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

추억책방
- 작성일
- 2023.9.4
아무튼, 메모
- 글쓴이
- 정혜윤 저
위고
그동안 짧지 않은 삶을 살아오면서 큰 기대를 했다가 기대를 충족하지 못한(실망한) 적이 여러 번 있었다. 절경을 기대하고 찾아간 강원도 양양의 낙산사가 그랬고(큰 산불 이후 잘 정비된 인공적인 모습이 역으로 아쉬움으로 남았다), 전국에서 유명한 짬봉 맛집이라 찾아간 중식당도 그랬다(굳이 상호명을 밝히지 않겠지만 흔한 동네 맛집 짬봉보다 면의 찰기도, 국물의 깊이도 없었다). 그 외 좋은 리뷰평만 믿고 찾아갔던 전주 한옥마을의 게스트하우스, 관객 수만 보고 관람한 영화 등 그동안 큰 기대를 했다가 실망한 것들이 많은데 이번 독서도 아쉽지만 큰 기대를 했다가 실망을 안긴 책이 되었다.
이번에 아쉬움을 남긴 책은 아무튼 시리즈에서 28번째로 나온 정혜윤 작가의 <아무튼, 메모>이다. 아무튼 시리즈는 취향, 사물, 취미 등에 남다른 애정을 가진 소위 한 분야의 덕후들이 쓴 에세이로 작은 판형에 휴대성도 좋고 소소한 재미를 주던 시리즈였기에 이번에도 큰 기대를 안고 책을 펼쳤다. 첫 장은 메모의 중요성을 재미있는 일화를 통해 담아내서 다음장에 대한 기대를 한껏 올렸으나 책장을 넘길수록 기대했던 메모의 방법이나 메모를 통해 경험했던(첫 장처럼) 재미있는 에피소드보다는 저자가 팟케스트 출연을 위해 준비했던 메모나 글을 쓰고 싶어 모아두었던 메모 속 문장들과 연계한 이야기, 메모주의자가 된 이유 등을 위트 보다는 조금은 진중한 문장들로 풀어나간다.
책장을 넘길수록 문장은 머리에서 겉돌고 책장을 쉽게 넘기기가 쉽지 않았는데 아마도 그동안 읽었던 아무튼 시리즈의 전개와는 다른 서술 방식이라 그런지 모르겠다. 아무튼 시리즈가 자기계발서는 아니지만 소위 말하는 덕후들의 자기 취향을 애정있게 담아낸 에세이이기에 이번 독서를 통해 저자의 메모 노하우 등을 배울 수 있지 않았을까 하는 약간의 기대감도 있었지만 책은 저자만의 메모 노하우 등 실용적인 정보보다는 저자가 메모주의자가 된 이유나 메모의 중요성에 대해 서술하고 있고 위트보다는(물론 위트가 없는 건 아니지만) 진중한 문장들로 채워져 있어 기대와는 다른 독서였다.
물론 기대에는 조금 미치지 못한 독서였지만, 저자가 열심히 메모하게 된 생각(메모)들을 읽다보면 책상 위 연필을 찾아 메모를 하고 싶어 질 수 도 있다.
ㆍ나의 내일은 오늘 내가 무엇을 읽고 기억하려고 했느냐에 달려 있다.
ㆍ내가 밤에 한 메모, 이것으로 나의 내일이 만들어질 것이다.
ㆍ나의 가장 본질적인 부분은 나의 메모에 영향을 받은 것이다. - 35쪽
이 외에도 "메모에 관한 열 가지 믿음"이나 "메모는 나를 속인 적이 없다" 등의 장에서 메모의 중요성에 공감하게 되는데, 책장을 넘기다보면 코끝을 흐리게 하는 문장도 만나게 된다. 바로 저자가 세월호 유족에 선물 받은 달력으로(저자는 세월호 참사 2주기 특집 다큐멘터리를 제작한 라디오 피디다), 달력에는 국가기념일이나 공휴일이 아니라 세월호 사고로 희생된 아이들, 선생님들, 김관홍 잠수사의 생일이 표시되어 있다. 이 중 몇 개만 옮겨본다.
ㆍ7월 1일. 조향사가 되어 첫 번째 향수는 언니를 위해 만들겠다고 약속했고 해맑게 잘 웃는 배향매
ㆍ7월 4일. 우리 애기들 살려야 해요. 마지막까지 학생들 생각을 먼저 한 전수영 선생님
ㆍ7월 25일. 아버지께 물려받은 카메라로 사진을 찍으며 카메라 감독을 꿈꾸는 한고운
ㆍ8월 25일. 모든 생명이 아프지 않고 살 수 있는 세상을 꿈꾸며 수의학과에 가고 싶은 장혜원
ㆍ11월 25일. 소리가 들리지 않는 분들에게 아름다운 세상을 들려주는 수화 통역사를 꿈꾸는 조서우
ㆍ12월 4일. 언제나 전교 1등, 사회의 잘못을 가려내고 약자들을 보호하는 판사를 꿈꾸는 박성빈 - 75쪽 ~ 77쪽
<아무튼, 메모>는 독서 전 기대했던 내용과는 달라서 실망을 안겨주었지만, 저자의 이야기를 읽다보면 메모의 중요성과 필요성에는 공감하게 된다. 단, 실용적인 정보를 원한다면 이 책은 맞지 않겠지만 말이다. 이번 독서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아서 아무튼 시리즈를 좋아하는 독자로서 나중에 재독을 통해 이번 독서 때 느끼지 못한 책의 감흥을 좀 더 찾아봐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끝으로, <아무튼, 메모>를 읽다가 마음에 와닿아 노트에 메모해 둔 문장으로 오늘의 리뷰를 마무리 한다.
"이것으로 나의 내일이 만들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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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