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날來

싱긋
- 작성일
- 2017.8.19
디어 라이프
- 글쓴이
- 앨리스 먼로 저
문학동네
2013-12-18
삶을 친애한다고
감히 말할 수 있는 자의 조건에 대하여
책을 읽을 때 보통 한 권에 집중해서 1-2일에 다 읽는 편이다. 이런 습관을 무너뜨린 게 <디어 라이프>다. 지난 주 월요일부터 읽었으니 꽤 걸렸다. 그 정도 걸리면 중도에 읽기를 포기하는데, 첫 번째 단편소설의 진입이 비포장도로를 운전하는 것처럼 어려웠을 뿐 흔쾌히 다 읽었다. 왜 이렇게 읽는 게 더디고, 단편마다 한 템포씩 쉬어야했나 생각해보니 등장인물수가 어마어마하다. 더욱이 그 단편들마다 한사람의 중요한 시절과 인생이 빼곡히 들어앉아 있으니 책장 넘기기가 쉽지 않다.
솔직히 뭔가 특별히 확 새로운 내용들은 아니었다. 더디게 읽었다기보다는 아껴 읽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듯하다. “친애하는 인생에게” 라니. 제목 자체에서 아무나 가질 수 없는 아우라와 절대적인 숭고미가 강렬하게 풍긴다. 숭고미란 한 세기에 가까운 시간을 살아낸 여성작가의 진솔한 음성에서 묻어나는 묵직함이 아닐까 싶다. 시대적인 한계를 넘어 한 길을 걸어온 작가가 인생 말미에 들려주는 이야기는 무엇일지 무척이나 궁금했다.
열편의 단편들을 읽으면서 느낀 것이 인생에 있을 수 없는 일은 없다는 담백한 사실이었다. 잠시잠깐의 만남과 관계, 머물거나 떠나기. 책장을 넘길수록 가벼운 쓸쓸함이 더해갔다. 쓸쓸한데 자유롭다. 앨리스 먼로라는 작가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쓸쓸한 자유’, 바람결 같은 이야기가 내 마음에 내려앉았다 이내 민들레 홀씨처럼 훅 날아가 버렸다. 덩그러니 남겨진 민들레 홀대의 가녀림, 혹은 홀가분함이 느껴졌다.
<디어 라이프>를 읽으면서 잊고 있던 처음 영미권 대중 여성작가를 접했을 때의 매혹이 떠올랐다. 내가 영미권 문학에 사로잡혀 이십년 가까이 한 길을 묵묵히 걸을 수 있었던 시작점은 다니엘 스틸이라는 작가의 소설과의 만남이었다. 내 생애 처음으로 팬카페에 공식 등록했던 순간이기도 했다. 20세기 후반 한국에서 접할 수 없던 자유와 신세계를 맛보았다고 하면 충분할까. 숨이 시원하게 쉬어지는 기분에 자꾸 빨려들고 말았다.
지금은 페미니즘이라는 용어 자체가 식상하고 역차별적으로 들리는 시대가 되었지만, 스무 살 당시 한국의 가정과 학교에서 느꼈던 갈증과 답답함을 풀어주는 신선함이 있었다. 막연하게나마 내 안에 형식과 제도에 대한 반감이 깊이 자리하고 있었던 것 같다. 착한 장녀여야 했던 나는 내 안에 상어의 이빨을 숨긴 채 정형화된 삶을 따르기보다는 창조적인 일을 하며 살겠다고 마음먹었던 것 같다.
외국소설과의 만남을 통해 내밀히 다져진 나의 사고방식은 자기결정과 책임, 그리고 나를 특정인에게 전부 내어주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나를 잃는 것이 무척이나 두려웠고, 그냥 순수 나로만 살고 싶었다. 내 계획을 그 누구와 의논하거나 발설하지 않은 채, 아니 어쩌면 그런 생각을 하고 있는 자신조차 모른 척하며 지내왔다. ‘아, 내가 그랬구나. 그래서 지금 여기에 이렇게 살고 있는 거구나’라며 삶을 총체적으로 살피는 계기를 <디어 라이프>가 제공했다.
소설 말미에 덧붙인 피날레 네 편의 이야기들이 오늘의 앨리스 먼로를 있게 한 결정적인 요소가 되었듯이, 나의 오늘을 이루는 구성성분들을 면밀히 들여다볼 수 있었다. 문득 삶과 소설이 필연적으로 페미니스트일 수밖에 없었던 그녀의 정황과 노력에 감사한 마음이 든다. 그렇게 치열하게 삶을 살아낸 사람 곁에 남는 것이 무엇인지를 <돌리>가 대신 말해주지 않나 싶다. 그리고 좀 더 젊은 시절의 여성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안식처>도 흥미롭게 읽었다.
아직 미혼이고 한 길만 좁게 살아온 터라 그녀의 이야기를 통해 공감하고 알아차릴 수 있는 부분이 제한적이라고 본다. 오히려 가정을 일군 유부녀들이 이 책을 통해 시대를 회상하고 현재의 의미를 발굴하고 미래를 조망할 수 있지 않나 싶다. 남은 12월은 원서 <Dear Life>와 가깝게 지낼 생각이다. 전쟁과 죽음, 이별과 떠남, 재회와 새출발을 겪어내고 기록한 그녀의 한결같은 열정을 높이 사고 싶다. 훅 사라져버려 그냥 잊힐 역사를, 시절을 이렇게 손끝으로, 코끝으로 느낄 수 있게 해주었으니 말이다. 페미니즘 교습이 아닌 여러 여성들의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여성사의 흐름과 맥을 짚어주고,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자유의 소중함을 일깨워주니 참 고맙다.
왠지 작가는 서로 상반된 부모님 사이에서 아버지의 수용성과 너그러움을 좀 더 따랐을 것 같다. 또, 고압적이고 지나치게 문법을 따지는 어머니에 대한 반항심과 불편함으로 반대적인 삶을 추구했을 것 같기도 하다. 그녀는 현실을 따돌릴 수 있는 픽션 안에서 자유와 무한한 이탈을 탐했던 게 아닐까 싶다. 갈망과 그만큼의 불안. 그러다 세월 속에, 떠남도 돌아오기 위함이라는 것을 자연히 깨달은 것 같다. 결국 삶은 직선이 아닌 어느 순간 원이라는 것을 조근이 일러주는 책이다. “친애하는 인생들아, 글쎄 다 괜찮아.”라고 부드럽게 독자를 토닥여주는 것 같기도 하다. 작가는 이 소설집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했지만, 소설들이 그랬듯 '끝나지 않는 이야기'가 될 듯하다. The sense of ending! <디어 라이프>를 통해 산다는 것(living)과 떠나는 것(leaving), 즉 생사(生死)는, 결국 한통속이라는 생각에 이르렀다. 죽음만큼 갑작스런 떠남이 또 있을까 싶지만은.
한순간 (이향)
잠시 눈감았다 뜨면 사라지는 순간이 있다 어제저녁 붉게 노을 졌던 태양의 한때처럼 오늘아침 초록으로 흔들리는 잎의 한때처럼 한순간이란 붙잡아두고 싶은 것이어서 새벽마다 물방울이 맺히는 것일까
물방울 같은 한순간 그 물방울만한 힘이 나뭇가지를 휘게 하는지 그때 붙잡고 싶었던 것은 네가 아닌 그 순간이었다
당신도 그렇게 왔다 가는 걸까 어느 순간 기척 없이 빠져나간 손바닥의 온기처럼, 깊이를 알 수 없는 늪의 그늘처럼,
이미 예정된 한순간 속의 우리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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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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