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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sajapan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2.2.22
전신(戰神) 차나왕(遮那王) 미나모토 요시츠네
안녕하세요 Little J 배정은입니다:) 어느덧 겨울도 거의 다 지나가고 2월의 중반을 넘어가고 있네요. 겨울 방학도 막바지에 접어 들었는데요, 다들 알찬 방학을 보내셨는지요? 저희 대학생 기자단들의 활동도 방학과 함께 막바지에 이르렀습니다. 그래서 초심으로 돌아가 처음 기자단에 참여했을 때 썼던 주제로 이번 2월을 마무리 지어보려 합니다.
<읽기 전 손가락을 눌러주는 센스!>
지난번 <신센구미>와 <음양사>에 이어 이번에도 일본의 역사와 관련된 주제인데요, 바로 <차나왕 미나모토 요시츠네>에 관한 내용입니다. 이 이름이 생소하신 분들도, 또 귀에 익으신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됩니다. 역사라고 한다면 굉장히 지루하고 어려울 거라 생각되어 일본 문화에 관심이 있으신 분들도 거리를 두고는 하지만 이번 기회에 이 정도는 알아두면 일본인 친구와 더욱 깊은 이야기가 가능하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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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전에 일본의 아사히 신문은 밀레니엄 기획 특집으로 과거 1000년을 되돌아보면서 ‘각 분야의 베스트 10’을 선발하는 기획 시리즈를 연재한 적이 있었습니다. 각 분야 중 서기 1000년에서 1999년까지 일본의 역사적 인물 중 ‘가장 좋아하는 정치 지도자’를 설문한 것도 있었는데요, 그 중 일본인들이 꼽은 최고의 지도자들 가운데 눈에 띄는 사람은 바로 일본 최초의 무사 정권인 가마쿠라 막부(1185~1333)를 세운 <미나모토 요리토모(源頼朝)>와 <요시츠네> 형제입니다. 이 중에서도 많은 무용담을 만들어 내며 극적인 인생을 살다 간 <요시츠네>는 특히 일본인들의 사랑을 한 몸에 받고 있다고 합니다. <미야모토 무사시>가 불패의 사무라이로 추앙을 받는 한편, <요시츠네>는 비운의 사무라이로 연민의 대상인 것입니다. 또한 이 둘을 제외하고 순위에 오른 인물들은 대게 전국 시대와 메이지 유신 이후의 인물들(사카모토 료마, 도쿠가와 이에야스,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등)이어서 <요시츠네> 형제의 순위권 진입은 더욱 의미가 있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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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츠히코군의 설명에 이어 더욱 자세히 미나모토 요시츠네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요시츠네의 일대기는 몇몇 커다란 사건들을 가지고 나누어 볼 수 있습니다.
<보원의 난>
미나모토 요시츠네(源 義經, 1159-1189)가 태어난 헤이안 시대에는 후지와라씨(藤原氏)가 권력을 잡고 있던 시대였습니다. 여기서 커다란 귀족 가문이 3개 등장합니다. 이미 권력을 잡고 있던 후지와라씨(藤原氏)와 타이라씨(平氏), 그리고 요시츠네의 가문인 미나모토씨(原氏)입니다. 이 때 후지와라씨는 각각이 지지하는 천황에 따라 둘로 나뉘어 싸우고 있었고 타이라씨와 미나모토씨도 각각의 지지 세력에 따라 나뉘어 있었습니다. 그림을 따라 살펴보면 요시츠네의 아버지가 지지하는 세력은 코시라카와(後白河) 천황 쪽이었습니다. 결과적으로 두 세력의 다툼에서는 코시라카와 천황을 지지하는 세력이 승리를 거두었고 그 사건은 <보원의 난>이라고 부릅니다. 이 사건 이후 후지와라노 타다미치는 유배되고 후지와라노 요리나가가 후지와라 가문의 당주가 됩니다. 그리고 타이라 가문 역시 타이라노 키요모리가 타이라노 타다마사와 그 일족을 모조리 멸족시킨 후 당주의 자리에 오릅니다. 미나모토 가문에서는 요시츠네의 아버지가 자신의 아버지(요시츠네의 할아버지)와 동생 다메토모를 처형하고 함께 싸웠던 동생 요시카타 역시 위험 인물이란 이유로 함께 처형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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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이지(平治)의 난>
