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쉼책이야기

쉼
- 작성일
- 2023.11.23
단 한 사람
- 글쓴이
- 최진영 저
한겨레출판
[구의 증명]의 명성은 잘 듣고 있었는데 읽지 못했었다.
신작이 나왔다고 해서 먼저 읽게 됐는데 너무 괜찮아서 적잖히 충격을 받았다.
범상치 않은 필력이었다.
필력뿐 아니라 주제가 쉽게 말해 죽음이라는 흔하디 흔한 아이템이라 해도 단순성을 무너뜨리는 묘한 상상력과 구성력이 있어서 전혀 생각지 못했던 세계를 경험하고 온 기분이었다.
"작은 섬에는 작은 열매를 좋아하는 작은 새가 많았다."
소설을 여는 첫 문장이다.
뭔가 라임이 살아있다고 해야 하나 , 첫 문장이 시사하는 봐가 크다고 생각하는데 작가가 어느 소박한 전래동화를 들려주 듯 구연하는 느낌이 들어서 친근했다. 그렇게 작은 새가 먹었던 씨앗이 땅에 뿌리를 박고 300년에 300년을 더 살아서 대장나무가 되고 옆의 동료 나무와 뿌리를 얽히고 섥히면서 하나가 되어간다. 그랬던 나무가 사람들의 손에 의해 처참히 무너지고 쓰러진다.
그렇게 이 소설은 시작된다.
장미수는 신복일과 결속하여 다섯 사람을 낳았다.
그들의 이름은 일화, 월화 금화, 목화와 목수.
누구의 말일까?
'결속'이라는 말은 누구의 말일까?
일화, 월화는 두 살 터울로 자주 싸웠고 중간에 낀 금화 목화와 목수는 쌍둥이 남매였다.
평범한 가족 소개가 이어지던 중 사건이 발생한다.
금화, 목화, 목수가 산에서 놀다가 갑자기 사라지고 목화는 나무에 깔리고 목수는 어른들을 부르러 마을로 내려갔다. 이때 이들은 금화가 나무안으로 끌려들어가는 것을 봤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한다.
금화의 실종은 이 가족을 오랜 시간 비탄에 빠뜨리고 죄의식으로 똘똘 뭉치게 했다.
이후 목화는 이상한 자각몽을 꾸기 시작한다.
꿈에서는 하나 둘씩 죽음을 맞이하게 되고 클로즈업 되듯 누군가 단 한 사람이 줌인되고 다가가 그 사람의 목숨을 구하게 된다.
목화는 그 때 들리던 목소리를 나무가 하는 말이라고 생각하게 되고 그런 일상이 반복되기 시작한다.
알고 보니 장미수도 장미수의 엄마인 임천자에게도 일어난 일이었다.
어떤 이유에서 누가 시킨일인지는 알 수 없고 멈출 수도 없다.
수 많은 죽음 앞에 무력해지고 절망하고 '단 한 사람'만 구할 수 밖에 없는 상황에서 이 세 사람은 다른 식으로 반응했다. 모든 전개가 완벽했고 모든 반응들이 꼽씹어 볼만 했다.
"바람이 나무를 거칠게 훑고 가는 소리는 비밀의 빗장을 여는 소리처럼 들렸다. "
한 문장 한 문장이 멋지기도 했다.
"그러나 꿈이 아니었다.
어떤 틈과 같은 것. 꿈과 현실의 균열. 어긋나는 지점. 또는 미세하게 맞닿은 선. 증명할 수 없으나 존재하는 세계. 가능성으로 남아 인식 너머에 존재하는 사건.
단 한 사람을 살리는 세계는 그런 세계였다.
지구 인구 80억분의 1
그런데 만약 그 1이 우리 가족이라면?
단 한 사람은 너무나 소중해 지니까
"사람의 탄생이란, 어쩌면, 뿌리째 뽑히는 것. 사랑의 시작 또한, 어쩌면, 뿌리째 뽑히는 것"
"어떤 사랑은 끝난 뒤에야 사랑이 아니었음을 안다.
어떤 사랑은 끝이 없어서 사랑이란 것을 알아차리지 못한다.
어떤 사랑은 너무 멀리 있어 끝이 없다.
어떤 사랑은 너무 가까이 있어 시작이 없다."
"삶은 죽음과 탄생을 모두 담는 그릇이다. 죽음 없는 삶은 불완전하다."
색다르게 풀어간 삶과 죽음의 담론같은 소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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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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