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리뷰어클럽

징징이
- 작성일
- 2022.7.15
류
- 글쓴이
- 히가시야마 아키라 저
해피북스투유
친구가 요즘 리뷰어클럽 활동을 하고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나도 한번 해볼까 싶어 신청해 처음 당첨된 책이 바로 이 책이다. 서평단이라고 하면 뭔가 엄청나게 박식한(?) 똑쟁이들(?)이 머릿속에 있는 것들과 새로운 책을 통해 이루어낸 멋진 하모니를 글로서 표현하는 거라고 생각했기에, 거기에서 내 자리는 찾아본적이 없었다. 그런데 친구따라 강남간다고 했던가. 나도 한번 해봐? 싶은 마음에 가볍게 신청을 했는데 덜컥(?) 당첨되어 신기하기도 하고 어떻게 써야할지 걱정되기도 했다.
처음보는 작가인 히가시야마 아키라의 소설 "류"를 고른 이유는 사실 단순했다. 나오키상, 미스테리, 일본서점 대상, 일본 유명작가들의 추천사,,, 읽어보라고 나에게 온다면 마다할 이유가 없는 포장에 쌓여진 책이었다. 흥미 가득한 마음으로 책을 펼쳤고 왜 좋은 포장지를 많이 달고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책을 다 읽기도 전에 포장만큼이나 아니 그보다 내용이 더 실한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영웅과 같은 할어버지의 죽음, 벗어나지 못하는 치우성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지, 모르는 일은 모르는 법이 없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는 해결할 수 없지. 그래도 꾹 참으면 그 사건은 언젠가 우리 안에서 통증을 날리고 복구할 수 없는 상태로 묻히게 된다. 그리고 우리를 지키는 비취같은 보석이 된다."
이야기의 배경은 대만이지만 주인공은 중국 본토에서 패전하고 넘어온 국민당의 2세로, 할아버지인 예준린은 국민당원으로서 맹활약한 영웅처럼 그려진다. 특히 일본의 끄나풀로 표현되는 왕커창 일가를 죽인 것이 가장 큰 모험담 중 하나인데, 어느날 비극적인 죽음을 당하고 그것을 주인공인 예치우성이 목격하면서 이야기의 중심 화제가 발단된다. 이후 10여년의 시간이 흐르기까지 치우성에게 방황, 사랑, 실연, 친구, 군대와 관련된 많은 삶이 지나가지만 할아버지의 죽음에 대한 의문은 어떤 사건의 덩어리 끝에서든 남아 떨칠 수 없는 잔상처럼 치우성의 삶에 잔류한다.
받아들이는 것 VS 파헤치는 것
"욕조에 잠긴 할아버지를 발견했을 때의 충격은 내 안에서 딱딱한 결정으로 변해 매우 다루기 쉬워졌다. ~ 우리는 끝내 마음을 따르거나 아니면 단호하게 앞으로 나아가는 수밖에 없다. 그렇게 단호하게 마음을 거절하다 보면 우리는 더는 우리가 아니게 되고,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되어 간다."
"이런 거 보면 할아버지랑 쏙 빼닮았네. 그 사람이 첫 부인을 버리고 나를 선택했을 때도 이렇게 내내 후회를 했다니까. 뭘 후회할게 있니? 후회하든 아니든 어쩔 도리가 없으니까 얼른 다시 시작하는 수밖에 없다고. 이 바보야"
잊을 수 없는 사건을 겪은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하는 것이 현명한 것일까. 어쩔 수 없었음을 계속 되뇌이며 앞으로 나아가야 할까 아니면 그 사건을 품으며 잊지 않으려 노력해야 할까. 직접 겪은 사람이 아니라면 쉽게 어찌하라 대답할 수 없는 일이다. 과거와 현재 흘러왔고 흘러가는 삶의 색깔에 따라서, 굴곡의 깊이에 따라서, 인연을 맺고 헤어지는 과정에서 각자 자신의 길을 선택할 뿐이다.
치우성은 할어버지 일에 대해 끝내 마음을 따르기로 결정한다. 여기엔 특히 지독히 사랑한 마오마오와의 관계에서 얻은 깨달음이 작용한 것일 수도 있다고 느껴졌는데, 가솜속의 통증이 딱딱한 결정이되어 다루기 쉽게 남았다 한들, 자신에게 너무나 소중한 무언가를 보낼 때 끝까지 노력하지 않았다는 후회가 함께 남는다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다고 생각한 것이 아닐까.
