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밤텔러
  1. 마이 북리뷰(2021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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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수박 향기
글쓴이
에쿠니 가오리 저
소담출판사
평균
별점7.9 (50)
달밤텔러

<수박 향기



에쿠니 가오리 저/ 김난주 역



소담출판사/ 2012년 7월 16일



 



샋 어린 시절의  비밀스럽고 미스터리한 기억의 단편들



 



 









 





 



1. 들어가며



 



 



누구에게나 어린시절의 기억들이 있다. 그리고 그 기억들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나만의 비밀일 수도 있다. 나만 알고 있는 이야기, 나만의 소중한 추억일 수도 있고, 절대로 기억하고 싶지 않은 악몽일 수도 있다.



아마도 에쿠니 가오리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기억에서 잊혀졌지만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자신만의 비밀과도 같은 기억들을  이 책 『수박 향기』를 통해 소환하고 싶었을 것이다. 



 



에쿠니 가오리의 『수박 향기』에서는 열 한명의 소녀들의 특별하고 그들만의 비밀 이야기들이 담겨 있다. 에쿠니 가오리는 아무에게도 말하지 않은 그녀들만의 특별하면서도 풋풋하고 때론 미스터리한 그들의 추억 이야기들을 통해  당신 또한 당신의 기억 속에서 사라졌던 당신만의 어린 시절 추억을 소환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2. 추억  속으로



 



에쿠니 가오리가 그리는 미스터리한 기억의 조각들

열한 명 소녀들의 차갑고 애처로운 비밀 이야기



 



 



이 책 「수박 향기」에는 열한 개의 에피소드들이 들어 있다. 열한 명의 소녀들이 등장하고 그소녀들은 자신들이 기억하고 회상하는 차갑고, 미스터리하고 애처로운 비밀 이야기들을 은밀히 우리에게 들려준다. 때론 그 이야기들이 호기심을 자극하기도 하고 섬뜩하기도 하기도 하다. 마치  '너에게만 말해주는 거야, 아무한테도 얘기하지 않은 거야.' 라고 나에게 말하는 것만 같다. 열한 편의 에피소드들이 기묘하고 독특한 이야기라 읽는 내내 다양한 맛의 사탕을 골라먹는 느낌이기도 했다. 



 



 



 



1. <수박 향기>



 



수박을 먹을 때면 생각나는 일이 있다고 말하며 시작한다. 아홉 살 여름, 시골에 있는 숙모 집에서 방학을 보내게 된 한 소녀, 그 시절에 만났던 수박에 얽힌 추억 이야기이다. 갑자기 숙모 집에서 지내게 된 소녀는 외로움과 쓸쓸함에 우울한 나날을 보낸다.



 



가장 서글픈 것은 저녁때였다. 집에 가고 싶은 마음이 몸속에서 꾸물꾸물 기어올라 도무지 주체할 수가 없었다. 나는 그 작은 몸집조차 길들지 않은 고양이마냥 어쩌지 못했다. 체념한 심정으로 이불 속에서 울 때가 오히려 더 편했다.



-p.21 「수박 향기」 중에서



 



 



그러다 소녀는 외로움에 못 이겨 가출을 결심하게 된다. 그렇게 충동적으로 집을 나온 소녀는 어느 집 앞을 서성이게 된다. 그리고 그 집에서 샴 쌍둥이를 만나게 되고, 즐겁고 신나게 수박을 나누어 먹게 된다. 수박과 함께 수박에 붙어있던 시큼한 맛이 나는 개미들과 함께 말이다. 비록 허름하고 누추했지만, 그 친절함에 춥고 외로웠던 소녀의 마음은 따뜻해진다.



 



그 밤, 우리는 세 평짜리 방에 이부자리 두 채를 깔고 넷이서 잤다. 가족 같았다. 겁이 날 정도로 조용하고 후덥지근했지만, 신기하게도 푹 잤다.



-p.21 「수박 향기」 중에서



 



 



비록 그들이 하룻밤에 신기루처럼  사라져버려서 마치 꿈을 꾸는 것 같았지만, 그 때 느낀 따뜻함은 소녀의 기억 속에 계속 살아있을 것이다.



 



"어제는 어떤 여자가 살고 있었는데."



