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영화/공연

로지나
- 작성일
- 2011.5.17
토르: 천둥의 신
- 감독
- 케네스 브래너
- 제작 / 장르
- 미국
- 개봉일
- 2011년 4월 28일
* 아래 글은 북유럽 신화와 영화를 함께 설명하다보니 스포일러 덩어리가 되었습니다. 주의하세요!
Thor in Nordic Myths
북유럽 신화를 어떠한 형태로든 가장 처음 접하게 된 계기가 혹시 무엇인가요?
저는 '오! 나의 여신님이여(만화)' 였습니다.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세 여신 - 베르단디, 스쿨드, 울드의 이름이 북유럽 신화에서 차용되었다는 것은 물론 좀 더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이지만요.
그리스 로마 신화에 비해 대중적 인기는 덜하지만, 환타지 소재의 만화나 게임에선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이 북유럽 신화입니다. 시대를 풍미했던 온라인 게임 '라그나로크'도 그렇구요, 수많은 게임 폐인을 양상한 와우(WOW) 역시 북유럽 신화와 공통된 부분이 있으며, 요즘 한창 대세인 '아이온'의 경우에도 등장하는 NPC(게임 속 케릭터) 이름을 죄다 북유럽 신화에서 차용했더라구요. 심지어 제가 몸 담은 서버가 바로, '토르' 입니다. 음 ... 쓰다보니 굉장히 오타쿠 냄새 나는 도입이 되었네요. 가볍게 스킵하셔도 좋습니다.
요점은 북유럽 신화는 흐릿한 형태로 우리 주변에서 많이 볼 수 있으며, 생각만큼 낯설지 않은 세계관이라는 것입니다. 그런 북유럽 신화를 바탕으로 만든 마블코믹스 원작, 영화 '토르'를 얼마 전에 보았습니다.
<로지나 상상 속의 토르 이미지>
누구죠, 이 근육질 미남은? 호주 출신의 크리스 헴스워스(Chris Hemsworth)는 제 이미지 속의 토르에 비해 너무나 핸섬하네요.
영화의 원작이 정통 북유럽 신화를 바탕으로 한 것이 아닌 슈퍼히로 만화를 바탕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 영화 속 북유럽 신화는 사실 엉망진창입니다. 진짜 로키와 토르가 형제라고 생각하시면 곤란해요. 로키는 아스가르드의 왕자가 아니었습니다. 아름다운 금발의 여신이자 토르의 아내인 시프(Sif)도 영화 속에서는 흑발의 미녀전사로 등장합니다. (제이미 알렉산더) 영화 내용 물론 북유럽 신화와는 전혀 무관합니다. 이름만 차용한 수준이에요. 영화 토르는 '만화 토르'의 영화판이지 북유럽 신화를 재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토르'가 재미있는 것은, 지극히 만화다운 극단적인 설정이 낯선 북유럽 신화를 흥미진진하게 포장해주기 때문입니다. 유치하다, 내용이 없다- 고 쉽게 폄하하지 마세요. 만화를(그것도 마블코믹스를) 바탕으로 했으니 유치한거야 당연한거고, 깨알같이 등장하는 북유럽 신화의 '흔적'들만 수거해도 제법 관람 포인트가 톡톡하답니다. 신화를 재현하진 못했으니, 신화와 비교해보는 재미가 있다고나 할까요.
영화에서 오딘은 지혜롭고 강력한 왕, 그러나 노화로 기운이 쇠약해져 토르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합니다. 토르와 로키는 형제로 나오는데 차분하고 계략가인 로키에 비해 토르는 다혈질에 야망에 눈이 먼 (그러나 심성은 착한) 왕자입니다. 아버지의 관심을 받고 싶었고, 항상 주목받는 형이 못마땅했던 로키는 토르의 왕위즉위식을 몰래 망치고 토르를 부추겨 프로스트 자이언트(서리 거인)와 전쟁을 일으키려 합니다. 토르의 호전적인 성격에 크게 실망한 오딘은 토르를 인간계 미드가르드로 추방하고 그의 무기 묠니르를 땅 위에 굳게 박아 봉인해버립니다.
