싱긋
  1. 신날來

이미지

도서명 표기
구체적 사랑
글쓴이
이서희 저
한겨레출판
평균
별점9.8 (11)
싱긋

 이서희의 <구체적 사랑>은 나를 앉은 자리에 포박시켜 꼼짝 못하게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사랑과 우정을 노래하는데도 질리거나 동어반복적으로 들리는 구간이 없었다. 지금 내게 너무나 필요한 말과 누구에게도 꺼내 보이지 못한 내밀한 고민을 다루며 그 지분거림을 잘 안다는 듯이 가만히 들어주었다.

 

  올해 다른 문제도 많았지만, 다시 나는 육년 전 견디기 힘들었던 시간으로 되돌아가 있었다. 그때는 말로 흘러버리지 못한 고통이 몸에 남아 몸을 아프게 했었다. 끝나지 않을 악몽 같고 죽고 싶다는 충동까지 드는 시간을 간신히 건넜었다. 이번에는 미련 맞음과 궁상을 되풀이하고 싶지 않아 집을 나가겠노라고 선언해버렸다. 그러나 실제로 떠나기 어려웠다. 내게 동거인은 얼마 전까지 내 아버지이자 남편이자 아들이었기 때문이다. 과장되고 극적인 표현을 삼가는 편이지만 이렇게밖에 쓸 수 없다.

 

  연년생 삼남매의 맏이로 자라며 그 사람을 바이블보다 더 믿고 따랐다. 그는 가족의 무너짐이나 몸의 이상에도 절망하지 않고 현실에 맞서 분연히 일어서는 모습으로 말하는 자였다. 감정적인 동요나 어떤 폭력 없이 한 가정을 지켜냈다.

 

  존경하면서도 그 사람을 보며 일찌감치 가부장적 집으로 들어가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학업과 일에 매진했다. 운 좋게도 내겐 충실한 아내와 엄마의 길을 가는 동갑내기 여동생이 있어, 다른 맛을 즐기며 살 수 있었다. 동생의 이른 결혼과 여자로서의 익숙한 트랙 밟기가 뜻밖에 나를 자유롭게 해주었지만, 그런 나도 집에 들어가지 못한 채 발길이 경찰서에 멈추는 순간들이 있었다.

 

  단지 내가 누군가의 딸이라는 이유로 끌어안아야 하는 참을 수 없는 존재들이 거듭 출현했다. 결혼만 하지 않으면 불행해지는 일이 없을 거라고 순진하게 봤던 것이다. 아는 지인이 나이 찬 딸이 같이 살겠다고 하면 반대하고 싶지 않다고 했을 때 진심으로 말리고 싶었다. 결혼은 안 하더라도 서로를 위해 집에서 내보내 독립시켜야 한다고 참견하고 싶었다. 입을 닫은 이유는 그들이 나와 똑같으리라는 전제도 폭력적인 단정임을 알기에 그럴 수 없었다.

 

  정상적인 궤도에서 이탈한 듯 나사 몇 개 빠져 지내는 나의 불완전하고 불안한 마음이, 더 솔직히 말해 미성숙하고 옹졸한 상태가 불편해 분노와 소진 상태에 쉽게 이르곤 한다. 내가 뭐라고 누군가를 나쁜 사람으로 매도하고 삶의 영역에서 지우려하는지 섬뜩해질 때도 있다. 왜 나는 내 문제가 아닌 가족의 일로 원치 않는 트램벌린에 자꾸 올라야 하는지 억울했다.

 

  그런데 나만 그런 게 아니었다. 대부분의 딸들이 성에 차지 않는 집에서 그래도 나름 착실하게 살려고 오리 발짓을 해대다 제풀에 꺾이곤 한다. 다른 출구라고 여겨 빠져나온 곳이 또 다른 막다른 골목일 경우도 많다. 운명 같은 사랑을 만나 가정을 일궈도 신혼의 기싸움 아니면 십년 차 권태나 황혼 이혼에 걸려들 이별수가 곳곳에 포진해있다.

 

  저자는 말한다. 홀로 설 수 있는 독립된 둘이 만나 하나를 이룰 때 같이 성장하며 안정적이고 충만한 가정을 만들 수 있다고. 그냥 주어지는 행복한 가족은 없다. 화염성 사랑보다 서로를 향한 지속적인 관심과 관계 개선의 노력만이 부부관계를 우정 이상으로 끌어올릴 수 있다고. 자녀도 부모의 부속물이 아니라 잠시 나를 거쳐 가는 생명체임을 강조한다. 알면서도 끊어내지 못하는 감정의 소용돌이와 소유욕과 집착을 어떻게 단속해야 하는지 경험을 토대로 알려준다.

 

  책은 엄마에게서 딸로, 다시 인생 선후배로, 남편과 시댁으로, 그리고 나로 바통을 넘기며 어떤 마음가짐과 자세로 자기다움과 자유를 추구하고 긍정해야 하는지 면밀히 귀띔해준다. 무수한 가 있듯이 주위에 숱한 우정을 심고 가꾸는 각별한 마음에 강조점을 둔다. 모든 허울을 털어내고 알몸의 언어로 농밀히 적어 내려간 구체적 사랑()에 빠져 혼곤히 젖어들었다. 딸들이 독립한 뒤 그녀가 야생적으로, 또 우아하게 보여줄 몸의 이동과 자유 비행이 기다려진다.

 

  남녀의 사랑이 아니어도 나를 지켜주고 보호할 의지처는 이미 주변에 널려있고 그것을 정성껏 기어 입는 건 순전히 각자의 몫이다. 2, 3의 갱신 가능성과 여자 나이 오십에서의 혁명과 변신을 기대하며 우정의 정원을 지금부터라도 부지런히 가꾸어야겠다. 언감생심 날아드는 외로움과 아무것도 없음에 주눅 들지 말고, 내게 있는 것을 즐기고 경탄하며 마저 살아보자고 다짐한다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3.04.26

댓글 0

빈 데이터 이미지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

싱긋님의 최신글

  1. 작성일
    22시간 전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2시간 전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2. 작성일
    2025.5.7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5.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3. 작성일
    2025.5.5

    좋아요
    댓글
    0
    작성일
    2025.5.5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사락 인기글

  1.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7
    좋아요
    댓글
    104
    작성일
    2025.5.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2.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8
    좋아요
    댓글
    63
    작성일
    2025.5.8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3. 별명
    리뷰어클럽공식계정
    작성일
    2025.5.7
    좋아요
    댓글
    121
    작성일
    2025.5.7
    첨부된 사진
    첨부된 사진
    20
예스이십사 ㈜
사업자 정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