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 정 가운데의 몸 좋은 아저씨가 주인공 루시우스다. 기원후 2세기 로마의 테르마이(목욕탕) 설계사. 이 사람이 서 있는 곳은 2012년 일본의 목욕탕이다. 시대에 뒤떨어지는 건축 스타일이라며 외면받고 고민하던 그가 우연히 목욕탕을 통해 현대 일본으로 넘어오고, 발달한 목욕 문화를 다시 자신의 시대에 재현함으로써 로마 시민들의 행복 증진과 치유는 물론 황제와 나라까지 구하게 되었다는 만화적 스토리라인을 갖고 있다. ＇만화적＇ 스토리니까 이 사람이 어떻게 욕탕에 빠졌는데 현대 일본으로 넘어오게 됐고, 고민이 해결되자마자 다시 자기 시대로 돌아갈 수 있는지에 대한 설명은 과감히 생략.

이렇게 날이 춥고 쌀랑할 때면 따끈한 물에 몸 담그고 고개를 뒤로 젖히면서 눈을 반쯤 뜨든 감든한 상태에서 ＇허어~＇하고 깊은 숨을 내뱉고 싶다는 그 마음. 욕실 바닥에 물 떨어뜨리지도 못하게 하는 서양 사람들을 보면서 ＇니들은 뭐 이런 것도 모르고 사냐.＇하는 생각을 했었는데 이 영화를 통해 잊고 있었던 걸 다시 떠올렸다. 서양 문화의 근간인 로마 시대엔 목욕탕 문화가 성행했었다는 사실을 말이다.(직접 가서 유적지도 보고 와놓고선ㅜㅜ)

<고대 로마 목욕탕에서 내부를 데웠던 원리를 설명한 그림. 연기가 통하는 굴뚝을 통해 내부를 데웠다고 한다.>

1인용 욕조, 월풀 욕조, 온돌, 머리 감을 때 얼굴이 젖지 않게 머리에 쓰는 물건,(명칭을 모른다.ㅜㅜ) 심지어 비데까지 로마에 재현하는 것도 재미있지만, 루시우스가 일본에 나타날 때마다 그와 만나게 되는 여주인공 미나미와의 관계도 재미있다. 만화가 지망생이지만 잡지에 뽑히기는 커녕 문하생에서도 쫓겨나고 알바도 잘려 결국 온천 여관을 경영하는 집으로 돌아온 미나미는 도착점이 보이지 않는 자신의 꿈과, 기울어가는 가세 때문에 돈 많은 집 아들과 맞선을 보기에 이른다.

주인공 루시우스 역시 목욕탕 설계를 통해 황제의 총애를 입고 승승장구하는 듯 보이지만, 테르마이 설계사로서의 자존심과 평안족(그가 일본인들을 부르는 명칭)의 것들을 모방했다는 비밀 사이에서, 그리고 시민들의 행복과 치유에 사용되어야 할 테르마이를 권력과 자기과시의 도구로 사용하려는 차기 황제 지명자 사이에서 많은 심리적 갈등을 겪는다. 게다가 일에 매진해있는 사이 부인마저 가장 친한 친구와 바람나 떠나버린다.

하지만 목욕의 본질을 고민하고 그를 통한 휴식, 치유를 많은 이들에게 나누고자 하는 과정에서 주인공들 역시 저도 모르는 새 자존감을 회복하고 다시 현실을 살아갈 힘을 얻게 된다.(루시우스의 최종 목적이 시민들의 치유와 휴식이 아니라 그를 통해 자신을 총애하는 황제가 신격화될 수 있게 하고자 했다는 점은 좀 불편하고 처음 맥락과도 어긋나지만) 우리도 목욕을 좋아하는 편이지만 일본인들이 목욕과 온천에 관해 얼마나 큰 의미를 두고 있는지 무겁지 않게 유쾌하게 엿볼 수 있는 재미있는 영화로 추천하고 싶다. 덧붙여, 로마에 가 본 사람이라면 더 흥미롭게 볼 수 있는 당시 풍경의 재현도 또다른 볼거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