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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 중국 현지 A to Z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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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화단의 대표, 장샤오강 그리고 유에민준~!


 








 


 안녕하세요? Little C 대학생기자단 한선영입니다. 여러분들은 혹시 중국의 현대 미술에 관해 들어본 적이 있으신가요? 중국 현대 미술은 세계적인 경매회사 소더비와 크리스티가 2004년 10월 경매를 시작한 이래로 3년 만에 그 경매가가 440%이나 상승했다고 하는데요. 바로 그 중국 현대미술의 중심에 있는 작가 두 분을 여러분들에게 소개해드리려고 합니다! '중국의 4대 화단'으로 꼽히기도 하는 장샤오강과 유에민준이 그 주인공인데요. 혹시 이름이 생소하시더라도, 작품을 보면 '아~이거구나!' 하실 분이 많을 것 같아요. 그렇다면, 우선 두 화가의 대표적 작품들을 살펴볼까요?


 


 


<읽기 전 손가락을 눌러주는 센스!!>  


 



 


 

 

- 장샤오강 작품


 





 


(출처: 바이두)   


 


- 유에민준 작품


 




 


(출처: 바이두) 


 


 두 그림 모두 화가의 톡톡 튀는 개성을 엿볼 수 있네요. 하지만 두 화가의 작품 분위기는 많이 다르다고 느껴지시죠? 하나는 어둡고 우울한 느낌이라면, 다른 하나는 밝고 유쾌한 느낌입니다. 그렇다면 두 작가 모두 이런 그림을 통해 무엇을 표현하고자 했던 것인지, 그리고 그들의 인생은 어떠했는지, 지금부터 저와 함께 알아보도록 해요~


 


 



 






 


1. 장샤오강 (張曉剛)


 


1) 화가로서의 첫 발걸음 



 장샤오강은 1958년 중국 윈난성 쿤밍에서 태어났습니다. 현재 중국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엄청난 명성을 가지고 있는 그이지만, 어렸을 때부터 체계적으로 미술을 공부한 것은 아니었다고 해요. 장샤오강은 미대 입시를 한 달여 앞둔 시점에서, 그냥 '친구들 따라' 입시 준비를 시작했다고 하네요. 많은 오디션 프로그램을 보면 꼭 오랫동안 준비했던 사람 말고, 그를 따라간 친구가 덜컥 붙곤 하죠? 장샤오강도 함께 준비했던 친구를 제치고, 77년도 쓰촨미술학원에 입학하게 되는 영광의 1인이 됩니다.
 하지만 그의 미술 인생이 순탄하게 흘러간 것만은 아닙니다. 기본적 테크닉조차 부족했던 그는 수업을 따라가기 힘들어 미대 자퇴까지 고려했다고 합니다. 대학 졸업 후에는, 소위 말하는 '백수'로 지내며, 아버지에게 갖은 홀대를 받기도 했습니다. 그가 경제적으로 무능하자 곁에 있던 여자친구마저 이별을 통보했습니다. 그야말로 사면초가의 상황에서 그는 가까스로 쿤밍 시 가무 극단의 미공(美工)으로 취직되었습니다. 그는 낮에는 ‘미공’의 신분으로 싸구려 그림을 그리다가, 밤에는 자신 본연의 그림을 그리는 이중생활을 시작했습니다.


 


 


 


 







 


2) 3가지 중요한 경험



 이렇게 많은 시행착오를 겪으며 화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한 장샤오강이 현재의 독특한 개성을 갖게 된 것은, 그만의 특별한 경험들을 바탕으로 합니다. 대표적으로 3가지 경험을 꼽을 수 있는데요. 과연 어떤 것들일까요?


 


 ① 위출혈, 두 달간 장기 입원
 장샤오강은 2년 여간 무질서한 생활 때문에 위출혈이라는 질병을 갖게 됩니다. 그는 병상에 누워 생사의 갈림길을 오가며, 생명과 죽음의 문제에 대해 본격적으로 생각했습니다. 의사에게 부탁하여 사람이 죽는 순간을 직접 목격하고, 영안실에 가서 막 사망한 시체들을 보기도 했다는데요. 상상해보니 조금 섬뜩하게 느껴지는 경험들입니다. 하지만 장샤오강은 이런 직감적 공포를 경험한 후에, 기존의 표현주의 요소 외에 초현실주의적 요소를 작품에 가미하기 시작했습니다.


