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은사람
  1.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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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서명 표기
고기로 태어나서
글쓴이
한승태 저
시대의창
평균
별점8.3 (64)
작은사람

『육식의 종말』이라는 책을 읽고 나서였습니다. 채식을 결심하고 실행했던 건. 가축이 먹어치우는 곡물량으로 인류의 빈곤을 종결시킬 수 있다는 이야기가 결정적이었어요. 질병에 노출된 소를 먹으면 광우병에 걸릴 수 있다는 말도 영향을 줬던 것 같고요. 게다가 소를 포함한 일부 가축(되새김질을 하는)이 트림하고 방귀 뀔 때 내뿜는 메탄가스가 지구온난화의 원인이라는 사실 아세요? 그게 무슨 소리냐며 웃으실지 모르는데 승용차 한 대가 배출하는 양보다 소 한 마리가 배출하는 가스가 더 많대요. 가축 방귀에 세금 부과하는 나라도 있다고 해요. 지구온난화를 막기 위해 육식 소비를 줄여야 한다고 주장하는 환경론자들도 있고요. 조금 다른 이야기지만 인도에서는 소를 함부로 잡아먹지 못한대요. 힌두교에서 소를 신성시하기 때문에 그렇다는데, 소 도살과 소고기 운송에 종신형을 내리는 법안을 마련 중인 지방 정부도 있다는 걸 보면, 가축의 운명도 어떤 문화권에 있느냐에 따라 천국과 지옥을 오가는 게 아닐까 싶어요. 인간이 고기를 먹기 시작한 건 언제부터였을까요? 생각해 보신 적 있으세요? 육식의 기원을 고민하다 보면 인간의 기원까지 고민하게 되는데, 작가님이 마지막 페이지에 인용하신 성경 구절이 많은 힌트를 주는 것 같아요.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을 축복하여 이렇게 말씀하셨다. “너희는 많은 자녀를 낳고 번성하여 땅을 가득 채워라. 땅을 정복하라. 바다의 고기와 공중의 모든 새와 땅의 모든 생물을 지배하여라.” (창세기 1장 28절)


대학에서 지구환경과 관련된 수업을 들었을 때도 교수님이 이 구절을 인용하셨던 게 떠오르네요. ‘정복’과 ‘지배’라는 단어 때문에 자연을 향한 인간의 착취가 시작됐다는 말씀이셨는데, 제가 꼼꼼하게 창세기를 살펴보니까 조금 오해가 있는 것 같더라고요. 바로 다음에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온 지면의 씨 맺는 모든 채소와 씨 가진 열매 맺는 모든 나무를 너희에게 주노니 너희의 먹을거리가 되리라’는 구절이 이어지거든요. 최초의 인간들은 육식을 하지 않았을 거라는 걸 유추할 수 있는 이야기죠. 


사실 고기를 먹지 말고 채식만 하자는 주장은 현실적으로 어려워 보여요. 타락한 결과인지, 타고난 본능인지 확실하게 알 수는 없지만 어쨌든 모든 사람이 고기를 먹지 않고 살 수는 없잖아요. 고기는 안 되고 식물은 왜 되냐고 문제 제기하는 분들도 있고요. 개고기를 반대하고, 동물권을 주장하는 분들도 고기를 먹지 말자고 주장 하는 건 아니더라고요. 그런데 이런 논쟁에서 한 발짝 떨어져 찬찬히 톺아보니 문제의 핵심에는 ‘고기’가 존재하는 게 아니라, ‘인간’이 자리 잡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됐어요. 이 세상 속에서 인간의 위치와 자격의 범위가 어디까지인가 하는 인간론 내지는 세계관의 갈등이라는 사실을요. 특별히 인간과 다른 생명체 간의 ‘관계’가 중요한 것 같더라고요. 


학교 앞에서 병아리 파시는 할머니에게 병아리를 사본 경험이 있으신지 모르겠어요. 저도 딱 한 번 병아리를 샀던 기억이 있는데, 할머니께 건네받은 병아리를 두 손으로 살포시 포개고 집으로 향하던 그 두근거림을 아직도 기억해요. 작고 귀여운 생명체 자체가 참 신비스러웠던 것 같기도 하고 그 존재 자체가 기쁨을 주었던 건 분명했어요. 병아리가 환경에 예민하고 약해서 금방 죽는다는 사실을 며칠 만에 실제로 경험한 후,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슬픔이 밀려왔어요. 故 신해철 씨의 <날아라 병아리>라는 노래를 들으며 참 많이 울었어요.


할머니가 파는 병아리가 모두 수평아리고 양계 농장에서 무료로 받아온 병아리들이라는 사실은 전혀 몰랐었어요. 양계 농장에서 알을 낳는 닭의 경우, 수평아리는 전혀 가치가 없다고 하더라고요. 할머니들이 가져간 상자에 담기지 못한 병아리들은 부화와 동시에 마대 자루에 담겨집니다. ‘청소부가 자루에 낙엽을 담듯’ 발로 꾹꾹 눌러가며 채워지죠. 양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잔인하다기보다는 상품 가치가 없기 때문에 산채로 쓰레기가 되는 거예요. ‘산채로’라는 말은 의미가 없을지도 몰라요. 생산성을 기준으로 생명이 아닌 물건으로 치부 당하는 현실이니까요. 이런 과정은 닭에게만 해당하는 게 아니에요. 돼지도 개도, 또 다른 가축도 마찬가지겠죠. 


동물에게 잔인한 과정을 겪게 해야만 인간이 손쉽게, 질 좋은 고기를 먹을 수 있다는 현실은 분명히 무언가 잘못됐다고 판단됩니다. 생명의 질서가 무너졌다는 사실을 인식하게 돼요. 그리고 그 현실 속에는 농장 주인에게 착취당하는 동시에 동물에게는 무서운 포식자로 자리한 또 다른 인간이 존재합니다. 이 어정쩡하고 아이러니한 인간의 존재를 바라보며, 인간의 구원이 없이는 동물의 구원도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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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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