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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isajapan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4.1.13
시사일본어사 기자단이 전합니다 | ||
가장 강도 높은 사과법 '도게자(土下座) 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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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시사일본어사 기자단 박선경입니다. 여러분이 머리 속에 그리는 일본인의 이미지는 어떤가요? 저는 일본 문화를 공부하면서 전보다는 다양한 시각으로 바라보게 되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예의 바르고, 남에게 폐끼치기 싫어하는 이미지를 먼저 떠올립니다. 특히 '예의 바른 일본인'으로 이미지가 굳어진 이유는 깍듯하게 허리를 숙여 인사하는 일본인의 모습을 자주 접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서비스 직종에 종사하는 일본인 여성들이 "이랏샤이마세(いらっしゃいませ)" 라는 하이톤의 인사와 함께 손님을 맞는 모습은 낯선 그림이 아니죠.
인사는 동아시아 문화권에서 기본적으로 중요한 예절이지만, 그 중에서도 일본 만큼 인사에 철두철미한 나라도 없을 듯합니다. 일본 만화나 영화, 드라마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일본인들의 인사 예절을 살펴보더라도 상황에 따라 숙이는 각도를 달리하는 그 디테일함에 놀라게 됩니다. 다음은 비즈니스 상황에서 인사하는 상대에 따라 숙여야 하는 허리의 각도입니다.
* 목례 (会釈) - 허리를 15도 정도 숙이는 가벼운 인사.
* 최경례 (最敬礼) - 허리를 45도 정도 숙이는 정식 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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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인사를 하고 나서 몸을 일으킬 때는 머리를 숙였을 때보다 천천히 일어나야 한다고 합니다. 또한 인사의 처음과 마지막은 상대의 눈을 바라보되, 남성인 경우 양 옆 바지선에 손을 두어야 하고 여성인 경우 양손을 모은 배꼽인사를 하는 것이 예의입니다. 공식적인 자리라 할 수 있는 비즈니스 상황이기 때문에 좀 더 복잡하고 철저한 것 같아요.
일본 드라마를 보면 우리나라에서는 일명 '폴더 인사'라고도 불리는 90도 인사 역시 종종 보이곤 하죠? 무언가를 부탁하는 장면에서 "오네가이시마스(お願いします)!" 라는 대사와 함께 허리를 직각으로 숙이는 모습은 사실 일본 드라마의 정형화된 클리셰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렇게 지나치게 공손한 인사는 우리 눈으로 보기에는 조금 불편한 면이 있기도 합니다. 다소 과장된 행동으로 보이기 때문인데요, 실제로 제가 학교 수업시간에 일본 드라마를 처음 접하는 친구들과 함께 드라마를 보았을 때, 등장인물이 90도로 허리를 숙이며 부탁을 하자 극 중 분위기가 굉장히 진지했음에도 불구하고, 교실 안에 웃음이 터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 만큼 일본인의 정중한 인사법은 우리에게는 다소 낯선 일본만의 독특한 문화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이런 인사들 말고도 또 하나, 일본에서만 찾아볼 수 있는 문화가 있는데요. 바로 지금부터 소개해드릴 '도게자(土下座) 문화' 입니다. 도게자는 에도 시대에 다이묘(영주) 행차 시 서민들이 땅에 엎드려 고개를 숙이는 것에서 유래했지만, 시간이 흐르며 상대방에게 사죄하기 위한 방법으로 굳어졌습니다. 대표적인 사례로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났을 당시, 도쿄전력의 전 사장이 국민들을 향해 도게자를 하기도 했죠.
언뜻 절하는 모습으로 보이기도 하지만 상대방에게 굴욕감을 주며 사과를 받아내기 위한 방법으로 사용되는 도게자. 일본의 영화, 드라마, 방송, 매체, 만화 등에서 도게자 장면을 찾기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일본 고등학교의 집단 따돌림 문제를 다뤘던 드라마 [라이프]의 결말은 이지메를 주도했던 여고생이 많은 학생들 앞에서 도게자를 하며 사죄하는 장면으로 끝을 맺습니다. 얼마 전 인기리에 종영한 [한자와 나오키]에도 인상적인 도게자 장면이 등장했습니다.
주간 만화잡지 <고라쿠>에서는 [도게센(どげせん)]이라는 만화가 연재된 적이 있습니다. 이 만화는 도게자를 무기로 삼아 난관을 헤쳐 나가는 고등학교 교사의 이야기로, 오직 머리를 숙이는 것만으로 야쿠자와 불량배들을 궁지로 몰아 자신이 원하는 바를 얻어내는 과정에서 웃음을 자아낸 만화라고 합니다. 그러나 공동저자 두 명의 의견이 엇갈리면서 연재가 중단되었는데요. 한 명은 '사죄뿐만이 아닌 기원이나 감사의 의미를 지닌 도게자 만화'를, 또 다른 한 명은 '처세술로서의 도게자 만화'를 지향한 점이 서로 맞지 않았다고 합니다. 이렇게 도게자에 대한 시각 차이로 의견이 갈리기도 하는 모양이지만, 전반적으로 일본 사회 내에서도 도게자는 긍정적인 문화는 아닌 듯 합니다.
