 의미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현재 중국의 젊은이들은 아마도 돈 많이 버는 것, 좋은 배우자를 얻고 안락한 삶을 누리는 것, 그리고 외국여행의 꿈을 갖고 있을 것입니다. 이 정도가 ‘중국식 특색을 갖춘 사회주의’의 수혜를 충분히 받은 대도시 중산층 젊은이들의 평균적 꿈일테니까요. 이들은 자신들만의 문화를 ‘만들어가기’보다는 대단히 상업화된 대중문화의 소비자로서 안주하는 경향이 강합니다. 과거에 비해 사회가 많이 바뀌었고 규제도 많이 풀리긴 했지만 아직도 중국사회에는 많은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빈부격차, 환경문제가 대표적이며 90년대 중후반부터 생겨난 ‘한류열풍’ 또한 생각해볼 문제입니다. 사실 ‘한류’라는 말 자체가 중국 언론이 지은 단어입니다. ‘사랑이 뭐길래’라는 드라마가 중국에서 인기를 끌었고 대만에서는 댄스그룹 ‘클론’이 인기를 모았습니다. 그 이후로 중국에서 한국 가수, 배우들의 인기는 치솟았죠. ‘한류’라는 것이 가능하기까지는 ‘개방형’ 사회주의 체제가 첫번째 가장 큰 전제였겠죠. 현재 대부분의 젊은이들은 이 체제가 가져온 수많은 어두운 면들(빈부격차 등)보다는 그것으로 인해 가능했던 문화수입을 수동적으로 무분별하게 소비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하지만 소수의 용기 있는 젊은이들은 위험과 불이익을 감수하고서라도 당국의 규제와 문화산업의 규정을 넘어서서 자신들의 목소리로 질문을 던지고, 반항하고, 다르게 보고, 이 세상을 사는 존재의 의미를 따지고 싶어 합니다. 이들에게 최건은 철지난 중년 로커가 아닌 청년문화의 현재형입니다. 최건의 음악정신이 널리 퍼져서 중국 사회에 일침을 가하는 청년 문화가 다시 부활했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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