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문학

추억책방
- 작성일
- 2025.4.27
술꾼들의 모국어
- 글쓴이
- 권여선 저
한겨레출판

소설이나 에세이를 읽다 보면 술과 안주 이야기를 맛깔스럽게 하는 작가들이 종종 있는데 그 중 단연 원톱이 권여선 작가가 아닌가 싶다. 술과 인생 이야기를 애틋하게 담아내 독자들에게 큰 사랑을 받은 「안녕 주정뱅이」가 큰 역할을 했지만 이후 출간한 산문집 「오늘 뭐 먹지?」도 한 몫을 했다. 인터뷰나 낭독회 등에서 술 이야기를 하고 다녔더니 주변 지인이나 작가들이 자꾸 그런 이미지로만 굳어지면 좋을 것이 없다고 충고를 할 정도였다. 주변의 충고 이후 정신을 차리고 다음 소설 집필 작업을 할 때는 술 이야기를 애써 빼려고 노력 했는데 스토리 진행에 여간 힘든 일이 아니었다고 한다. 그래서 산문집을 집필할 때는 물 만난 고기처럼 술과 안주 이야기를 마음껏 할 수 있어서 좋았다고 한다.
이번에 읽은 「술꾼들의 모국어」는 지은이의 처음이자 유일한 산문집「오늘 뭐 먹지? 」의 출간 6주년 기념 특별 개정판이다. 오래 전「오늘 뭐 먹지? 」를 읽은 독자로서 책장을 넘길수록 왠지 내용이 낯이 익다 했는데 특별 개정판이었다(작가 이름만 보고 반가운 마음에 사전 정보 없이 읽었다). 이번 개정판은 치커리 화가와 협업해 본문 삽화를 전면 교체하고 작가 인터뷰도 담았다.

지은이에게 모든 음식은 안주가 될 수 있으니 이번 산문집에서는 안주가 될 것 같지 않은 만두, 김밥 등도 안주로 나오는데 생각보다 술과 잘 어울릴 뿐만 아니라 직접 요리 레시피도 알려줘서 지은이가 술과 안주에 진심임을 느끼게 된다.
대학시절 도서관 앞에서 만난 두 선배와 함께 찾아간 왕짱구분식에서 막걸리와 소주에 안주로 먹은 찐만두 이야기(그날 안주로 찐만두를 셋이 도합 12인분을 먹었다), 서른 살이나 서른한 살쯤 술자리에서 부쩍 친해진 친구와 그녀의 아버지 묘소에 충동적으로 찾아가 인사 후 막걸리에 썰지 않은 통김밥을 안주로 먹었던 이야기 등에서는 평소 술안주로 생각하지 않던 음식에 술 한 잔 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물론 안주로 일품인 순대국, 부침개, 감자탕, 오징어튀김 등 안주에 대해서도 맛깔스럽게 이야기하지만 추억이 담겨 있거나 에피소드가 있는 냄비국수와 고로케, 간짜장 등 음식 이야기도 정겹다.
지은이가 술 먹은 다음 날도 간짜장이 생각날 정도로 단골로 가는 중국집이 있다(원래 짜장면을 좋아하지 않아 다른 중국집에서는 짬봉을 시킨다고 한다). 어느 날 간짜장을 맛있게 먹고 식당을 나서려는데 중국집의 여자 매니저가 오래전부터 팬이라며 지은이의 책을 꺼내며 사인을 요청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그동안 오직 간짜장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전혀 신경 쓰지 않은 몰골로 중국집에 오간 것이 부지기수였고 간짜장이 빨리 안 나온다고 직원을 닦달하거나 술을 먹고 큰 소리로 떠들어 대는 등 수많은 추태(?)를 부렸는데(설마 자신을 알아보는 독자가 있으리라는 안일한 생각으로) 순간 현타와 함께 번민이 깊어졌다고 한다. 간짜장은 먹고 싶은데 이 꼴로 중국집에 가도 되는지를... 한동안 그 집에 가지 않다가 결국 간짜장 생각에 다시 중국집에 다니게 된 지은이는 중국집에 가는 날에는 반드시 세수를 하고 머리는 빗는다고 한다.
「술꾼들의 모국어」는 어릴 때 입이 짧았다가 술을 마시며 입맛을 키웠나갔다는 권여선 작가가 술과 의외로 어울리는 안주를 비롯한 다양한 음식들과 관련된 에피소드를 총 5부, 20개 장에서 맛깔스럽고 정겹고 이야기를 담아내고 있는 산문집이다. 아직 4월 말인데 벌써부터 초여름 날씨가 찾아오는 것을 보니 올여름도 유난히 더울 듯 싶다. 무더운 여름이면 생각나는 물냉면을 개인적으로 좋아하는데(여름이면 지역 물냉면 맛집을 순례한다) 비빔냉면을 좋아했다가 물냉면의 참맛을 알게 된 지은이의 물냉면 예찬론을 끝으로 리뷰를 마무리 한다. 역시 권여선 작가는 본인이 원치 않을지 몰라도 주류(酒類) 문학의 대가다.
내가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오묘한 맛이 나서 놀랐다.
이제 나는 물냉면이라면 환장하는 사람이 되었고,
'해장에는 냉면'이라는 오래전 선배의 말을 백번 이해하게 되었고
물냉면 전문집에서 비밈냉면을 시키는 사람을 보면 안타까워서
나도 모르게 두 손을 비틀게 되었다. - 8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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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