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텔러
  1. 마이 북리뷰(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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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별하지 않는다
글쓴이
한강 저
문학동네
평균
별점9.2 (1942)
달밤텔러

결코 끝나지 않고 계속 이어질 지극한 사랑의 기억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를 읽고




 






 



 



하지만 모든 게 끝난 건 아니야.



정말 헤어진 건 아니야, 아직은.



 


아직 끝나지도 않고 헤어지지 않은 것은 무엇일까. 시간상으로 그 일은 이미 지나가 버린 과거의 일이지만 기억 속에서는 영원히 살아 있는 것이 있다. 우리에게 5.18 광주 민주화 운동과 제주 4.3 사건이 그렇다. <소년이 온다>에서 작가는 소년의 서사를 통해 당시 계엄군에 맞서 싸우던 주변 사람들과 그 후 남겨진 사람들의 고통받는 내면과 당시의 처절한 장면을 생생하고 묘사하고 있다. 이 작품을 통해 작가는 우리에게 5.18 이후 살고있는 우리에게 우리가 붙들고 아직도 끝나지 않은 역사적 기억을 소환한다. 그리고 작가는 이제 이 책 <작별하지 않는다>를 통해 우리에게 강하게 말하고 있다. “폭력은 육체를 절멸할 수 있지만, 기억은 육체 없이 영원할 수 있다.”라고 말이다. 그리고 그 제주 4,3 사건 기억을 한 모녀의 지극한 사랑의 기억으로부터 풀어내고 있다.


 



매일 밤 똑같은 꿈을 꾼다. 수천 그루의 검은 통나무들이 있고 그 나무들에 내려앉은 소금 같은 눈송이들이 내려앉는다. 나무들 뒤로 엎드린 봉분들이 있고 그 무덤들을 향하여 바닷물이 밀려오고 있다. 이대로 두면 무덤들이 다 잠겨버릴지 모른다. 이렇게 매일 밤 같은 악몽을 꾸며 삶의 희망을 잃어버린 경하에게 직장 동료였던 인선의 문자가 도착한다. “지금 와줄 수 있어?” 그 간절한 부름에 경하는 인선에게 가는데, 인선은 목공 작업 중 사고를 당해 봉합수술을 받고 병원에 입원해있다. 3분마다 손가락을 바늘로 찔러야 하는 고통 속에서 인선은 경하에게 간절히 부탁한다. “제주 집에 가줘. 안 그러면 새가 죽어.”라고 말하며 경하에게 제주 집으로 가서 앵무새를 구해달라고 한다. 경하는 인선의 그 간절함을 뿌리치지 못하고 눈보라와 기상악화를 뚫고 죽을 고비를 넘겨 제주집에 도착한다.



 



경하의 길을 가로막는 장애물로 등장하는 눈, 육각 기둥의 하얀 결정의 아름다운 눈, 하지만 눈은 이중성을 가진 비현실적인 존재일지도 모른다.



눈은 거의 언제나 비현실적으로 느껴진다. 영원처럼 느린 속력으로 눈송이들이 허공에서 떨어질 때, 중요한 일과 중요하지 않은 일이 갑자기 뚜렷하게 구별된다. 어떤 사실들은 무섭도록 분명해진다.(44~45)



하늘에서 소복소복 내릴 땐 아름답지만, 그 눈이 폭설이 될 때는 우리의 생명을 위협하고, 우리의 모든 흔적들을 지우며 과거의 기억을 소환하게 한다.



이렇게 눈이 내리면 생각나. 그 학교 운동장을 저녁까지 헤매 다녔다는 여자애가. 열일곱 살 먹은 언니가 어른인 줄 알고 그 소맷자락에, 눈을 뜨지도 감지도 못하고 그 팔에 매달려 걸었다는 열세 살 아이가. (87)



 



폭설이 내리고 정전과 단전이 되어 외부와의 접촉이 끊긴 칠흑같이 어두운 밤에 인선이 찾아오고, 조용히 자신의 엄마 정심의 이야기를 한다. 칠십 년 전 눈 내리는 운동장에서 학살당한 자신의 엄마, 아빠의 시체를 찾아 헤매였던 열세 살 아이의 이야기가 시작된다. 경하는 칠십 년 전 제주 4.3 사건에서 벌어진 민간인 학살에 얽힌 인선의 가족사를 듣게 된다.



부모와 동생을 모두 잃고 오빠마저 생사를 알 수 없게 되자 오빠의 행적을 뒤쫓아 수십 년을 바쳐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던 인선의 엄마 정심의 이야기와 그녀의 지극한 사랑의 기억이 폭설이 내리고 칠흑같이 어두운 밤, 제주의 외딴집의 희미한 촛불 속에서 은은히 불타며 떠오른다. 오빠의 유해라고 찾고자 그녀의 인생 대부분을 바친 인선의 엄마 정심의 지극한 사랑이 느껴진다. 끝내는 찾지 못했지만, 여전히 그 어린 과거의 기억 속에서 살다간 그녀의 절절한 그리움과 사랑이 영원처럼 느리게 하강하는 수천수만의 눈송이 속에서 정심 그녀 자신에게서 그녀의 딸 인선에게로, 마지막으로 경하에게 전해진다.



 



기억은 육체 없이 영원할 수 있기에, 아직은 작별한 것이 아닌 것이다. 이런 고통을 느낄 만큼 사랑한 적도 없다”(152)는 말처럼 그 사랑은 눈송이처럼 차가우면서도 불꽃처럼 뜨거워 영원히 지속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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