그러나 최대 가문이었던 후지와라 가문의 요리나가가 당주가 되고 얼마 되지 않아 세상을 떠나고 구심점을 잃은 후지와라 가문은 와해되고 맙니다. 그리고 역시나 타이라씨와 미나모토씨는 일본 천하를 걸고 맞붙게 됩니다. 그리고 이때가 바로 요시츠네가 태어난 1159년, <평씨(平氏)의 난>이라고 부르는 사건입니다. 불행하게도 요시츠네가 태어난 그 해, 요시츠네의 아버지 요시토모는 타이라 가문과의 전투에서 패배하고 맙니다. 교토의 시가전에서 패배한 요시토모는 장남, 차남, 삼남을 데리고 교토의 북쪽으로 도망쳐 흩어졌다가 다시 합류하기로 하지만 그 과정에서 장남과 차남, 그리고 요시토모까지 모두 전사하고 말았습니다. 그리고 요시토모는 총 3명의 아내에게서 9남 2녀의 자식이 있었는데 요시츠네는 그 중 3번째 아내인 도키와 부인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막내 아들이었습니다. 요시토모가 전쟁에서 패하고 전사한 이후 도키와 부인은 타이라노 키요모리의 눈에 들어 그의 첩이 되었고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로 인해 어린 요시츠네는 목숨을 구하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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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모토씨의 거병, 지쇼∙주에이의 난>
1180년 22살이 된 요시츠네는 이복형인 요리토모가 이즈에서 군사를 일으킨다는 소식을 듣고는 히데히라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끝내 오우슈를 빠져 나와 요리토모와 뜻을 함께 하게 됩니다. 이 때 요시츠네는 자신의 가신인 무사시보 벤케이와 이세노 사부로 요시모리를 비롯하여 오우슈에서 믿음을 가진 사토 츠구노부(佐藤繼信), 사토 타다노부(佐藤忠信) 형제와 동행합니다. 요리토모와 재회한 요시츠네는 이후 눈부신 활약을 펼치게 됩니다. 그리고 당시 타이라 가문은 타이라노 키요모리가 숨을 거둔 이후 점차 기울기 시작했고 요시츠네는 키요모리의 뒤를 이은 차남 무네모리를 교토에서 몰아내는 쾌거를 거두었습니다. (사이사이에 존재하는 많은 전투에 대해서는 에피소드라고 생각하고 생략하겠습니다.)
▲(왼쪽부터) 단노우라에 있는 요시츠네의 상 / 단노우라 해전 그림
헤이케(타이라 가문)가 무너진 이후 요리토모는 본부를 자신이 유배되었던 가마쿠라로 옮긴 후 새로운 무사정권을 <가마쿠라 막부>라고 명명했습니다. 그리고 두 동생인 노리요리와 요시츠네에게 서부지방으로 쫓겨간 타이라 가문을 토벌하라고 명령합니다. 요시츠네는 강력한 군사력과 전술로 타이라 가문을 궁지로 몰아 넣었습니다. 그리고 그 곳에서 안토쿠 천황(코시라카와 천황의 손자), 도쿠코(안토쿠 천황의 어머니로 키요모리의 딸)와 마주하게 되었습니다. 잔인하게 죽일 수 없었던 요시츠네는 도쿠코를 물에 빠뜨렸고 안토쿠 천황은 그런 어머니의 뒤를 따랐습니다. 그리고 당시 타이라 가문을 이끌던 무네모리를 단칼에 베어 버리고 그의 수급을 가지고 당당히 개선합니다. 그러나 요리토모와 요시츠네 사이에는 둘을 이간질 하는 무리들이 있었으며 요리토모 본인도 요시츠네의 군사적 재능과 덕망이 법황의 신용을 사고 무사들의 인심을 모으는 것이 위협적이어서 결국 요시츠네를 교토에서 쫓아냈습니다. 자신을 죽이려는 세력을 피해 이리저리 몸을 피하던 요시츠네는 결국 히라이즈미로 숨어들어 부인인 사토 고젠과 딸을 죽인 뒤 향년 31세의 나이에 스스로 자결했습니다. 또한 요시츠네의 가신이었던 벤케이는 온 몸에 화살을 맞으면서도 끝까지 요시츠네를 지키다 선 채로 죽었다는 설도 생겨났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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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츠네와 관련된 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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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시츠네에 대한 소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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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에 관련된 기사이다 보니 자세한 시대상과 맞물려 방대한 기사가 될 것 같아 사실 걱정이 많았습니다. 역사라는 것이 잘 풀지 않으면 참 지루하고 재미없는 이야기가 되니까요:( 그래도 끝까지 인내를 가지고 읽어주신 분들께 정말 감사합니다:) 앞으로 얼마 남지 않은 우리 Little J 3기의 기사들을 기대해 주세요,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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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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