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은영 시인을 좋아한다. ‘시’라는 것은 교과서에 나오는 기형도의 <빈집>과 정지용의 <향수>가 전부인 줄 알았던 시절, 학교 수업 때문에 진은영의 시집을 알게 되었다. 아마 《일곱 개의 단어로 된 사전》이었지. 시가 참 예뻤다. 아니, 예뻤다기보다도 애달팠다. 정확히 시 안의 문장이 무얼 가리키는지는 알 수 없었지만 단어와 단어가 모여 그 사이에 무언가 고여 있는 무언가가 나의 감정을 건드리는 느낌이었다. 시라는 게 정확히 뭔지 알지 못했지만 예쁜 단어들의 조합에서 끝나는 게 아니라는 건 알 수 있었다. 물론 지금도 시란 ‘무엇’이다, 라고 설명할 수는 없다. 하지만 무언지 알 수 없는데도 좋다고 느낀 것은 정말 좋은 것이다. 내게 진은영의 시가 그랬다. 나뿐만이 아니라 실제로 시를 전혀 모르는 친구들에게 진은영 시인의 몇몇 시를 소개하기도 했는데 그때마다 친구들은 단어가 너무 예쁘다며 좋아했다. 오독이었을지언정 기분이 좋았다.

《시시하다》에서 시를 소개하는 진은영 시인의 마음도 그러했을까? 진은영 시인은 들려주고 싶고, 하고 싶은 말이 있는 92편의 시들을 골라 독자들에게 읽어준다. 아주 쉽게, 하지만 날아갈 정도로 가볍지는 않게. 시에 대한 지식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시를 읽고 느낀 감정과 생각들을 자유롭게 들려준다. 시에 관심이 있지만 어렵게만 생각했던 독자들에게도 편안하게 다가가는 점이 매력이다. 물론 진은영 시인을 좋아하는 독자들에게는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책이겠지. 진은영 시인은 이런 시를 읽고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슬며시 스쳤구나, 생각하면 내 마음까지 설렌다. 게다가 이렇게나 좋은 시들이 많았다니. 깜짝 놀라기도 한다. 한국 시뿐만 아니라 세계의 수많은 시를 읽다 보면 온통 시에 얼룩지는 느낌이다.

<칠 조심>-

내 마음이 조심하지 않는 바람에

내 기억은 종아리와 뺨과

팔과, 입술과, 눈에 온통 얼룩져버렸다.

-보리스 파스테르나크 <칠 조심> 중

한창 시를 ‘배우던’ 무렵, ‘시’라는 단어를 가지고 장난을 치고는 했었다. ‘시식시간’ ‘시시덕’ ‘시름시름’ 등 어렵게 느껴졌던 ‘시’를 우스꽝스럽게 만들면 쉬워질 것 같은 마음이었는지, 아니면 그저 ‘시’라는 단어가 들어간 말들이 좋았던 건지 모르겠지만 어떤 의미였든 간에 시에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다는 행동이었다. ‘시시하다’도 그중 하나였는데 어쩌면 진은영 시인도 그러한 마음을 담아 독자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건 아닐까 싶다.

시인은 자신이 읽은 시와 ‘그 또는 그녀가 오후 내내 기다리고 있어요. 영혼을 가을 하늘처럼 말갛게 씻어놓고 당신에게 마음껏 떼어주기를 고대하면서.’와 같은 시인의 놀라운 위로의 문장을 건네는데, 읽다 보면 내가 시 몇 편을 더 읽고 있는 듯한 착각까지 든다. 아니, 어쩌면 틀린 말이 아닐 수도 있겠다. 시 한 편과 그 시가 낳은 진은영 시인의 시와, 진은영 시인의 글을 읽고 다시 내 이야기로 환원하며 생기는 시.

실컷 오독하고 진은영 시인의 이야기도 들을 수 있으며 위로를 받기도 하며 다시 내 이야기로 돌아가는 과정. 마치 진은영의 ‘시시한’ 이야기가 일상에서 독자들을 잠시 납치하는 듯하다. 납치당하기 전과 후는, 겉으로는 변한 게 없어보여도 분명 다를 것이다. 이런 납치라면, 몇 번이고 당하고 싶다.

만약 내가 시인이라면

당신을 납치하여

내 시구들과 운율 속에 당신을 놓아두고

(중략)

라일락꽃 속에서 당신에게 노래를 불러드리고

당신에게 비를 마구 맞히고

(중략)
당신을 적색 흑색 녹색으로 두르고

엄마께 당신을 보여드릴 거야.

-니키 지오바니 <납치의 詩>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