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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 작성일
- 2020.4.29
동물농장
- 글쓴이
- 조지 오웰 저
비채
1. 시작
작품의 의의를 거칠게 요약하자면, "러시아 혁명과 소비에트 정치 체제의 허위, 선동, 기만, 착취, 폭력을 다룬 우화"라고 할 수 있는 20세기 최고의 명저 가운데 하나, <동물농장>이다. 이 책을 추천하는 몇 가지 이유를 나열해본다.
2. 매우 충실한 역주가 비유와 상징, 작품의 역사적 배경을 쉽게 이해하도록 돕는다.
<동물농장>은 우화소설이다. 우화 소설이란, 인간의 일을 동물에 빗대어 풍자하는 문학적 표현 방식이다. 주인공 돼지 스노볼과 나폴레온은 러시아 혁명의 중심이었던 트로츠키와 스탈린을 상징하며, 그외의 동물들은 러시아 민중, 그리고 동물들이 건설한 동물농장은 소비에트 연방을 뜻한다는 식이다. 물론 동물과 동물, 동물과 인간 사이에 벌어지는 일들을 통해서 이상적인 사회의 건설이 얼마나 어려우며, 설사 그것이 시도되었다 할지라도 일부 엘리트의 권력 독점과 남용, 대중에 대한 기만으로써 결국 몰락하고 만다는 교훈을 찾을 수도 있다. 그러나 실제 작가의 의도대로 러시아 혁명과 소비에트 연방에 대한 풍자로 읽으려면 비유와 상징의 원관념을 최대한 의도에 가깝게 이해하는 것이 필요한데, 총 10개 장으로 나뉘어져 있는 이 소설의 번역본 전체에 달린 역주가 총 94개다. 역주에는 동물들의 품종과 특성에 대한 설명, 소재의 의미, 동물들과 그들의 행위가 나타내는 역사적 원관념이 자세히 설명되어 있다. 예를 들어 원래 농장의 주인인 인간 존스 씨가 살던 '농장 주택'(뒤에 돼지들이 독점하게 된다.)에 대한 역주가 "여러모로 크렘린과 비슷하다. 오랫동안 러시아 황제의 거성이었다가 1917년의 러시아 혁명으로 모스크바가 다시 수도가 되면서 1918년 이후 옛 소비에트 연방 정부의 본거지가 되었다."고 달려 있는 식이다. 이러한 역주를 함께 읽다보면 러시아 혁명의 전개 과정과 그를 둘러싼 계급 간의 대결, 2차 세계 대전 전의 소비에트와 영국, 소비에트와 독일의 관계 등 세계사적인 조망까지도 가능하다.
3. 독자들에게 전체주의에 대한 경각심을 심어준다.
동물들은 농장의 주인이었던 인간들을 몰아내고 혁명에 성공하면서, 평등한 사회의 건설을 위해 "두 다리로 걷는 자는 모두 적이다. 네 다리로 걷거나 날개가 있는 자는 모두 친구이다. 어떤 동물도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어떤 동물도 침대에서 잠을 자서는 안 된다. 어떤 동물도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어떤 동물도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일곱 가지 계명에 합의한다. 물론, 엘리트 지도 계층 역할을 자임한 돼지들에 의해 이것들은 교묘하게 조금씩 바뀌거나 지워져간다. 어떤 동물도 '시트가 깔린' 침대에서 잠을 자서는 안 된다거나, 어떤 동물도 '취할 정도로'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는 식으로 말이다. 다른 동물들은 돼지에 비해 우매하기 때문에 원래 계명과 달라진 듯한 느낌은 받지만, 그들의 협박과 회유에 결국 설득당한다. 그리고 그들을 설득하는 말의 끝에는 꼭 "존스 씨가 돌아오기를 바랍니까?"라는 공포스러운 협박이 있다. 존재하지 아니 존재하는지 확실치도 않은 회부의 적을 상정하고 공포를 부추김으로써 대중을 속이고 기만하는 것은 역시 진영 대결을 전제로 하는 냉전시대의 논리라는 것을 100년 전에 나온 이 소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지난 70년 간 북한이 쳐들어올지도 모르니까 군비를 증강하고 체제 경쟁을 펼쳐 왔지만, 2020년이 된 지금 우리에게 남은 것은 알량한 우월감보다 더 큰 불안감 뿐이다. 확인되지도 않은 북한 지도자의 유고 소문만으로도 증시와 경제가 국민 정서가 요동치는 것을 보라. 이런 갈등과 분열을 통해 자신의 이익을 챙기고자 하는 자들을 나폴레온과 같이 경계해야만 할 것이다.
분명, 동물농장의 계명이 수정될 때 그것을 아는 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그 중 돼지들은 최고 권력자에게 충성을 바쳤고, 당나귀와 같은 회색 지식인들은 자신의 삶과 굳이 연관지어 생각하지 않으며 모른척했다. 그사이 동물농장은 점점 지배자 돼지 나폴레온을 중심으로 교조화, 경직화되어 갔고, 인민의 평등을 가장한 파시즘으로 바뀌어갔다. 이를 통해 <동물농장>이 비단 러시아 소비에트 체제에 대한 비판에서 머물지 않고 개인의 자유와 존재를 억압하는 모든 전체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읽힐 수 있다. 전체주의는 독재자 개인의 힘이 아니라 생각하지 않는 대중, 기만적인 엘리트들의 협조가 있어야만 가능하다는 것을 작가는 이 우화를 통해 보여주고 있다. 전체주의를 경계하지 않고 그저 정치에 끌려가는 대로 끌려가는 민중들에게 돌아오는 마지막 계명은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그러나 어떤 동물은 다른 동물보다 더 평등하다." 뿐이라고 경고하면서 말이다.