뭐 영화의 줄거리를 대강 설명하자면 이렇습니다.
이 과정에서 힘을 잃은 토르는 과학자 제인(나탈리 포트만)을 만나 사랑에 빠지고 ~ 어쩌구 ~ 다시 힘을 되찾는다! 뭐 이런 뻔한 맥락. 참 단순하고 시원시원한 것이 딱 마블 코믹스답죠?
- 토르는 어떤 신?
그리스/로마 신화에서 가장 인기있는 영웅 캐릭터를 꼽자면 누굴 떠올리시나요? 반신 헤라클레스? 페가수스의 주인 페르세우스? 그렇다면 가장 인기 있는 신은 누구일까요? 존재만으로 빛나는 태양신 아폴론? 올림포스의 얼짱 비너스?
북유럽 신화에서 가장 인기있는 영웅이자 신은 바로 토르입니다. Thor라고 쓰지요.
전지전능한 번개의 신이자 (제우스와 겹치나요?) 농경의 신으로 강하면서도 인간과 친밀한 최고의 신이지요. 그의 인기를 뜻하는 것으로, 목요일 Thursday 은 토르의 이름을 딴 Thor's day 에서 유래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스/로마 신화가 연애와 치정으로 얽힌 서정적인 멜로 드라마라면, 북유럽 신화는 신과 서리 거인 사이의 끝없는 대립으로 이루어진 거친 액션 드라마입니다. (물론 연애 이야기도 빠지지 않습니다만) 특히 토르는 서리 거인을 너무나 증오하여 눈에 띄는 대로 멸살해버리는 화통한 성격으로 유명하지요. 영화 속 토르의 성격도 아마 이런 설정을 따온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화끈하고 끝내주게 강하지만 머리는 그다지 똑똑하지 못한 영웅.
- 로키는 누구?
영화 속에서도 핵심 아이템으로 다루어지는 토르의 무기 '묠니르'는 신의 세계인 아스가르드에서도 최고로 강한 무기로 손꼽힙니다. 천재 드워프 대장장이인 브로크와 에이트리가 만든 망치 모양의 무기로, 전지전능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영웅의 무기지요. 단 하나 단점이 있다면 손잡이가 만들다 만 것처럼 짧다는 것인데 ... 아, 왜 로키 이야기는 안하고 묠니르 이야기냐구요?
묠니르의 손잡이가 짧아진 원인이 바로 로키이기 때문입니다. 브로크와 에이트리가 묠니르를 만드는 동안 벌레로 둔갑한 로키가 쉴 새 없이 그들의 손과 눈을 쏘아 방해를 했기 때문이지요.
영화 속 로키의 설정은 - 프로스트 자이언트(서리 거인)의 왕 로피의 아들로서 오딘에 의해 주워져 아스가르드에서 왕자로 자랐다는 것이지만, 실제로 로키는 오딘의 아들이 아니라 의형제에 가까운 존재입니다. 서리 거인족과 신들이 요툰헤임 / 아스가르드로 갈려 대립하고 있는 와중에 왜 서리 거인의 아들인 로키가 오딘과 의형제가 된 것인가 - 에 대해서는 불분명한 부분이 있습니다. 로키는 규정할 수 없고, 사악하며, 재치가 넘치고, 변덕스럽고, 무엇으로도 변할 수 있는 존재. 북유럽 신화에서 가장 흥미로운 캐릭터입니다. 신들의 심부름꾼 노릇을 하기도 하고, 반목하기도 하는 .. 그러면서도 어마어마한 위력을 가진 존재.