 


 ② 독일과 프랑스: 꿈만 같은 경험
 1992년 장샤오강은 그토록 가고 싶었던 독일과 프랑스를 가게 되었는데요. 이 두 나라는 '서구 모더니즘의 본향'이기 때문에 그에게 특별했답니다. 독일과 프랑스에 머문 3개월 동안 장샤오강은 빵과 물 한 병을 들고 미술관이나 박물관에 들어가 하루 종일 있었다고 해요. 특히 그는 마그리트의 그림에 큰 영감을 받고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그는 색채, 형태부터 그려내는 기법까지 모두 '그림을 그릴 줄 모르는 것 같은 수준'으로 끌어내렸습니다. 다시 말해 그는 동시대의 어느 화가보다 전통 예술을 멀리 뛰어넘었지요. 그의 작품은 사람들의 심리에 독특한 착란과 환상을 불러일으킵니다."


(출처: 이슈, 중국 현대미술 中)


 


 


 또한 그는 서양의 무대에 올려진 중국 작품들을 보며 중국 미술이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의 일기를 잠시 엿볼까요?


 


 "결코 수묵화 같은 전통 형식이 아니라 현재 중국인의 정신으로 세계 문화에 참여하여 주목을 끌어내야 한다. 결국 관건은 현재의 사람들이다. 중국 예술가가 외국에서 성공하려면 중국 현재의 현실이라는 이 큰 배경과 떨어질 수 없다." 


(출처: 이슈, 중국 현대미술 中)


 


 후에 장샤오강은 독일과 프랑스에서 지냈던 3개월간의 시간을 회상하며, 이때의 경험이 없었다면 지금의 자신은 없었을 거라는 말까지 했다고 하니, 그 영향이 정말 어마어마했나 봅니다.


 


 ③ 문혁 시기의 가족사진
 장샤오강은 집 안의 물건들을 뒤적이다가 문혁 시기 가족사진을 발견하게 됩니다. 사진 속 인물들은 모두 하나 같이 무표정한 얼굴로, 멍~하게 카메라를 응시하고 있었습니다. 이 사진 한 장이 장샤오강에겐 큰 충격으로 다가오게 됩니다. 사진을 본 순간, 그들의 표정, 옷, 머리스타일 등은 모두 '획일적인 집단주의의 산물'로서 장샤오강의 머리를 내리칩니다. 특히 당시 사진사들에 의해 가해진 수정 작업도 문혁 시대 사진을 독특하게 만드는데 일조했는데요. 그 때는 포토샵도 없었지만, 사진사는 붓을 이용해 머리는 더 까맣게 하고, 얼굴은 뽀얗게 외각선을 흐리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사진 속 인물들은 보다 더 획일화되었습니다.


 




 




  (출처: 바이두)


 


 문혁 시대 사진들을 본 것을 계기로, 장샤오강은 그의 대표작이라고 할 수 있는 <대가족>시리즈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습니다. 모두 흑백의 무표정한 인물들로 이루어져 있는데요. 문화 혁명기 당시 모든 사람이 극심한 혼란 상태에 빠졌었는데, 그런 혼란스러운 마음을 조금이라도 감추기 위해 억지로 무표정한 표정을 꾸며낸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해봤습니다.


 


 


 







 


2. 작품의 특징 및 의미: 아픔에 대한 기억



 위에서 보셨다시피, 그의 작품은 무표정한 얼굴에 회색조를 띄고 있는 인물이 주를 이룹니다. 또한 혈연을 연상시키는 붉은 선과 과거의 상처를 암시하는 붉은 조각이 특징인데요. 관련된 작품을 같이 보면서 좀 더 자세히 설명해 드릴게요.


