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

추억책방
- 작성일
- 2023.3.12
페인트
- 글쓴이
- 이희영 저
창비
지난해 우리나라 합계출산율이 0.78명으로 1970년 통계 작성 이후 역대 최저를 기록했다고 한다. 일과 육아 병행의 어려움, 미래 일자리에 대한 부담감, 높은 집값과 사교육비 부담 등으로 인해 젊은이들이 혼인을 늦게 하거나 아예 혼인을 하지 않다보니 이런 결과가 나왔는데 앞으로도 출산율이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아 이대로 간다면 국가 소멸을 걱정할 수준이라 한다.
중학생 딸아이가 재미있게 읽고 있기에 책상에 갖다 놓았다가 읽게 된 이희영 작가의 <페인트>에서는 저출산 국가인 우리나라가 맞이할 수도 있는 미래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아이 낳기를 기피하는 사람들이 점점 늘어만가는 어느 미래, 출생률을 높이기 위한 여러 정책들이 아무 소용이 없게되자 정부에서는 부모가 낳은 아이를 키우기 원치 않을 때 정부에서 그 아이를 키우는 대책을 세우게 된다. 국가의 아이들(nation's children)을 양육하는 NC센터가 세워졌고, 아이들은 13살이 되면 부모를 직접 면접하고 점수를 매겨 선택할 수 있게 된다. 단 20살까지 부모를 선택하지 못하면 NC 출신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홀로 사회에 나가야한다.
주인공 제누는 NC센터에서 자란 성숙하고 생각이 깊은 17살 소년이다. 4년 동안 페인트를 치렀지만 아직 부모를 선택하지 못 했다. 여기서 소설의 제목이기도 한 '페인트'는 부모 면접(parent's interview)을 뜻하는 아이들의 은어이다.
소설에서는 제누와 한 방을 사용하며 13살이 되어 첫 페인트를 치르는 밝고 사랑스런 아키, 껄렁하지만 페인트를 통해 부모를 만났으나 다시 센터로 되돌아온 상처를 가진 노아, 그리고 NC센터에서 아이들을 보살피며 부모 면접을 돕는 센터장 박과 그와 함께 일하는 여성 가디언 최가 주요 등장인물로 나온다.
소설의 흥미로운 점이라면 부모가 아이를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가 부모를 선택한다는 부분이다. NC센터의 아이들은 어린 나이가 아닌 어느정도 성숙해 자기 스스로 판단을 할 수 있는 13살부터 페인트를 통해 부모를 선택할 수 있다. 아이들은 자신들이 소망하는 부모상을 그리며 페인트를 치르는데, 아이를 진심으로 원한다기보다는 아이를 입양하면 정부로부터 각종 복지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것 때문에 페인트를 하러 오는 예비부모를 직접 면접하고 가차없이 낮은 점수를 매긴다.
제누는 페인트 준비를 제대로 하지 않은(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이는) 젊은 예비 부모와 페인트를 한다. 가디언인 최는 13살 때부터 4년 동안 페인트를 치뤘고 성숙하고 생각이 깊은 제누이기에 정신없고 준비가 안 된 젊은 예비 부모를 당연히 거절할 줄 알았는데 제누는 다음 인터뷰를 잡아달라고 한다. 센터장 박과 가디언 최는 반대를 하지만 제누는 페인트 과정을 이어나간다.
"세상의 모든 부모는 불안정하고 불안한 존재들 아니에요? 그들도 부모 노릇이 처음이잖아요. 누군가에게 자신의 약점을 드러내는 건 그만큼 상대를 신뢰한다는 뜻 같아요. 많은 부모가 아이들에게 자기 약점을 감추고 치부를 드러내지 않죠. 그런 관계는 시간이 지날수록 신뢰가 무너져요."
- 111 ~ 112쪽
제누에게는 아이에게 선택받기 위해 자신의 치부는 감춘 체 멋지게 꾸미고 가장된 표현을 하는 예비 부모들보다는 정신없고 준비가 안 되었지만 솔직하고 진심이었던 젊은 부모에게 끌렸는지 모르겠다. 집에서 아이들과 친구처럼 지내는 편이다. 아마도 가부장적인 모습보다는 친근하고 때로는 작은 실수를 하는 아빠를 아이들이 신뢰를 하는 것 같다. 가끔 화를 내도 안 무서워 하는 것 같기는 하지만 지금 아이들과의 관계가 좋긴하다.
우리가 부모를 선택한다는 것은 부모가 아기를 낳는 것과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누구든 자기 아기에 대해서 엄청난 천재까지는 아니더라도 남들보다는 잘났으면 좋겠다는 마음 정도는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런 환상이 신기루처럼 사라져 버리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았을 것이다. 아이가 학교에 입학하고, 학년이 올라가고, 몸이 자랄수록 부모들의 바람은 더 소박해지겠지, 그저 다른 아이들만큼만 하기를, 그저 건강하기를, 그저 평범하기를...
- 183 ~ 184쪽
소설을 읽으면서 과연 나는 아이들에게 몇 점짜리 부모인가 생각을 하게 된다. 아이가 태어났을 때는 건강하게만 잘 자라주기를 바랬는데, 중학생이 된 딸에게 큰 기대를 하며 공부하라고 너무 스트레스를 주는 건 아닌지... 어차피 자신들이 선택한 색깔로 칠하는 미래인데, 소설 속 부모 면접을 조력하는 가디언처럼 아이들이 인생의 주인공이 될 수 있도록 조력자의 역할을 충실히 해야겠다.
소설은 제누가 젊은 예비 부모와 페인트를 하며 점점 가까워지는 모습과 함께 센터장인 박과 가디언 최의 숨겨진 사연이 서서히 밝혀지며 흥미를 더한다. 소설에서는 홀로그램과 헬퍼 로봇 등 미래에 만날 수 있는 첨단 기술들을 엿볼 수 있는데 책을 읽을 청소년들에게 미래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책이라 하겠다(<페인트>는 제12회 창비청소년문학상 수상작이다). 과연 제누는 젊은 부모를 선택해서 꿈꾸던 가족의 모습을 이룰 수 있을까? 아이들이 직접 부모를 선택한다는 소설 속 이야기를 통해 좋은 부모란, 나아가서 가족의 의미를 생각할 수 있는 독서였다. 청소년 자녀가 있는 부모라면 자녀와 함께 읽어도 좋은 책이다. 부디 다가올 미래에는 소설처럼 NC센터에서 페인트를 통해 아이가 부모를 선택하는 일은 없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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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