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세이

책벌레
- 공개여부
- 작성일
- 2021.7.28
지속되는 학업에 대한 압박감과 공부는 학생의 의무라는 말이 귀에 못이 박일 정도로 들었을 때쯤, 나는 서서히 내 머리가 이상해 지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처음에는 자책할 뿐이었다. 공부 성적은 머릿속의 실망감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비례했다. 지나가다 들은 소리지만 공부 잘하는 얘들보다 공부 못하는 얘들이 더 억장이 무너진다고 하지 않던가.
아무래도 그 이유는 남과 비교된다는 이유에서 일 것이다. 선생님이 아무리 남의 점수에 관심을 두지 말라 하시더라도 공부 잘하는 얘들은 이미 심리전에서부터 점수를 파악한 상태였다. 나 역시 시험이 끝나면 90점 대의 하이에나들에게 물어뜯길 때로 뜯기며 살점 하나 남기지 않고 뼈와 가죽만 남게 되어버린다. 그럴 때 마다 이런 생각을 하게 된다. "시험은 아는 것을 점검하기 위해서 보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정작 현실에서는 계급을 나누는 것보다 더 심한 지경에 이르렀다. 그저 모르는 것을 점검하는 시간이 누구에게는 악마와 사탄의 조합을 감미로운 MSG와 함께 짬뽕으로 섞어버린 시간이 되지 않는가. 또 누구에게는 인생이 평생 팔자주름 없이 펴진 것 같은 얘들이 있지 않은가.
나는 그런 가운데에서 하필이면 하위권에 속했고 어쩔 수 없는 우연처럼 자연스럽게 우울해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것을 흔히들 우울증이라 부른다. 처음에는 스트레스가 쌓여 정서적으로 조금 불안하기밖에 더했다. 하지만 갈수록 시간이 지나면서 어느 뉴스에서 보았던 것처럼 뇌에서부터 모든 것이 달라진 느낌이 들었다.
늦게 자게 되면서 불면증이 생기고, 방에만 틀어박혀 있다 보니 운동 부족 증세가 생기고,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크 써클이 찐해지다 못해 파래졌다. 내 몸은 점점 징그럽게 짝이 없어지기 시작하면서 얼굴 형태도 변해갔다. 나도 내가 거울을 보면 누군지 모르겠을 정도였다.
그전까지는 시험 기간이 끝나면 늘어지면서 이런 것들도 점차 나아지기에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 하지만 이런 기대는 불행으로 갚아준 것 같다. 점점 누군가를 원망하기 시작하고 급기야 완전히 현실 부정을 하기 시작했다. 세상은 자기중심적으로 돌아간다는 환상에 빠지기 시작하고 이 지긋한 인생을 끝내고 싶다는 생각도 울컥울컥 하면서 들었다. 바로 앞에 있던 어머니 아버지도 금세 그리워지고, 신경이 예민해 지면서 모두에게 신경질을 부리게 되었다. 그리고 이 상태에서 시간이 어느 정도 지나자 드디어 끝을 향해서 달려가고 있는 건지, 분노를 조절하지 못하는 분노조절장애도 찾아왔다. 공부하려고 펜을 들고 있으면 눈 깜짝 할 사이에 펜이 부러져 있고 손에서 시커먼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그제야 사태의 심각성을 깨달은 아버지와 어머니는 나를 데리고 병원에 찾아갔다. 의사의 진단 결과 나는 불면증, 우울증을 포함해 각양각색인 약들을 진단 받게 되었다.
하루의 시작은 몇십 개의 알약을 먹으면서 시작해야만 했고 슬픈데도 항우울제 때문에 울지도 못했다. 중간중간 팔에 손을 긋는 차마 꺼낼 수 없는 일들도 많았지만, 부모님의 끊임없는 관심으로 그런 일들이 줄어들었다.
그 틈을 노려 나는 더는 공부 때문에 우울함에 찌들지 말자는 다짐을 했다. 더는 성적 때문에 울지 않고, 더는 아이들의 놀림으로 상처받지 않고, 더는 남들의 시선 때문에 내 몸과 마음을 괴롭히지 않겠다고 말이다. 그 덕분에 점점 상태는 회복되었다. 그때부터 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내 곁엔 나를 응원하는 많은 사람이 존재하고 내 존재가 그리 하찮지는 않다는 것을 말이다. 세상은 밝고 세상엔 좋은 사람들이 많다는 것도.
그로부터 1년이 지났다. 나는 더는 공부에 매진하면서 공부의 노예가 되지 않고 적당히 운동도 하고, 잠도 많이 자면서 행복하게 인생을 보내고 있다. 지금도 종종 허구한 날에 뭐하냐는 소리를 듣긴 하지만 무시하고 지나간다. 어차피 저건 언젠가 지나가는 소리에 불과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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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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