그렇게 말하자 경찰 아저씨는 노숙자였겠지, 했다. 이미 오래전부터 비어 있는 집이라면서.



 



그날 밤의 일은 숙모에게도, 우리 부모님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p.22 「수박 향기」 중에서



 



 



 



3. <물의 고리>



 



갑자기 머리 위에서 요란한 울음소리가 내려왔다.



주거주거주거주거주거주거주거주거,



요란할 뿐 아니라 분명한 의지가 담긴, 고약하고 도전적인 소리.



-p.41 「물의 고리」 중에서



 



비가 오는 날 우산을 쓰고 한 소녀가 걸어간다. 그리고 그 소녀를 뒤에서 따라다니는 한 남자 야마다 타로가 있다. 이야기 속에서 이 남자의 정체는 정확하게 밝혀지지 않은 미스터리한 존재이다. 그렇게 그림자처럼 그 소녀를 따라다니고, 이 남자는 아무도 모르는 그 소녀의 비밀을 알고 있다. 그것은 그 소녀의 유일한 악취미인 비오는 날 재미 삼아 달팽이를 밟아 죽이는 것을 알고 있다. 



 



나는 담을 따라 걸으면서 손가락으로 하나씩 떼어내(담에서 떼어낼 때 느껴지는 아주 희미하지만 악착같은 저항감)땅에 내던지고는 밟고 지나갔다. 장화 밑바닥에 아작 뭉개지는 가볍고 상쾌한 감촉이 전해져 걸음걸음마다 즐거웠다. 아작, 하는 찰나의 그 허망함. 학교로 가는 길목에서, 나는 그 살육에 열중했다.



-p.45 「물의 고리」 중에서



 



그런 그 소녀의 악행을 막고 싶었던 것일까. 그는 소녀의 손에 무엇인가를 건네준다. 그것은 턱없이 큰 죽은 매미였다. 그것을 받아든 소녀는 공포에 질린 나머지 소리도 내지 못했고, 손이 굳어 그것을 버리지도 못했다. 벙어리인 줄 알았던 그가 외친 말 "주거주거주거주거"  그 말을 들은 소녀는 공포에 휩싸인다. 마치 계속 그러면 '너도 달팽이들에게 죽는다' 라는 의미처럼 들린다. 엄청난 공포와 죄책감을 느낀 소녀는 그 후로 달팽이를 죽이지 않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는 참 공포스럽고 두렵기도 했지만 지나고 생각해보니 이제 그녀는 그가 그저 그 울음 소리를 흉내낸 것임을 이제야 안다. 



 



 



그때 야마다 타로가 준 매미가 말매미였고, 그는 그저 그 울음소리를 흉내 낸 것이리라. 아마 그분이었을 것이다.



" 아니, 아무것도 아니야."



나는 슬며시 웃으며 언니에게 말했다. 바람이 살랑살랑 베란다를 질러가고, 매미들은 지금도 요란스레 울고 있다.



-p.50 「물의 고리」 중에서



 



 



5. <남동생>



 



어렸을 때 기억 중에는 죽음과 관련된 기억도 있다. 한 소녀가 여름에 죽은 가족들의 죽음에 대해 이야기한다. 그녀는 궁금해한다. 왜 장례식은 여름에만 치르게 되는 것일까. 소녀의 엄마도 삼촌도 할머니도 모두 여름에 돌아가셨기 때문이다. 그리고 동네에 장례식이 있을 때도 늘 여름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소녀는 죽음이라는 것, 장례식은 슬프다는 생각을 하지 않는다. 



 



나는 장례식이 슬픈 것이라고 생각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p.68 「남동생」 중에서



 



어렸을 때 함께 놀았던 소녀의 남동생도 여름이 죽었다. 남동생은 그렇게 파란 하늘 속 연기가 되어 날아가버렸다. 그런 동생의 죽음에 대해 소녀는 울거나 슬퍼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도 여름에 죽을꺼라 생각한다.



 



눈을 감으니 한낮의 파란 하늘이 떠올랐다. 동생의 연기, 그런 연기라면 하느님 곁에 곧바로 올라갔을 것이다. 얼마나 요령이 좋은지 모르겠다. 이렇게 화창한 날에, 그렇게 기분 좋게 훨훨 날아 올라가다니. 나빴다. 머쓱해하며 웃는 동생의 얼굴이 보이는 듯했다. 



