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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식 : 아침을 먹다가 생각한 것들
글쓴이
이다혜 저
세미콜론
평균
별점9.1 (31)
추억책방


  지금은 나이가 들어 생체 리듬이 바뀌었는지 새벽 6시쯤 되면 아무리 전날 늦게 잠자리에 들어도 자동으로 눈이 떠져서 아침을 맞이한다. 학창시절만 해도 아침잠이 많아서 알람 시계 소리는 내 깊은 잠을 깨우지 못했고 어머니의 고함(?)과 이불 걷어내기, 엉덩이 스파이크 3단 공격을 받고 나서야 간신히 일어나곤 했다. 

 어머니께서는 식탁에 차려놓은 아침밥상이 다 식는다고 여러 번 내 이름을 부르셨지만 어머니의 바램과 달리 당시 밥보다는 잠이 더 중요했던 나는 이불 속에서 뭉그적 거리다 등교 시간이 다 되서야 식어버린 아침밥을 몇 숟가락 뜨는 둥 마는 둥 하다가 학교로 갔다.

 그동안 모르고 살았다. 어머니가 차린 아침밥은 그냥 우유만 부으면 쉽게 먹을 수 있는 시리얼이 아니라 전날 저녁부터 준비해야만 나올 수 있는 밥상이었고, 가족들에게 갓 지은 따뜻한 아침밥을 먹이기 위해 아침 일찍 일어나셔서 준비하고 계셨다는 것을... 이 책을 읽고나서 아침에 눈을 뜨면 당연하게 생각했던 아침밥이 그냥 쉽게 나온 게 아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아침을 먹다가 생각한 것들》은 '세미콜론'에서 새롭게 론칭한 음식 에세이인 '띵' 시리즈 중 첫 번째로 [씨네21] 기자로 활약하면서 다양한 분야의 책을 탐독하는 북 칼럼리스트 이다혜 작가가 말하는 "이다혜 세상의 아침밥 이야기"다. 이 책은 이다혜 작가의 지극히 개인적인 이야기면서 우리 모두 공감하는 아침 풍경이다.

 


 그동안 결혼하는 남성들에게 아침밥은 '아내가 차려주는 아침상'이라는 고정관념이 자리하고 있었으나 사회가 변한만큼 남성과 여성의 아침밥 주체에 대한 가벼운 고민을 하고[배고픈 자가 차려 먹어라], 온 식구가 둘러앉아 아침을 먹는 일이 잦지 않았던 저자가 평소 별로 친하게 지내는 듯하지도 않던 동생이 입대하는 날 온 식구가 모여 아침밥을 먹을 때 묵묵히 밥을 먹다가 울기 시작했다는 이야기[중요한 날은 하던대로 하세요], '잠이냐, 아침이냐.' 저자가 좋아하는 아침식사는 잠이라고 고백을 하며 아침밥을 포기하고 등교 후 교실에서 점심시간 전 미리 도시락을 까 먹던 추억을 떠올린다. 도시락은 밥 위에 얹어 놓은 달걀 프라이가 단단하기 전에 먹어야 제 맛이란다.[아침의 가장 사랑하는]


  안녕하세요. 저는 1인 가구의 세대주입니다.

 '세상의 모든 아침밥'이라는 소재로 책을 쓰는 중인 제가 아침으로 가장 많이 선택하는 메뉴는? 바로 '전날 밤에 먹고 남은 것'입니다. 이럴 줄은 몰랐어요. 어쩌다 이렇게 되어 버렸습니다. - P.27

 

 그동안 살아오면서 혼자 독립해서 산 적이 없다. 그래서 가끔 1인 가구를 부러워하곤 했는데 1인 가구 세대주인 저자의 아침식사 풍경을 보니 꼭 부러워할 건 아닌 것 같다. 식은 치킨, 식은 피자, 차가운 밥, 싫어하는 부분만 남은 족발 같은 메뉴로 아침을 장식한다는 저자. 지구환경을 생각하며 고독한 미식가가 된다고 한다. 아니, 고독한 미식가는 전날 밤에 했고, 이튿날 아침은 그냥 고독한 아침 처리반이 된다. 요즘 1인 가구를 위한 다양한 맞춤형 물건들이 나오고 있지만 아직까지 배달음식만은 2인 이상이 기준이다. 이렇게 1인 가구 세대주의 안쓰러운 아침풍경을 이야기 하다가 그 옛날 외할머니와 어머니께서 밥상을 차리다보면 필연적으로 남는 음식들을 오랫동안 드셨다는 이야기로 순간 코를 훌쩍하게 만들고 "자꾸 외식을 하면 집에서 식사하라"고 한마디 하시던 저자 어머니 말에 공감하게 된다.[모닝 곱창전골을 먹은 사연]


