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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
- 작성일
- 2021.6.15
[eBook] 이규보의 동국이상국 - 슬견설, 이옥설, 괴토실설(한문 원문 포함)
- 글쓴이
- 이규보 저
파란꿈
<이옥설>
집에 허물어진 행랑채가 제대로 버티지 못하게 된 것이 세 칸이다. 나는 어쩔 수 없이 이것을 모두 수리하였다. 이에 앞서 그중 두 칸이 장맛비에 샌 지가 오래되었는데, 나는 그것을 알고 있었으나 어물어물하다가 손을 대지 못하였다. 한 칸은 비를 한 번 맞고 새어 들었기 때문에 서둘러서 기와를 갈아 넣게 하였다. 그런데 수리하려고 본즉 비가 샌 지가 오래된 것은 그 서까래, 추녀, 기둥, 들보가 모두 썩어서 못 쓰게 되어 그 경비가 많이 들었고, 그 한 번밖에 비를 맞지 않은 재목들은 모두 완전하여 다시 쓸 수 있었기 때문에 경비가 적게 들었다.
나는 여기에서 사람의 몸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들었다. 잘못을 알고서도 바로 고치지 않으면 곧 그가 나쁘게 되는 것이 나무가 썩어서 못 쓰게 되는 것과 같은 것이며, 잘못을 하고 곧 고치기를 꺼려하지 않으면 다시 좋은 사람이 되는 것이, 가옥의 재목을 다시 쓸 수 있는 것보다 더 잘될 것이다. 나라의 정치도 이와 마찬가지다. 모든 일에서 백성에게 심한 해가 될 것을 머뭇거리고 개혁하지 아니하다가, 백성이 못살게 되고 나라가 위태한 뒤에 갑자기 변경하려 하면, 곧 붙잡아 일으키기가 어렵다. 조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고려시대 문인 이규보의 고전수필 <이옥설>을 공부하는 단원이다. 우리 문학의 역사적 전개와 그 대표작을 배우는 단원이라 이런 게 있었구나 하고 끝낼 수도 있지만, '수필'이라는 장르를 그냥 흘려보내긴 아쉬웠다. 시나 소설과 달리 수필은 자신의 경험을 바탕으로 얻은 깨달음을 형식에 구애받지 않고 쓰는 글이니까 글쓰기에 소질이 없다고 생각하는 아이들도 쉽게 써내려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글을 쓰는 건 자신을 돌아봐야하고, 그 과정을 통해 자신을 긍정하고 생각을 가다듬게 되니 최대한 많이 해야 할 일이다. 그래서 <이옥설>수업을 끝내고 그 글의 형식(경험 + 경험을 통한 깨달음 + 깨달음의 확장)을 활용해서 각자의 글을 쓰도록 하는 과제를 부여하려고 한다. 그런데, 배웠다고 바로 흉내내서 쓰면 다 시인이고 소설가일테니 한편 더 적절한 예시를 보여주려고 생활문의 보고(寶庫)월간 <좋은 생각>을 뒤졌지만 마음에 딱 맞는 글이 없어서 그냥 내가 썼다. 이규보는 집을 수리한 경험을 가지고 글을 썼으니 '집을 수리한 이야기'라는 뜻으로 이옥설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나는 집에서 아이들을 키우며 얻은 경험을 바탕으로 썼으니 '육아설'이라고 지었다.
<육아설>
우리 집에는 일곱 살, 다섯 살 두 아이가 산다. 다섯 살배기는 둘째라 그런지 애교도 많고 엄마 아빠 말에 잘 따르는 편이다. 하지만 큰아이는 자기 마음대로 되지 않으면 입을 다물고 뭘 물어도 대답을 하지 않아 아빠의 속을 뒤집어 놓는 일이 많다. 한번은 어린이집에 다녀 온 아이가 또 입을 다물고 한참을 있기에 결국 답답한 마음에 화를 내고 말았다. 다음날 아침에야 친구가 자기가 하고 싶은 놀이를 함께 해 주지 않아 속상했다는 걸 알게 되었다. 곰곰이 생각해보니 나는 아이의 마음이 어떤지 묻기 전에 사건의 전후만 따지고 들었던 것 같았다. 그 다음날에도 새침한 표정의 아이에게 왜 그러냐고 묻기 전에 “우리 채원이 뭐 속상한 일 있었어? 아빠가 안아줄게.”하고 말했다. 그러자 아이가 아빠 품에 안겨 잠시 훌쩍거리더니, 어린이집에서 있었던 일을 술술 이야기했다. 그러고 난 그날 저녁은 아빠가 방전될 만큼 재미난 시간을 보냈다.
교사로서 아이들을 만나는 것도 마찬가지라는 생각을 한다. 학생부에서 근무한 지 10년이 다 되어간다. 초임교사 시절에는 학교 규정에 어긋난 행동을 하는 아이들을 만나면 사정을 들어보지도 않고 “야! 너 복장이 이게 뭐야!” 또는 “머리 색깔이 왜이래! 학생답지 않게!”라고 꾸중하기도 했다. 덕분에(?) 하루가 멀다하고 학생들과 감정적으로 다투는 일이 많았다. 하지만 지금은 아침에 만나는 아이들의 복장보다도 표정과 기분을 먼저 살피며 말을 건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혹시나 아침부터 엄마와 싸우고 오지는 않았는지, 수행평가 때문에 밤을 새느라 아침도 못 먹고 와서 배가 고픈건지 먼저 살피다보면 아이들과 좋은 마음과 감정을 나누게 되는 일이 훨씬 많다.
학교가 살아가야 할 방향도 이와 마찬가지다. 대학입시, 정기고사, 학교규정, 수행평가...... 해야할 일도 지켜야할 것도 무척 많은 이 학교 생활에서 학교는 아이들의 감정과 마음을 얼마나 생각하고 있는가. 물론 해야 할 일을 모두 제쳐놓고 마음 가는 대로만 해야 한다는 말이 아니다. 다만 ‘학생이니까 당연히 해야 한다.’는 당위적 명제만을 내세울 것이 아니라 ‘이런 모든 것들을 해내는 아이들이 참 대단하다.’, 또는 ‘이런 것들을 다 해내는 아이들의 마음을 보듬기 위해서 어떤 일을 해야 할까.’라고 아이들의 마음과 감정을 살피며 학교가 해야 할 일을 생각하는 자세가 필요하다는 뜻이다. 성적은 다시 올리기 쉬우나 마음은 되돌리기 어렵다. 생각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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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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