 




 


 (출처: 바이두)


 


 위의 그림을 보시면, 창백한 얼굴을 가진 세 사람이 가느다랗고 빨간 핏줄로 연결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핏줄 외에 빨간 고무줄과 완장도 눈에 띄네요. 이렇게 흑백인 인물과 대비되어 빨간색을 강조한 이유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바로 그들이 가족보다 당의 지배를 받는 존재임을 부각시키려는 작가의 의도입니다.
 문화 혁명기 당시에는 서로가 서로를 비판하고 고발해야만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그 와중에 최후의 안식처인 가정마저 박살나고, 사회 구성원 모두가 죄의식을 지니며 살아가게 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모든 중국인들은 아직도 상처를 가지고 산다고 해요. 장샤오강은 그 문화혁명 당시의 아픔을, 그리고 지금까지 지속되는 중국인들의 상처를 그의 작품에 표현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문화 대혁명을 겪은 중국의 현대사를 개인사적인 관점으로 잘 풀어내고 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한답니다.


(출처: 1998.04.16 한겨레 13면 미술로 보는 20세기) 


 


 이런 장샤오강의 작품은 세계미술시장에서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2006년 뉴욕에서 열린 아시아 현대 미술품 경매에서 그의 작품 <혈연 시리즈 동지 120번>은 약 9억 5천만 원에 거래되기도 했습니다.


 


 


 







 


3. 관련 영화


 





 - 해바라기


(출처: 네이버 영화)


 


 장샤오강과 관련된 영화로, 2005년에 개봉한 <해바라기>가 있습니다. 영화 <해바라기>에서 장샤오강의 작품은 극중 장면과 영화 포스터에 사용되었습니다. 영화 내용 또한 미술과 관련되었기 때문에, 이쪽으로 관심 있으신 분들은 한 번쯤 볼만한 영화라고 생각합니다. 영화는 간단히 '화가가 되기를 강요하는 아버지와 그에 반항하는 아들의 갈등'이라고 요약해볼 수 있습니다. 장경년은 화가였지만 신체장애와 집단 농장에 보내지는 역사 상황으로 인해 자신의 화가인생을 포기하게 됩니다. 그는 훗날 자신의 아들인 향양에게 그림 그리기를 강요하며 왜곡된 사랑을 보여주고, 아들은 그런 아버지에게 반항심만 쌓여갑니다. 이들의 갈등은 30여 년간 지속되다가 결국 화해를 이루게 됩니다. 1가족 1자녀 정책 시행 후 이렇게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이 중국 사회의 보편적인 문제로 떠올랐는데, 그런 모습 또한 잘 엿볼 수 있는 영화랍니다.


 (출처: 네이버 영화)


 


 


 







 


4. 유에민준(岳敏君)


 


1) 불량아 유에민준? 



 유에민준은 1962년에 출신 성분이 양호한 군인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그가 학생 신분으로 있는 와중에 중국에서는 문화 혁명이 일어났고, 대부분의 학교는 사실상 수업 정지 상태였습니다. 그의 부모님은 아들이 새로운 지식을 배울 기회를 장기간 놓치고 있는 것을 크게 걱정했습니다. 고민을 거듭하던 부모님은 나이 지긋한 선생님을 모셔와 유에민준이 전통 채색화를 배울 수 있도록 했습니다. 그러나 소위 불량아(?) 기질이 있었던 유에민준은 가만히 앉아 같은 동작만 되풀이하는 수업을 좋아하지 않았고, 3개월 동안이나 학교를 빠지며 도망다녔습니다.
 하지만 유에민준의 부모님은 이런 아들을 포기하지 않고, 다시 중앙 미술학원을 졸업한 젊은 선생님을 모셔옵니다. 새로 온 선생님은 크로키, 소묘, 색채 등 흥미로운 내용을 가르쳤는데, 말썽꾸러기 유에민준도 점차 이런 그림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습니다. 그림에 재미를 붙인 유에민준은 홀로 화판을 들고 밖으로 나가 풍경화 그리는 것을 좋아했다고 하네요.


 


 


 






 


2) 북경대 학생들이 돕다.



 유에민준은 1985년 신사조 미술운동이 일어나던 해 허베이 사범대학 회화과에 입학했고, 이듬 해 '85 신사조 운동'에 동참했습니다. 1989년 대학을 졸업한 후, 유에민준은 석유교육학원의 미술 강사로 배치됩니다.