아래 영상을 한번 보실까요? 외국인들에게 일본의 문화와 생활을 알리고자 제작된 'The Japanese Tradition'이라는 시리즈 영상물 역시 도게자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그런데 도게자 방법에 대해 구체적으로 풀어놓은 이 영상은 도게자 문화를 비판하고 풍자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미안해하는 척을 들키지 않게 조심하고, 상대가 사라진 후에는 침을 뱉으라니, 어떻게 봐도 긍정적으로 보고 있는 것 같진 않죠? 최근 들어서는 도게자에 대한 사회적 우려가 점점 커지는 추세라고 합니다. 일례로 지난 달 일본에서는 한 40대 여성이 의류 매장에서 구입한 상품에 하자가 있자, 매장 직원들에게 도게자로 사죄를 요구하고 직원들이 도게자한 사진을 자신의 트위터에 올려 논란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여성은 결국 강요 혐의로 입건되었다고 해요. 이 사건 이후 일본 방송사 NHK의 시사 프로그램 [클로즈업 현대]는 '범람하는 도게자' 라는 주제로 방송을 하였는데요, 이 방송을 통해 승차권 확인 문제로 승객을 멈춰 세웠다가 20분 동안 꿇어앉아 사과하도록 요구 당했다는 지하철 역무원, 상사의 도게자 요구로 모욕감을 느꼈다는 회사원 등이 소개되며 일본의 도게자 문화의 심각성이 불거졌습니다.
사회적 이슈는 영화로 만들어지기 마련이죠. 도게자를 테마로 한 영화 역시 만들어져 올해 9월 일본에서 개봉되었습니다. 쿠도 칸쿠로 감독, 아베 사다오 주연의 코미디 영화 [사죄의 왕(謝罪の王様)]은 도게자로써 대신 사과해주는 것을 직업으로 삼는 주인공의 이야기입니다. 작년에 개봉했던 한국 영화 [아부의 왕]이 아첨과 비리가 만연한 한국 사회를 그렸다면, [사죄의 왕]은 사과가 일상화된 일본 사회를 사회 풍자적 블랙코미디의 형식을 빌려 꼬집습니다. 개인의 싸움 중재부터 시작해 국가 존망의 위기까지 모든 일을 사죄로 해결한다는 설정이 앞서 언급했던 만화와도 어느 정도 비슷합니다.
일본 오카야마(岡山) 현 니미(新見) 시에서는 매년 10월 도게자 축제를 개최한다고 하는데요. 이 축제는 과거 봉건 시대 영주의 행차 모습을 재연하는 축제로 전통 계승의 의미가 큽니다. 그러나 현대의 도게자는 에도 시대의 도게자와는 그 의미가 확연히 달라졌을 뿐 아니라 빈도가 '범람' 수준으로 잦아졌다는 부분에서 문제점이 드러납니다.
현대의 도게자가 비판 받는 이유는 우선 상대의 인권을 무시하는 야만적이고 잔인한 면이 있는 행위이며, 자발적으로 도게자를 하는 사람에게 있어서 진심어린 사죄가 아닌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도구로 전락해버린 경향이 있다는 분석 때문입니다. 물론 순수한 의미로 진심을 담아 하는 사죄라면, 도게자는 사과를 하는 사람도, 받는 사람도 진지할 수 있는 가장 강도 높은 사과 방법이자 일본만의 특수한 문화가 되겠지요. 그러나 사소한 잘못임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에게 모욕감을 주기 위해 혹은 순간을 모면하기 위한 수단으로 이용하는 도게자라면 당연히 좋지 않은 시선으로 바라볼 수 밖에요.
각 나라마다 전해 내려오는 문화와 풍습은 어디든 있기 마련입니다. 그런데 만약 취지를 잃어버리거나 의미가 변질된다면 그것을 계속 문화라고 칭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의 경우 스승의 날에 선생님께 존경과 감사의 마음을 담아 하는 선물이 뇌물화 되어 스승의 날 폐지 논란이 있었던 적도 있죠. 여러분의 생각은 어떠신가요? 일본의 도게자는 한 나라에서 행해지는 문화로서, 존중 받아야 하는 것일까요, 아니면 과거 풍습의 의미만을 남겨두고 이제는 자제할 필요가 있는 것일까요? 분명한 것은, 문화는 바람직한 방향으로 계승되고 보전되어야 한다는 사실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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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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