영화에선 아버지 오딘의 사랑을 충분히 받지 못해 성격파탄자가 된 가여운 둘째 왕자로 그려졌지만, 실제 북유럽 신화 속 로키는 보다 밉살맞은 캐릭터랍니다. 서리 거인의 피가 흐르면서도 오딘의 허락을 얻어 아스가르드에서 신들과 함께 생활하지요. 그러나 항상 문제를 일으킵니다. 거의 대부분의 사건이 로키에서 시작되어 로키로 끝난다고나 할까요.
아마 영화(혹은 만화) 속에서는 이름이 유사하여 관객이 헷갈릴까봐 로피라는 제 삼의 이름을 갖다댄 것이 아닐까 싶네요. 다만, 실제로 우트가르드 로키는 영화에서 만큼 강력한 무기를 갖지도, 오딘과 대등하게 싸우지도 못했습니다. 악역이 필요했던 만화적 장치가 아닐까 싶네요.
- 파수꾼 헤임달
그 밖에도 감초처럼 등장하는 '헤임달'의 존재가 눈에 띄네요. 북유럽 신화의 설정을 그대로 빌려와 아스가르드의 파수꾼이자 감시자 역할을 합니다. 그 역시 주신(主神) 중 한 명인데, 미드가르드와 아스가르드를 잇는 비프로스트 다리를 지키고 있습니다. 헤임달의 태생에 대해선 두가지 설이 있습니다. 오딘의 아들이라는 설과, 바니르 신족 출신이라는 설. 물론 무엇이 정통인지는 모르지만 분명한 것은 그가 9개의 파도를 어머니로 두고 있다는 것이며, 인간의 조상신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미드가르드로 내려가 인간에게 자손과 지혜를 전수했는데, 그 때문에 인간을 두고 헤임달의 자식들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비프로스트는 '무지개'를 뜻하는 말로, 흔히 무지개 다리 비프로스트라고 합니다. 영화에서는 마치 가고 싶은 곳으로 맘껏 이동할 수 있는 텔레포터처럼 토르 일행을 서리거인의 땅 요툰헤임으로도 막 보내줬는데, 비프로스트는 사실 인간계와 신계를 잇는 다리기 때문에 서리 거인의 땅인 요툰헤임으로는 뻗어있지 않답니다. 신화 속에서 토르는 요툰헤임을 여행한 적이 있는데 그 때는 무려 도보로 (..) 다녔다는 이야기.
헤임달은 신화 속에서도 로키와 굉장히 적대적인 모습을 보여주는데, 영화에서도 대놓고 로키를 싫어하는 모습을 보여줍니다. 물론 로키의 악행을 감시자의 눈으로 모두 볼 수 있기 때문이겠지요. 헤임달은 파수꾼, 감시자라는 칭호 답게 엄청난 시력과 청력의 소유자라서, 1200리 이상을 보고 들을 수 있다고 합니다. 그의 시력이 미드가르드에까지 미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영화에서는 이런 헤임달의 특징을 살려 마지막 장면을 만들었지요.
미드가르드에 두고 온 토르의 인간 연인의 모습을 토르 대신 지켜봐줍니다.
- 무지개 다리 비프로스트
영화 '토르'의 후반부, 토르와 로키가 비프로스트 위에서 전투를 벌입니다. 당연히 로키는 토르를 이길 수 없지요. 전투력에서 너무 큰 차이가 나거든요. 흑흑. 오딘의 창인 궁니르를 가지고 아무리 애써보지만 어쨌든 토르에게 KO패. 그리고 토르는 비프로스트 다리를 부숴버립니다.
이 부분이 .. 참 .. 만화적 장치의 극치라고 할 수 있지요.
영화 내용에 따르면,
로키는 로피의 아들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았지만 오딘의 아들로 남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오딘에게 인정받고자 진짜 고향인 요툰헤임을 박살내려고 하지요. 비프로스트를 이용해서요. 사실 비프로스트와 요툰헤임이 전혀 무관하다는 신화 속 설정을 생각하면 이해가 안가는 부분이지만, 어쨌든 비프로스트를 통해 요툰헤임을 공격합니다. 레이저포 쏘듯이 조각조각.