 달걀을 푼다. 당근, 양배추 등 원하는 채소를 아주 잘게 칼질해서 달걀에 섞는다. 빵 하나 크기로 채소달걀을 부쳐낸다. 마가린(버터 안 됨)에 빵을 앞뒤 노릇하게 구운 뒤, 채소달걀부침을 얹고 설탕을 한번 뿌리고(ㅋㅋㅋ) 케첩으로 마무리한다. - P.66

 

 저자가 아침에 즐겨 먹었다던 토스트의 노점 레시피다. 건강에는 그리 도움이 안 될 것 같은(노점 음식들이 다 그렇지만) 토스트를 어릴 때 정말 맛있게 먹었던 기억이 난다. 지금은 프렌차이즈 토스트 전문점이 있지만 어린 시절만해도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길목에 가야만 토스트를 먹을 수 있었다. 초등학교 입학 전 아버지는 종종 다양한 물건이 파는 시내 종합 상가에 어린 나를 목마 태우며 다니시곤 했는데 매번 갈 때마다 사 주시던 노점상 토스트 맛(달달한 그 맛을 아직 잊을 수가 없다)에 빠진 나는 아버지에게 틈만 나면 시내 종합 상가에 가자고 조르곤 했다. 그러면 아버지는 별로 사실 것도 없으시면서 나를 데리고 시내 종합 상가에 있는 노점상에서 토스트를 사 주셨다. 이제는 즐겨 먹지 않는 토스트지만 종종 거리에서 만나는 토스트 파는 노점상을 보면 어린 시절 먹었던 토스트가 생각이 난다. 아버지가 태워주시던 목마와 함께....


 일 때문에 찾은 영국 런던의 한 호텔에서 저자는 아침 일찍 조식을 먹으러 식당에 내려갔는데 안내를 받고보니 앉은 자리가 직원들이 단말기를 확인하는 자리 바로 뒤였다고 한다.(저자는 식당을 찾은 첫 번째나 두 번째 손님이었고 식당은 텅 비어 있었다) 게다가 커피도 별로, 다른 음식도 특이사항 없던 저자는 시종일관 불쾌한 식사였다는 이야기로 런던에서 겪은 인종 차별을 이야기하고[엉덩이와 함께 아침을], 학창시절 또래에 비해 살이 쪘던(말라야 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던) 저자를 고모는 사촌언니와 함께 "마른 몸을 갖는다면 정말 예쁠 것"이라며 방학만 되면 체중을 재고 식단을 짜주셔서 며칠 동안 효과를 봤다고 한다. 고모의 지시를 본격적으로 따르기 위해 고모의 원대한 계획인 일주일간 단식에 앞서 마지막 만찬으로 고모가 만들어 준 김치죽 한 그릇씩을 먹었는데 그만 다시 입맛이 돌아와(고모 출근 후 몰래 치킨 등을 먹는다) 고모의 등짝스매싱과 함께 모든 일이 다시 원점으로 돌아왔다는 이야기. 저자는 그 이후로 종종 입이 심심할 때는 고모네서 배운 방식으로 김치죽을 해 먹는다고 한다.[죽 쑨 하루]



아침을 먹다가 생각한 것들》은 이 밖에 영화나 문학 작품에서의 아침식사에 대한 단상들로 또다른 재미를 주고 있다. 영화 [미드웨이]에서 격전을 앞둔 파일럿들이 험난한 날 나오는 달걀요리나 스테이크를 아침식사로 먹는 모습이나, [덩케르트]에서 죽을 위기를 간신히 넘기고 영국으로 탈출한 병사들이 주전자의 차를 나눠 마시는 장면, 한국영화 [미성년]에서 남편의 외도를 안 엄마가 아침 일찍 딸에게 아침 식사를 권하는 장면들을 통해 다양한 아침밥 풍경들을 보여준다. 냉파(냉장고 파먹기)를 하는 열흘동안 냉동고에 있는 군만두를 [올드보이]의 오대수처럼 먹었다는 이야기는 덤이고....


 이다혜 작가는 나의 최애 작가 중 한 명답게 저자의 매우 사적인 아침 풍경 속에 녹아있는 다양한 감정들을 독자들에게 보여주면서 아침 밥상에 대한 공감을 이끌어내고 있다. 시종일간 저자 특유의 재미있는 글들로 잘 차려진 아침을 먹다가 생각한 것들》 읽다보면 나만의 이야기가 보태어져 풍성한 아침밥상이 함께 하고 있는 것을 느끼게 될 것이다. 유튜브 채널 [겨울서점]에서도 책 소개와 함께 이다혜 작가를 만날 수 있으니 책에 대해 궁금한 독자라면 유튜브 영상을 먼저 만나봐도 되겠다. 

 아담한 사이즈의 문고본 형태로 제작된 이 책을 들고 가벼운 마음으로 출퇴근길 등 일상을 함께 보내는 건 어떨까? 아침밥은 꼭 먹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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