-p.79 「남동생」 중에서



 



 



6. <호랑나비>



 



누구나 어렸을 때 집을 떠나 어디 먼 데로 도망가고 싶은 충동을 느낀 적이 있을 것이다. 만약 낯선 여자가 나랑 함께 떠날래 라고 묻는다면 어떨까. 두렵기도 하면서도 설레이기도 할 것이다. 그런 심리와 감정의 변화를 <호랑나비>에서 잘 다루었다. 신칸센 안에서 만난 낯선 여자, 그녀는 소녀에게 호랑나비 스티커를 볼에 붙여주면서 함께 떠나자고 한다.



 



"도망칠 건데."



차분한 목소리로 여자가 말했다.



"같이 갈래?"



여자는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 



-p.91 「호랑나비」 중에서



 



 



여기에서 소녀의 고민은 시작된다. 과연 그 여자를 따라서 도망갈 것인가 말 것인가. 그렇게 고민하던 중 도망치자는 결정을 내려 그녀를 따라 가려고 하지만, 결국 소녀는 가지 못한다.



 



"나는 한 걸음도 움직일 수 없었다.



나는 가슴이 짓이겨지는 듯했다. 절망과 한심함에, 이유를 알 수 없는 상실감과 슬픔에.



문이 닫혔다. 신칸센은 소리 없이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고, 나는 그 자리에 남겨졌다.



멍하니, 볼에 조그만 나비를 붙인 채로.



-p.96-97 「호랑나비」 중에서



 



 



11. <그림자>



 



초등학교 때 친구였던 친구 M, 초등학교 졸업 후 가끔 만나는 사이인데도 어느 날 M에게 불쑥 전화가 걸려온다. 



"잘 지내니?"



그렇게 뜬금없이 전화해서 안부를 묻는 친구이다. 전화는 몇 번 연속으로 걸려 올 때도 있고, 몇 년이나 뚝 끊길 때도 있다.



 



"우리 오랜만에 만날까?"



그래서 만나기도 하고,



 



"그럼, 다음에 또 통화하자."



그러고는 끊기도 한다. 



 



그렇게 친구 M은 아홉 살 때 처음 만난 후로 그동안 그림자같이 묵묵히 곁에 있어주었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나도 '잘 지냈냐'라며 안부를 나눌 수 있고, 다음에 또 보자 라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할 수 있는 친구가 그리운 요즘이다.



 



"다음에 또 보자. 내가 전화할게."



일어선 M은 나를 보며 미소를 머금었다.



"그래 또 보자. 들어줘서 고마워."



우리는 카페를 나와 전혀 모르는 사람 같은 얼굴을 하고 각자의 장소로 돌아갔다.



-p.181 「그림자」 중에서



 



 



 



3. 나가며



 



 



에쿠니의 작품은, 언제나 에쿠니의 비밀로 가득하다. 하나부터 열까지.

‘에쿠니의 비밀’을 읽고 난 후에 독자들은 ‘나의 이야기’를 하고 싶어질 것 같다. 자신의 이야기를 털어놓고 그녀와 비밀을 친밀하게 주고받고 싶다. 에쿠니 가오리의 비밀은 어쩌면 그토록 긴밀하고 예쁘고 애처로울 수 있을까.



-가와카미 히로미-



 



 



누구에게도 말하지 못한, 어린 시절의 추억, 누구나 마음 속에 하나쯤은 간직하고 있을 기억들의 단편들을 꺼내서 추억에 잠길 수 있을 시간이었다. <그림자>를 읽으며, 서로 바쁜 일상에 쫓겨 연락이 끊겨진 친구를 생각했다. <호랑나비>를 읽으며 사춘기적 감상에 젖어서 가출을 꿈꾸던 십대의 나를 만날 수도 있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 모든 기억들이 나만의 비밀스러운 이야기들이었다. 정말 에쿠니 가오리의 비밀을 읽고 난 후 나도 '나의 비밀 이야기'를 하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이 책을 읽으며 나의 비밀, 순진하고 어렸던 나의 어린 시절,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그 비밀을 조심스럽게 꺼내 본다. 





 





 



기억은 회상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현재의 수수께끼를 푸는 열쇠라 할 수 있다.



-역자 김난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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