(출처: 두산백과)



 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이미 '전업예술가'라는 확고부동한 목표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결국 꾀병을 부려 한 달간 위장 입원을 하고 베이징으로 향했습니다. 친구들과 임시 작업실 빌려 정착할 곳을 물색하던 유에민준은, 아는 선생님의 문병을 갔다가 '위엔밍위엔예술촌'을 발견하게 됩니다. 그는 이곳에서 양사오빈과 함께 작업실을 얻어 본격적인 직업 화가의 생활을 시작합니다. 하지만 넉넉한 자본이 없었기에 매달 재료비 및 작업실 대여료가 턱없이 부족했습니다. 이 부족한 돈을 충당하기 위해 그는 근처 베이징대학 캠퍼스에서 계절에 따라 지엔삥(부침개와 유사)과 수박 장사를 했고, 계속해서 그림을 그려나갈 수 있었습니다. 베이징 대학생들이 그가 미술에 전념할 수 있도록 도와준 셈이지요.


 


 


 







 


3) 작품의 특징 및 의미: 웃음 속에 감춰진 슬픔


 



① 자화상? 닮아도 너무 닮았다!



 유에민준의 작품에 등장하는 사람들을 보면, 유에민준과 너무나도 닮았다는 생각을 먼저 하게 됩니다.


 






(출처: 바이두)


 


 어느 게 유에민준이고, 어느 게 그림인지 분간하기도 힘드시죠? 유에민준이 이렇게 자신과 닮은 인물을 그린 이유는 사실 '사회를 냉정하게 바라보는 자아'를 표현하고 싶었기 때문이라고 해요. 단순히 밝고 활기찬 그림이라고만 생각했는데, 이런 깊은 뜻이 담겨 있었네요.


 


 


 







 


② 웃기만 하는 바보?


 





(출처: 바이두)


 


 그의 그림을 보면, 이를 훤히 내보이면서 웃고 있는 인물이 거의 매번 등장합니다. 이러한 웃음은 조금 부담스러울 정도인데요. 그는 왜 이렇게 웃음에 집착한 것일까요? 유에민준이 이런 '광적인 웃음'을 통해 문혁 당시, 사고하기를 거부하던 바보들을 표현하고자 했을 거라는 주장이 있는데요. 박장대소하는 바보의 머리는 텅 비고, 감아버린 두 눈은 눈앞의 상황을 대면하지 않으며, 사방에 울리는 웃음소리는 현실의 각종 소리들을 묻어버립니다.
 문혁 당시 사람들은 바로 이렇게 황당한 상황에 처해 있었던 것입니다. 중국의 현대사를 겪는 동안 사람들은 자연스러운 행복이 무엇인지도 모른 채 국가로부터 행복을 교육받았습니다. 그들의 웃음은 진심에서 우러나오는 참다운 웃음이 아니라, 교육받은 웃음이었습니다. 심지어 그들은 행복하지 않아도 행복한 척 웃어야 했습니다. 즉, 언뜻 유머러스하게 보이는 이 웃음은 중국의 급격한 변화 속에서 야기된 개인적, 사회적 혼란에 대한 반항과 슬픔, 분노와 체념이 뒤섞여 있는 것입니다.


(출처: 이슈, 중국 현대미술 中)


 


 


 






 


③ 웃음의 전파


 





 


(출처: 바이두)


 


 유에민준의 자화상은 중국의 유구한 전통과 문화를 상징하는 괴석, 학, 정자 같은 사물들 앞에 나타나 우스꽝스러운 몸짓과 표정으로 반쯤 미친 듯 웃고 있습니다. 이는 기존의 경건함과 철학적 경지를 비웃음을 의미한다고 하네요. 


 


 








 (출처: 바이두) 


 


 또한 그의 자화상은 각종 직업과 계급을 상징하는 모자를 쓰고 나타나 그에 걸맞지 않은 경망스러운 표정으로 그 존엄과 위엄을 희롱하기도 했습니다. (책 347)


 


 그의 과장된 웃음은 배경을 달리하며 수많은 장소에서 반복되어 등장함에 따라 중국인들의 시각과 심리를 지배하는 하나의 아이콘으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모든 이념적 경계와 남녀의 구분, 평화와 폭력의 대치도 그의 웃고 있는 인물상 앞에서는 의미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마치 애니메이션의 캐릭터처럼 영원히 살아 움직이는 생명력을 부여받은 그의 자화상은 더욱 폭 넓은 대상을 조준하며, 웃음의 역설을 보여주었습니다. (두산 백과)


 


 


 







 


5. 유에민준 그림 사세요~



① 미술의 대중화를 위하여!