죽지 않기 위해 죽일수밖에 없는 상황에서
"그래서 실수로 사람을 죽인 나는 이거다 싶어 병사가 됐지"
예준린이든 우연치않게 사람을 죽인 마 할아버지든 사람을 죽인 사람은, 세상의 모든 가치를 한장도 남기지 않고 다 벗겼을때야 비로소 남을 '죽음'이라는 것을 스스로 만들어낸 사람은, 다시 새로운 가치를 자신에게 덮어주기 어렵다. 아무리 당시 상황에서 최선의 선택이었다 한들 끊임없이 자신을 괴롭히며 과거에 살 수밖에 없다.
10위엔짜리 취두부와 행복
"조폭을 하며 더러운 돈을 모았는데 내가 먹고싶은 건 한 그릇에 10위안 하는 취두부 라고. 초등학생이 하굣길에서 사 먹을 수 있는 걸 위해 누굴 찌르거나 쏠 필요가 있겠냐?"
샤오잔은 학창시절을 불량하게 보내다 성인이 되어 조직폭력배가 되고 싸움 과정에서 사람을 죽인다. 그리고 몇년 뒤 출소해 취두부가 너무나도 먹고싶었다고 말한다. 감옥에서 가장 갈망했던 것이 취두부를 먹는 일이라니. 지금은 취두부를 먹기 위해 사람을 죽여야 하는 시대가 아니다. 살아남고자 어쩔 수 없이 타인을 해할 수 밖에 없었다는 변명이 통하는 시대는 지나지 않았는가..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 모르고 사는 삶은 이렇게 멀리 돌고 돌아야 제자리를 찾는다.
드럼통 변절자와 물속의 물고기
나는 배웠다. 인간, 드럼통 안에 넣어져 산 정상에서 굴러떨어지는 일 정도로 이렇게 완벽하게 변절할 수 있다면, 진짜 전쟁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이렇게 된 이상 이제는 누근지 모르지. 둘 다 죽었으니까. 게다가 진실이 무엇이든 상관없는 일이고. ~ 산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잖아."
"나는 물속에 살아서 당신은 내 눈물을 볼 수 없어요"
당사자가 모두 죽은 마당에 진실이 다 무슨 소용이며, 직접 격지 않은 사람들이 이랬다더라 저랬다더라 하는 말들이 얼마나 신빙성이있을까. 어차피 지금을 살아가는 자신의 삶을 정당화 하기 위해 각자의 입장에서 같은 이야기가 여러 색깔로 각색될뿐이다.
그리고 치우성이 드럼통에서 자신이 비겁함을 인정했듯, 처한 상황에 따라 우리는 살아남기 위해 내 신념을 버리기도 한다. 윤동주는 하늘을 우러러 한점 부끄러움 없기를 바라며 생을 마감했지만, 수많은 친일파들은 살아남기 위해 변절했다. 그리고 많은 국민들이 마음속엔 독립을 품고 겉으로는 일제에 항복했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잘못이고 죄라고 말할 수 있을까.
우리는 저마다 과거로부터 이어진 현재를 살아가며 그 속에는 여러 기쁨과 상처, 가치관과 선입견 같은것 들이 어우러져 있다. 그래서 그런 자신만의 물 속에 다른 물고기가 들어와 아무리 울어도 그 눈물을 볼 수 없다. 내 물속에는 이미 나의 눈물로 가득 차있기 때문에.. 다시 살아가기 위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사랑하는 사람을 똑바로 응시하고 이해할 때 비로소 나에게 조금도 남지 않았다고 생각했던 '가치'가 나를 덮어줄 수 있다.
과거를 이야기하며 현재를 사는 법
종합해보면, 전시상황에서 생과 사의 기로에 놓여 치열하게 사는 길을 가본 사람이 아닌 이상 우리가 그 시절의 그들의 선택에 대해 말할 자격도 권리도 없다. 복수의 고리는 누군가 잘라내지않는 한 다툼은 다툼을, 죽음 또다른 죽음을 낳을 뿐이며 인간은 타인을 죽이는 행위가 아닌 좋아하는 취두부를 먹는 일 정도에 행복을 느낀다. 라캉이 말했듯 타인의 욕망을 욕망하고 살것인가? 타인을 욕망을 욕망하는 나 자신을 제대로 바라보려 할것인가? 추리물인듯 판타지인듯 대하소설인듯 혹은 그것 모두인듯한 소설 한권이 한 인간의 넘실대는 과거와 현재를 빌려 수많은 질문들을 던져댄다.
'YES24 리뷰어클럽 서평단 자격으로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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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