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쉼책이야기

쉼
- 작성일
- 2023.9.25
[예스리커버] 너무나 많은 여름이
- 글쓴이
- 김연수 저
레제
그의 소설은 '여름'이 생각 날 때가 많다.
뜨겁고 치열하고 열정적이고 어떤 날은 비가 오는 소리가 청명하게 들리기도 했다가 못견디게 습하기도 한 날이 떠오른다.
노년의 이야기도 죽음의 이야기도 여름 같은 청춘의 이야기와 맞닿아있다.
그래서 좀 더 아련해지는 느낌이다.
짧은 초단편 소설이 20개 실려있다.
2021년 10월 코로나가 기승을 부릴 때 제주도 대정읍 작은 서점인 어나더페이지에서 낭독회가 있었다고 한다. 제주문화재단의 초청으로 가파도의 레지던시에 머물고 있을 때 낭독회는 작가들이 의무적으로 이행해야 하는 일들 중에 하나라고 했다.
그렇게 시작한 낭독회에서 들려주기 위한 소설들이 하나둘씩 태어나게 되었다고 한다.
1~2시간정도 분량의 그런 소설들...
함축적이면서 농축되 있는 이야기들을 읽는 게 아니라 작가의 입을 통해서 직접 듣는 건 어떤 기분일까? 아쉽다 나도 가보고 싶다.
첫 번째 소설은 [두번째 밤]이다.
"전쟁을 막기 위해 전쟁을 벌이는 세상이라니, 우리는 어쩌다가 이런 세상에서 살게 됐을까요? 더구나 이게 처음이 아니라 두번째 밤이라면 말입니다. " p.12
"그렇다면 우리의 밤은 두번째 밤도, 세번째 밤도 아니고 수없이 많은 밤 다음의 밤이라는 뜻이군요. 이렇게 어리석음을 반복하는 인류라면 이 밤을 마지막 밤으로 만드는 게 가장 현명하겠군요."p13
"두번째 밤이 자나간 뒤, 포탄이 떨어질 때마다 우리는 생각한다. 모든 것이 산산조각날때 세상에는 지혜가 가장 흔해진다고, 그때야말로 우리가 지혜를 모을 때라고 평범하고 흔한 그 지혜로 우리는 세상을 다시 만들 것이라고"p.14
삶을 대하는 태도와 모든 관계를 표현하는 그 한 구절 한 구절들이 마음 속에 박힌다.
전쟁의 공포와 상흔에 대처하는 지혜가 공감된다.
재건축이 되는 아파트에서 다 뽑혀져 나가버리는 나무를 기리는 모임, 그곳에서 나무의 이름을 지어주고 함께 불러주는 그 행사가 추억과 함께 묻혀버리는 것 같았는데 다시 캡슐화 느껴주는 기쁨에 벅차올랐다. [나 혼자만 웃는 사람일 수는 없어서]
"자유롭게 이용하지 못하는 순간을 불평하면서 보내지 말고, 혹시 그런 마음이 든다면, 사랑이든 일이든 꿈을 가져보기를, 꿈이 없는 사람의 자유이용구너은 25개 보어덤과 23개 의 디스어포인트먼트와 16개의 다크니스를 맛보는 티켓에 불과할 테니까. 이 삶은 오직 꿈의 눈으로 바라볼 때, 다른 불순물 없이 오롯하게 우리의 삶이 된다. p.45
수국이라는 꽃말에는 '진짜 마음'과 '변하는 마음'이라는 상반되는 뜻이 있다고 한다.
"그러자 장피에르는 아니다, 변하는 마음이 진짜 마음이다'라고 대답했고, 수국이 피어난, 거기 일본식 정원에서는 그 말이 선사에게서 받은 화두처럼 들렸다. "p.77
"거의 확실하다고 해서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야. 개인의 기억은 통조림에 붙은 라벨 같은 것이니까."p78
통조림?
우리는 밀봉된 채 선반 위에 올려놓은 통조림 같아서, 라벨만 보며 이야기 하고 통조림 안에 뭐가 들었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너무 많은 이야기들이 풍성했고 가슴 벅찼고 가볍지 않았다.
그래서 너무 짧은 이야기들을 요약하는 것도 그렇고 필사하고 싶은 문장들만 적어보려고 한다.
"물론 여기에 슬픔은 없습니다. 하지만 생각이 시작되면 달라집니다. 생각이란 어떤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니까요."
"한번 깨어나게 되면 제 쪽으로는 늘 바람이 불어옵니다. 그렇게 마른 상태에 대해 알게 되죠. 그러면 이전까지의 삶이 젖은 상태였다는 것을 저절로 깨닫게 되고요."
"그러니 글쓰기는 인식이며, 인식은 창조의 본질인 셈입니다. 그리고 창조는 오직 이유 없는 다정함에서만 나옵니다."
"누구도 스스로 존재할 수는 없다. 누군가를 존재하게 하기 위해서 우리는 가까이, 더 가까이 다가가야 했다. p143
"한 번의 인생이란 살아보지 못한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생각이 드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죽은 뒤에야 우리는 우리의 삶이 얼마나 아름다웠는지 알 수 잇을 테니 말이다. 그러므로 잘 살고 싶다면 이미 살아본 인생인 양 살아가면 된다. "
"누가, 어떻게 바라보느냐에 따라 어떤 별은 존재할 수도, 존재하지 않을 수도 있는 거예요"
"그러니 포기 하지 않고 계속 바라보는 것, 그것이 관찰자로서의 책임감이 아닐까요"
"밤하늘을 관찰하는 태도를 학생들이 잊지 않도록, 어쩌면 책임감을 가지고 이 세상을 바라본다는게 어떤 것인지 알려주기 위해 그 선생님은 그런 사진을 우리에게 찍어주신 게 아니었을까요?"p239
"그래서 불운은 점, 불행은 선이라고 이소노는 말한다. 불운은 우연히 찾아오는 것이라 인생의 어느 지점에 위치시키느냐에 따라 불행으로도, 재밌는 에피소드로도 대수롭지 않은 일로도 여길 수 있다는 것이다. p261
정말 포스트잇을 많이 부착하면서 본 간만에 맘에 쏙 드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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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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