 





- 해피니스


(출처: 바이두)


 


 이 그림은 그의 전성기인 93년 작품의 판화 100장 중 50번째 작품입니다. 이엠아트는 2008년 유에민준의 경매를 주최했는데, 이 작품을 미술 대중화를 위해 1만원부터 시작하는 릴레이 경매에 내놓았답니다. 더불어 7일간의 경매기간 동안 입찰가의 거품이 형성되는 것을 방지하고, 미술 경매의 재미 요소를 강조하기 위해 첫 날은 1번에 1만원, 이튿날은 1번에 3만원, 셋째 날은 1번에 5만원까지만 응찰 할 수 있는 형식의 '일일 입찰 상한가'를 두었다고 합니다. 이렇게 저렴한 가격 덕분에, 평소에 미술 작품에 관심이 많았지만 가격 부담으로 참여하지 못했던 일반인들도 많이 참가했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그런 제도에도 불구하고, 유에민준의 <행복>은 6700여 만원에 낙찰되었다고 하니, 놀랍지 않나요?



(출처:
http://blog.naver.com/7475685/100093973792)


 


 


 







 


② 55억 작가


 





 처형 (출처: 바이두)


 


 이 그림은 1995년작 유화그림으로, 2007년 런던 소더비 경매에서 590만 달러(약 55억원)이라는 중국 현대미술 사상 최고가 판매기록을 세우면서 유명세를 탔습니다. 또한 유에민준에게 '55억 작가'라는 별명을 갖게 해준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이 작품은 어떤 의미를 가지기에 55억이라는 비싼 값에 팔린 것일까요? 중국에서는 후야오방 전 총서기가 죽음으로써 전국적으로 민주화 시위가 일어났습니다. 베이징에는 계엄령이 선포되고, 계엄군은 시위대를 무차별적으로 진압했습니다. 유에민준은 그 무차별하고 잔인하던 상황을 전환하여 억지로라도 고통을 웃음으로 변환시키려고 했고, '부담스러울 정도로 행복한' 표정을 만들어냈습니다.
 또한 그림에 보면, 총을 쥐진 않았으나 사격자세를 취하는 인물, 공안복을 입고 웃는 인물, 군인정렬로 서있는 인물, 군 무기와 조화를 이루는 인물 등을 볼 수 있는데, 이들은 모두 '공산 국가'에 엮인 자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즉, 유에민준은 이러한 그림을 통해서, 민주개혁과 문호개방을 외치는 민중과 그런 민중을 억제하려는 정부(군인)의 갈등을 부드럽지만 강력한 웃음의 방식으로 표현하고자 한 것입니다.


 


(출처: http://blog.naver.com/jay02057/70071369227)


 


 


 







 


6. 유에민준, 내가 사는 법



 "차라리 가난해서 굶어죽더라도 내가 원하는 것을 하다 죽는 것이 세상에 속지 않고 내 인생을 살다 가는 방법입니다!"



 끝까지 학교로 돌아가라고 설득했던 가족들에게 유에민준이 마지막으로 외친 말입니다. 스펙에 목숨을 걸고, 다른 사람들이 좋다고 하는 거면 무엇이든 따라하는 현재의 우리 모습을 반성하게 해주는 말인 것 같습니다. 이렇게 자신이 원하는 것을 열심히 했기 때문에, 유에민준이 오늘날과 같은 명성을 얻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요?


 
 지금까지 중국 현대 미술의 두 거장인 장샤오강과 유에민준에 대해 살펴보았습니다. 얼핏 보면 두 작품의 분위기나 특징이 정반대인 것 같지만, 실상 그 속을 들여다보면 두 작품 모두 '문화 혁명기'와 같은 중국 대혼란시기의 아픔과 상처를 바탕으로 한다는 점에서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중국의 미술을 통해 중국의 현대사를 더 잘 이해할 수 있었던 것 같네요. 여러분들도 많은 도움이 되셨길 바라며, 저는 다음 포스팅에서 더 좋은 기사로 찾아뵙도록 하겠습니다. 再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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