미드가르드에서 호전적인 성격이 급 감화된 토르는 부수기 위한 싸움이 아닌 지키기 위한 싸움을 하고자, 요툰헤임을 공격하는 비프로스트를 멈추려 합니다. 그러나 한 번 폭주한 비프로스트는 쉽게 멈추지 않고, 토르는 궁여책으로 묠니르로 다리를 때려 부수게 됩니다.
원래 신화에 따르면, 비프로스트는 신들의 최후의 전쟁인 '라그나로크' 때 파괴됩니다. 그런데 영화에선 토르가 벌써 박살을 냈으니 (;)
이렇게 싸우다가 비프로스트가 박살나는 사태
결국 로키는 자살(?)하듯 비프로스트 아래로 떨어져 절대로 얼지 않고 영원히 흐른다는 이빙강으로(영화에선 마치 우주처럼 표현 된) 빠져듭니다. 토르는 다시 오딘의 뒤를 이어 왕이 되고, 아스가르드엔 평화가 찾아온다는 내용.
신화 속에서 로키의 최후는 자살이 아니고, 라그나로크 전투 때 신들에 맞서 싸우다가 헤임달에 의해 죽는 것이랍니다. 라그나로크 - 즉, 신들의 최후의 전쟁에서는 '최후'라는 말 답게 거의 대부분의 신들이 다 목숨을 잃게 되는데요, 오딘과 토르도 로키의 자식들에 의해 죽게 되지요. 헤임달 역시 로키와의 전투에서 숨을 거두고 맙니다. 그렇게 신들의 시대는 막을 내리는 것이지요.
신들의 세계 '아스가르드' 정확히는 에시르 신의 세계라고 하는 것이 맞다.
북유럽 신화도 그리스/로마 신화와 마찬가지로 신들이 다소 인간적인 모습을 많이 보여줍니다.
그들의 모습은 흔히 상상하는 위엄있는 신의 모습일 때도 있지만, 배신하고 화내고 은밀한 정을 나누는 인간의 모습을 보여주기도 하지요.
특히 북유럽 신화는 단순할 정도로 쉽게 싸우고, 쉽게 벌주고, 쉽게 죽이거나 살리는 극단적인 서사구조가 다이나믹 하면서도 억지스런 부분이 있는데, 그게 바로 매력이 아닌가 싶어요. 얽히고 설킨 신들의 인간관계(?)를 보다 보면, 참 예나 지금이나 막장 드라마 좋아하는 사람들의 통속적인 취향은 변하지 않는구나 싶기도 하고.
영화 속에서 토르와 사랑에 빠지는 제인(나탈리 포트만) ... 근데 존재감 너무 약하다!
영화 '토르'의 의의는 앞으로 나올 마블 슈퍼히로 집대성인 '어벤져스'를 위한 디딤돌이라는 평가가 많더라구요. 그래서 영화 자체의 완성도나 퀄리티보다 그냥 개봉하는 것 만으로 의미가 있다며 .. 아, 근데 단순히 마블 매니아들을 위한 보너스 컷 정도로 생각하기에 토르 제법 재밌습니다. 어설프지만 나름대로 각색된 SF버젼 아스가르드를 보는 재미도 쏠쏠하다구요.
특히 그 디스트로이어... 진짜 스타크의 신무기처럼 보이는 그 살인병기! 원래 마블코믹스에 따르면 토르의 아내가 들어가서 멋대로 조종당하는 .. 뭐 그런거람서요? (ㅋㅋㅋ) 정작 진짜 아내인 시프는 옆에서 같이 싸우고 있는데 .. 여튼 참 기발한 상상력입니다.
- Thor in Nordic Myth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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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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