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질문에 답하다

작은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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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17.5.12
한겨레 나경렬 객원기자의 글
“선거인은 투표소에서 투표용지를 받아 후보자 한 명의 이름을 스스로 써 투표함에 넣어야 한다.” 일본 공직선거법 제46조입니다. 일본의 기표 방식은 ‘기명식’입니다. 유권자가 지지하는 후보자의 이름을 직접 투표용지에 적어 자신의 의사를 전달하는 방식입니다. 후보자 이름이 적힌 투표용지에 도장만 찍으면 되는 한국과는 다르죠. 이름을 적는 방식으로 투표하면 많은 문제점이 있지 않을까요? 철자를 틀렸다면? 특정 후보자의 별명을 적는다면?
재밌는 일화가 있습니다. 2005년 일본 도쿠시마현 나루토시에서 치러진 시의원선거에선 후보자의 성은 맞게 썼으나 이름 대신 별명인 ‘수염’(히게)이라고 쓴 표가 있었다고 합니다. 일본은 이를 유효표로 인정했습니다. 어떤 방식이든 자신의 정치적 의사를 드러낸 유권자를 무시할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한국은 어떤 방식으로 유권자의 뜻을 모으고 있을까요? 한국 공직선거법 제159조에는 “선거인이 투표용지에 기표를 하는 때에는 ‘점 복(卜)’ 자가 각인된 기표 용구를 사용하여야 한다”고 규정합니다. 처음부터 ‘점 복’ 자 도장을 사용한 건 아닙니다. 도장의 문양은 어떻게 변해왔을까요?
한국에서 투표가 처음 시작된 1940년대 말부터 20년 동안 기표 도구로 사용된 것은 놀랍게도 탄피와 대나무였습니다. 선거용 도장으로 사용하려면 길고 둥근 모양의 물건이 필요했는데요. 당시 주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게 바로 이 두 개였다고 합니다. 전쟁의 아픔이 느껴지는 대목이죠. 하지만 문제가 있었습니다. 탄피와 대나무로 기표하면 원형 모양(○)이 찍히게 됩니다. 투표용지를 접으면 반대편에도 원형 모양이 묻게 됩니다. 유권자가 누구를 찍었는지 정확히 판별할 수 없는 상황이 벌어지는 겁니다. 1990년대부터 도장에 문양이 추가되기 시작한 배경입니다.
첫 번째 문양으로 결정된 건 ‘사람 인(人)’ 자였습니다. 1992년 14대 대통령선거에선 ‘○’ 안에 ‘사람 인’ 자의 표식이 들어간 도장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기표 도구의 모양이 바뀌게 됩니다. 기표 도구에 새겨진 ‘사람 인’ 자가 한글의 ‘ㅅ’으로 보여 특정인을 떠올리게 할 수 있다는 주장이 정치권 일각에서 제기됐기 때문입니다. 김영‘삼’ 전 대통령이 당시 대선에 출마했기 때문에 빚어진 에피소드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가 현재 사용하는 ‘점 복’ 자 도장의 탄생 배경입니다. 1994년부터 사용된 ‘점 복’ 자는 상하좌우 대칭 모양이 모두 다릅니다. 무효표를 효과적으로 줄일 수 있는 모양이죠. ‘점 복’ 자는 본래 ‘점을 치다’ ‘하늘의 뜻을 받아들인다’는 뜻이 있습니다. 정치인들에게 ‘하늘의 뜻’은 ‘국민의 뜻’일 겁니다. 대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점 복’ 자가 새겨진 도장으로 ‘국민의 뜻’을 보여주는 한 표, 어떠신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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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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