4. 조지 오웰의 삶과 글쓰기 지론에 충실한 작품이며, 번역 또한 그러하다. 즉, 너무 쉽게 읽힌다!
조지 오웰은 영국 출신으로 공무원이었던 아버지와 함께 식민지 인도에서 살았고, 그 자신도 하급 공무원으로서 근무하며 제국주의의 폐단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스페인 내전에 자원 참전했으며 끊임없이 중산층과 상류 계급의 위선을 글을 통해 고발했다. <동물농장> 역시 그러한 맥락에서 쓰인 작품이다. 자신의 말과 행동을 일치시키는 삶을 살았던 만큼 가장 위대한 영국 작가를 뽑을 때 늘 선두권에 뽑히는 것이 자연스럽다. 지금에서야 이미 망해버린 공산주의를 공격하는 것이 너무 쉽지만, 전세계적으로 그것이 유행할 때 그 본질을 꿰뚫어 비판하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기에 그의 통찰에 감탄하지 않을 수도 없다. 게다가 사실적인 글이 아니라 우화의 형태라면 묘사하고자 하는 대상의 본질을 정확히 인식해야만 자유자재로 비유를 사용할 수 있을 것이기에 그의 사회 참여적 작가로서의 면모를 더 잘 드러내줄 수 있는 형식 또한 적절하게 찾았다고 하겠다.
"오웰은 문학가이건 일반 사람들이건 명징하고 정확한 언어를 구사하지 못하는 것은 불성실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 그에 따르면 실제 마음속에 품고 있는 내용을 숨김없이 전달하거나 표현하려고 하지 않기 때문에 불분명한 언어를 사용할 수밖에 없다.(중략) 더구나 오웰은 <동물농장>에서 될 수 있는 대로 라틴어나 고대 그리스어에 뿌리를 두고 있는 낱말을 피하고 앵글로-색슨 계통의 토착어를 구사하려고 무척 애쓴다."(p262) 번역자 김욱동 교수는 이러한 오웰의 지론에 근거를 두고 우리말로 번역을 함에 있어서도 한자어 대신 우리 토박이말을 최대한 살려 쓰고자 했다고 밝히고 있다. 원저자의 의도를 다른 언어로 구현한다는 것이 무척 인상적인 번역 후기다.
5. 우화 그 자체로서의 소설적 재미
앞서 말했듯 우화는 동물의 이야기를 통해 인간의 이야기를 하는 문학적 형식이다. 우화를 사용하는 이유는 "첫째, 심미적 거리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 인간이 인간의 비행을 직접 비판하는 것보다는 동물의 비행에 빗대어 말하는 쪽이 아무래도 좀 더 적절하고 안전할 것이다. 또한 동물우화 형식을 사용함으로써 작가는 좀 더 객관성을 유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명료성을 얻을 수도 있다는 이점이 있다.(p224)"고 할 수 있다. 문학 교과서에도 나오고 고등학생들에게도 가르치는 내용이지만, 쉽게 이야기하면 "돌려까는 것이 표현과 이해도 쉽고 위험도 덜하다."고 정리할 수 있다. 이 우화가 힘을 받으려면 적절한 비유가 생명인데, 동물을 무척 아끼고 좋아했다는 조지 오웰은 탁월한 선택을 통해 힘있는 우화를 창조해냈다. 이상 계급사회를 지향하던 것이 얼마 되지 않는 시간동안 또다른 계급사회로 회귀하는 모습을 비유하면서 새로운 계급사회의 상층부에 자리한 이들을 맹수들 대신 탐욕스럽고 교활한 이미지를 지닌 돼지로 비유한 것이 대표적인 신의 한수랄까. 지적으로 뛰어나진 않지만 타고난 체력과 성실성으로 초기 소비에트 사회 건설을 이끌었던 노동자 계급은 건장한 말 복서(이름도 복서다.)로, 비판 없이 정권의 나팔수 역할을 하는 이들을 양떼에 비유한 것 등(이걸 총 정리한 게 234페이지에 있다!)이 풍자를 빼고도 이 소설을 있는 그대로 읽을 수 있는 재미를 만들어내고 있다. 그렇기에 인간 농장주들과 이제는 두발로 걷게 된 대표 돼지들이 파티를 벌이는 마지막 장면에서 정권과 사회를 막론하여 엘리트 권력층을 꼬집는 "그러나 이미 어느 것이 돼지의 얼굴이고 어느 것이 인간의 얼굴인지 구별할 수가 없었다."는 문장이 더욱 큰 울림을 주는 것이다.
6. 끝
2차 대전 중이라 출판 사정이 어렵기도 했지만 <동물농장>의 출간을 어렵게 하던 것이 영국 정보부의 방해 공작이었는데, 그를 담당하던 사람이 사실은 소비에트의 스파이였다는 것은 이 작품이 그만큼 그들의 치부를 잘 꼬집었음을 알려주는 반증이다.
총 279페이지에 달하는 책 가운데 소설 본문은 190페이지까지이고, 나머지는 역자의 해설이다. 앞서 말했던 작품에 대한 해설 뿐만 아니라 영국인 식민 관리의 아들 에릭 아서 블레어가 작가 조지 오웰이 되는 과정에 대한 전기적 사실까지 상세히 실려 있다. 그러니까 고작 만 천 원짜리 단행본 한 권에 소설 한 편과 작가 전기가 한 편 추가로 실려있는 초대박 1+1 구성!
쉽고 재미있는 우화를 통해 권력의 속성과 몰락 과정 그리고 그에 대한 독자들의 자세를 고민하게 만들 수 있는 이 책을 사서 읽지 않을 이유가 있는가.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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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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