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책 저책 기웃기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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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인생을 정리해드립니다
글쓴이
이지영 저
쌤앤파커스
평균
별점9.2 (131)

1.



늦은 밤 리뷰를 올리려고 책 제목을 검색하는데 문득, 당신의 인생을 정리해준다는 것이, 청부 살인범들같은 악당들이나 하는 소리 아닌가 싶어 흠칫 놀랐다. 토요일인 오늘 두 아이에게 하루종일 시달리고 나도 있는대로 짜증내고 야단치고 하다보니 좀 지쳤나보다. 암튼, 칠월의 마지막날을 하루 앞둔 저녁 약속장소인 부산시 경찰청 뒤편 공원 벤치에서 친구를 기다리면서 읽은 이 책은, 방송에도 여러 차례 출연한 바 있는 정리 컨설턴트 이지영 씨의 <당신의 인생을 정리해드립니다>다.



2.



우리 집은 방이 네 칸인 신축 아파트다. 스무살 시절 월세 8만 원짜리 창문도 없는 반지하 단칸방에서 자취를 시작한 이래 거의 20년 만에 번듯한 내 집을 마련한 것은(아, 물론 이 중 절반 이상은 은행 소유다. 진짜 내 지분은 음... 안방 화장실 정도 될까?) 전적으로 아내의 공이다. 30평이 조금 넘지만 구획이 많이 되어서 방이 네 칸이지 사실 각 방의 면적은 넓지 않다. 거기에 7세와 5세 아이의 물건, 각자 오랜 자취 생활 동안 쌓인 부부 두 사람의 물건들이 여기저기 자리하고 있다. 붙박이장 하나와 펜트리 공간 한 군데로는 수납이 도저히 불가능한 구조다. 게다가 가장 널찍한 거실 양쪽 벽에는 책장이 빈틈없이 채우고 있다. 늘 입버릇처럼 날 한번 잡아서 싹 버리고 정리하자고 하지만 매일 나오는 재활용 쓰레기 버리기에도 벅차서 그런 정리는 다음 집으로 이사갈 때나 가능할 것만 같았다.



방학을 맞았으니 학기 중에 밀린 일들이 마무리되면 아내도 집에 와 있으니 이제 정리를 좀 시작해볼까 했지만 어디서부터 뭘 해야할지 잘 감이 잡히지 않았다. 집을 떠나 다른 곳에 있어도 이 생각이 맴도니 아마 이 책을 사 읽게 된 것이 아니었을까. 이런 생활의 꿀팁류는 일본 책들을 번역한 종류가 많다. '~~하는 ~~가지 방법'이라거나 '~~만에 ~~하기'와 같은 제목의 책들 말이다. 그런 책들은 아 그래 맞아! 하면서 읽지만 사실 깊이도 알맹이도 없고 실제로 따라하기도 쉽지 않다. 간명하게 일반화하느라 읽는 이의 구체성을 생략한 경우들이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의 제목에서 물건이 아니라 인생을 정리해준다는 말에서 '무엇을' 정리하느냐가 아니라 '왜' 또는 '어떻게'라는 방향성을 생각할 수 있을 것 같았고, 그래서 오히려 나도 해볼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하게 깨끗하고 정돈된 집안을 원한다면 어차피 아이들이 있는 한 다시 어질러질 것이고 그걸 치우면서 성질내고 투덜대는 과정이 반복될 것인데 '왜'를 생각하게 되면 적어도 그 범위 안에서는 불필요한 감정 소모는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사람이 우선인 공간, 라이프 스타일에 맞고, 사용하기에 가장 편리한 공간이 좋은 공간"(p9)이라는 말에 주목하게 되었다. 내 오랜 로망이었던 거실 도서관. 이 집으로 이사를 오면서 책장을 주문해서 맞추고 거실창과 수직으로 된 두 벽을 책으로 가득 채웠다. 가운데에는 여러가지 작업을 할 수 있는 6인용 원목 책상도 수십 만원을 주고 들여놓았다. 그런데 애들이 자라고 뛰기 시작하면서 거실에서 달리게 할 순 없으니 지름이 2미터 가까이 되는 트램폴린을 들여놓고 그 밑에 소음방지용 매트를 두겹으로 깔았으니 거실은 책 읽는 환경도 아니고 아이들의 놀이터도 아닌 어정쩡한 공간이 되어버린지 오래되었다. 



위의 말에 비추어 거실 공간은 무엇이 우선인가 생각해보았다. 앉아서 책 읽고, 종이 접고, 노래 듣고, 그림 그리고, 받아쓰기도 할 수 있는 곳이다. 그래서, 과감하게 가끔 찾아오는 손님들이 묵는 방이면서 평소엔 잘 쓰지 않는 현관 앞 피아노방으로 트램폴린을 옮겼다. 책상은 책장과 평행 방향에서 수직 방향으로 돌렸다. 그러니까 책장과 책상이 크게 보면 대문자 H 모양이 된 셈이다. 책장의 책들도 아이들 연령에 안 맞는 것은 버리고 아이들의 물리적인 눈높이에 맞춰 아래에서 세 칸까지 아이들의 책으로 재배치했다. 공간이 넓어져서 의자를 넣고 빼기가 쉬워졌고, 앉기에 편해지니 엄마 아빠가 앉고, 아이들이 따라와서 옆에 앉는다. 무엇이 중요한 공간인가를 생각하고 물건을 옮겼을 뿐인데 저녁 시간이 확 달라졌다. 물건의 속성 뿐만이 아니라 물건이 놓인 그 공간의 본질이나 속성을 생각해보는 것이 큰 틀에서의 정리에 가장 필요한 것이라는 사실을 이 책 덕분에 알았다.



