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

추억책방
- 작성일
- 2023.8.18
환상의 동네서점
- 글쓴이
- 배지영 저
새움
내가 사는 동네에는 학습지를 전문으로 파는 서점 밖에 없다. 그래서 가끔 블로그나 유튜브에 올라오는 차별화된 취향 저격 동네서점을 보면 부러움 가득한 시선으로 보게 된다.
온라인서점에서 클릭 한 번이면 바로 다음날 배송된 책을 읽을 수 있고 가까운 백화점에 가면 입점해 있는 유명 대형 서점에서 다양한 책들을 편리하게 구입할 수 있는 세상에서 동네서점이 경쟁에서 살아남기란 쉽지 않다.
이렇게 녹록지 않은 현실에서 30년 넘게 자리를 지키며 지역주민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동네서점에 관한 책 한 권을 읽게 되었다.
그 책은 바로 군산에 있는 동네서점 한길문고가 문체부와 한국작가회의가 주관하는 '작가와 함께하는 작은서점 지원사업'에 거점서점으로 선정되어 서점의 상주작가가 된 배지영 작가가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진행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서점 이야기를 담은 <환상의 동네서점>이다.
지금은 종이책을 안 읽어도 아쉬울 게 없는 시대다. 책 말고도 재밌는 게 너무너무 많은 시대. 온라인 서점과 대형 쇼핑몰 안에 들어선 프랜차이즈 서점이 동네서점을 재빠르게 제압한 시대. 서점이 없는 동네도 많다. 그러나 군산에는 32년째 사람들에게 사랑받는 특별한 서점 한길문고가 있다. - 80쪽
휴대폰이 없던 시절 내가 사는 인천에서 약속 장소로 유명했던 동인천의 대한서림처럼 군산시에서는 한길문고가 지역 주민들에게 약속 장소로 유명했다고 한다. 30여 전 녹두서점으로 문을 연 한길문고는 중고생들이나 시위를 하러 나온 대학생들, 직장인들이 약속장소로 애용하던 서점이었다. 태생부터 군산 시민의 사랑을 받는 장소였으니 주차한 차들이 둥둥 떠 다닐 정도로 폭우가 쏟아진 2012년 8월. 10만 권의 책과 함께 물에 잠긴 한길문고를 향해 내 친구나 이웃이 닥친 일처럼 군산시민들은 너도 나도 한길문고로 달려가 복구에 힘을 보탰다고 한다.
책은 한길문고의 상주작가가 된 배지영 작가가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다양한 에피소드들로 가득 채워 재미와 감동을 전해준다. 초등학생 참가자들에게 1시간동안 엉덩이를 안 떼고 책 읽기를 완수하면 한길문고 도서, 문구상품권을 주는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를 개최해서 탈락자 한 명 없는 대회로 성공적(?)으로 마무리 하고(이거 원래 탈락자가 없죠?), '어른들을 위한 엉덩이로 책 읽기 대회'에서는 대회가 끝난 후 책을 읽던 테이블 위에 맥주와 해물파전을 놓고 참가자들과 함께 축제 같은 추억을 만든다.
이 밖에 작가강연회, 에세이 쓰기 모임, '뭐라도 읽고 쓰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고민 상담소' 등 동네책방을 살리기 위한 다양한 문화프로그램들이 재미를 더하는데, 특히 문화프로그램에 참여하면서 책을 좋아하고 글쓰기를 소망하는 보통 사람들을 만날 수 있는 것이 이 책의 매력이라 할 수 있다. 아이 셋을 낳고 기르느라 문학소녀의 꿈을 포기했다가 한길문고에서 개최하는 작가강연회를 통해 수십 년만에 문학소녀의 꿈을 되찾은 순심씨, 스물 살 때는 전공 이외의 책을 단 한 권도 읽지 않다가 북클럽을 통해 걸어다니며 책을 읽는 사람이 된 민정씨(퇴근 후 집에 가면 퍼질 것 같아 밤에 걸어 다니며 책을 읽었다고 한다), 배지영 작가의 글을 읽고 용기를 얻어 네 번 낙방만에 브런치 작가가 된 동네마트를 운영하는 경욱씨, 글을 쓰기 위해서 책을 더 열심히 읽는다는 택시운전사 종근씨(독서모임도 하고 신춘문예에 글도 종종 보낸다) 등 다양한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 책을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공감과 감동을 느끼게 된다.
예전에 비하면 동네서점이 많이 줄었지만 지역문화의 한 축으로 작가 강연회, 독서모임, 북토크 등 다양한 문화프로그램을 갖추고 주인의 취향대로 꾸며진 동네서점들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책 말고도 재미있는 것이 많은 요즘 동네서점의 미래를 속단할 수는 없지만 배지영 작가의 <환상의 동네서점>처럼 동네서점이 단순히 책을 파는 곳이 아닌 지역의 문화 거점으로 책을 좋아하고 글을 쓰고 싶은 지역 주민들이 꿈을 키울 수 있는 장소로 발전해 나간다면 동네서점의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을 것이라 생각이 든다. 최근에는 방학이나 휴가 때 책방지기의 취향을 공유하러 동네서점이 있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는 사람들이 많다고 한다. 나도 휴가 때 휴양지나 관광지가 아닌 특별한 동네서점이 있는 곳으로 여행을 떠나고 싶다. 제일 먼저 여행을 떠나고 싶은 도시의 서점은 당연히 <환상의 동네서점>이 있는 군산시의 한길문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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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