3.



"내가 좋아하는 물건은 집안의 가장 큰 공간에 혹은 좋아하는 공간에 두어야 한다. 그래야 집도 좋아진다."(p25) 공간에 대한 이야기에 이어서 이제 물건들에 대한 이야기다. 나는 책을 좋아하니 거실도 서재도 책이 그득해서 일단 위의 명제는 충족시킨 셈이다. 다른 물건들을 비우고 줄이는게 문제인데,(물론, 책도 수시로 점검해서 오래도록 읽지 않았거나 소장할 이유가 적은 책들은 팔거나 버린다) 다들 사연이 있어서 그러기가 쉽지 않다. 버리기가 어렵다면 들어오는 물건부터 줄여야 한다. 1+1, 세트로 파는 물건 등은 절대 들이지 않는다. 어차피 그 중에서도 쓰는 것들만 쓰게 되므로, 패스트 패션이 유행이지만 옷을 살 때는 필요와 욕구를 구별하는 연습이 필요하다. 내 지난 사례들을 생각하며 반성했다.



- 한때 중고 거래(당근마켓)에 맛들여서 철지난 패딩 점퍼를 몇 개나 사고 얻었더니 보관할 데가 없고 한철 더 지나니 또 질려서 입지 않게 된다. : 나쁜 예



- 땀이 많아서 옷에 황변이 잘 일어나고 비루하고 뚱뚱한 몸뚱이 때문에 찢어지거나 해지는 일이 많다. 그래서 올 여름엔 비싼 옷들을 사는 대신 저렴한 티셔츠를 위주로 사서 자주 갈아입었다. 그리고 2년 이상 입지 않은 옷들은 과감히 의류 수거함으로 보냈다. : 나쁘지 않은 예



과거에 대한 후회, 미래에 대한 불안에 얽매이면 현재를 즐겁게 살 수 없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남아있는 물건들을 정리하는 법 : 사용, 보관, 전시



사용 : 일상적으로 생활하는 공간에 두고 열심히 사용하면 된다. 손 닿는 곳에 두자. 옷, 신발, 액세서리 등이 대표적이다.



보관 : 사용할 순 있지만 보관하려고 샀거나 가지고 있는 것들이다. 일기, 오래전 쓰던 전자기기, 레포트, 편지 등이다. 품목별로 박스에 넣어 네이밍해두는 것이 좋다. 언제든지 찾아보기 편하도록 베란다나 창고에 보관한다. 여기서 유의할 것은, "추억의 물건은 그 추억을 돌아볼 수 있을 때만 가치있다. 나의 추억이 어디 전시되어 있는지, 어디 보관되어 있는지 돌아볼 수 있어야 한다.(p132)



전시 : 사용은 불가한 것들. 잘 보이는 곳에 진열하고 때마다 추억하고 곱씹는 것들이다. 트로피, 피규어 등이 해당한다. 자리를 정해두고 한 공간에 모아서 수납하는 것이 좋다.



위의 사용, 보관, 전시에 해당하지 않는 것들은, 버린다. 버린다는 말이 아직도 좀 걸리는 이들에게 저자는 이렇게 조심스레 말한다. "사용하지도, 전시하지도, 보관하지도 못하는 물건이라면 그 물건에 담긴 추억도 어쩌면 더 이상 가치 있는 것이 아닌지도 모르겠습니다."(p130)



5.



내가 한 건 아니지만 냉동실이 몇 주 전 한번 뻗는 바람에 안에 들었던 것들을 싹 정리하고 공간을 만들었다. 음식물 쓰레기가 10kg이 넘게 나왔다는 충격적인 후일담이 전해진다. 먹지 않아도 되거나 먹으면 곤란한 것들을 이렇게나 짊어지고 살았다니. 내친 김에 냉장고 메뉴판 작업도 (개학하고 아내가 해방타운으로 떠나고 나 혼자 있을 때) 해 보고 싶다. 집안인을 당연히 같이 하는 거라면서 냉장고는 자신의 영역이라고 건드리지 말라는 부인의 의중을 굳이 거스르고 싶지는 않으므로. 아무튼, 이런 식이다. 1번칸에 있는 것 : 아이들 간식류(과자 00봉, 초콜릿 00개) 2번칸에 있는 것 : 냉동밥 ~정도, 냉동만두 0봉, 3번 칸에 있는 것 : 땅콩~봉, 오징어 ~마리......



6.



정리 컨설턴트인 저자가 직접 겪은 일들과 실제 컨설팅 사례들도 충분하게 수록되어 있어 참고할 만하다. 무엇보다 결국 정리 후 그 공간에서 다시 살아가게 될 사람의 삶의 형태와 방향성을 생각하게 하는 책, 집을 어느 곳보다 편안한 공간, 있고 싶은 공간으로 만드는 책이므로 충분히, 읽어볼 만하다. 어떤 가구 형태에서 살든 간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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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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