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라향기
  1. ○ 그니 리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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즐거운 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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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자 저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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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점9 (21)
소라향기





그참, 벌써 능청이라니, 하고 말하면,



그것도 능청스럽게 들린다.



그렇다면 더욱더 시적으로 능청을 떨든가 아니면...



- 시인의 말 中 - 



 



[ 주인 없는 잠이 오고 ]



 



주인 없는 잠이 오고



잠 없는 밤이 다시 헤매고,



애들아 이게 시詩냐 막걸리냐,



겨울에 마신 술이



봄에 취하고



흘러간다 흘러가서,





나를 붙잡지 마라,



나는 네 에미가 아니다,



네 새끼도 아니다.



 



 



오냐 나 혼자 간다 가마,



늙은 몸이 시詩투성이 피투성이로



환히 불 밝혀진 고층 건물



층층이 밝은 물이 찰랑거리고







아직은 아직은이라고 말하며



희망은 뱃가죽이 땅가죽이 되도록 기어나가고



어느 날 나는 나의 무덤에 닿을 것이다.



관館 속에서 행복한 구더기들을 키우며



 



비로소 말갛게 깨어나



홀로 노래 부르기 시작할 것이다.



 



 



[ 겨울에 바다에 갔었다 ]







겨울에 바다에 갔었다.



갈매기들이 끼룩거리며 흰 똥을 갈기고



죽어 삼 일간을 떠돌던 한 여자의 시체가



해양 경비대 경비정에 걸렸다.



여자의 자궁은 바다를 행해 열려 있었다.



(오염된 바다)



열려진 자궁으로부터 병악하고 창백한 아이들이



바다의 햇빛이 눈이 부셔 비틀거리며 쏟아져 나왔다.



그들은 파도의 포말을 타고



오대주 육대양으로 흩어져 갔다.







죽은 여자는 흐물흐물한 빈 껍데기로 남아



비닐처럼 떠돌고 있었다.



세계각처로 뿔뿔이 흩어져 간 아이들은



남아연방의 피터마리츠버그나 오덴달스루스트에서



질긴 거미집을 치고, 비율빈의 정글에서



땅 속에다 알을 까놓고 독일의 베를린이나



파리의 오르샹가나 오스망가에서



야밤을 틈타 매독을 퍼뜨리고 사생아를 낳으면서,



간혹 너무도 길고 지루한 밤에는 혁명을 일으킬 것이다



언제나 불발의 혁명을.



겨울에 바다에 갔었다.



(오염된 바다)



 



 



[ 봄 ]





 



동의하지 않아도



봄은 온다.



삼십삼 세 미혼 고독녀의 봄



실업자의 봄



납세 의무자의 봄.



 



봄에는 산천초목이 되살아나고



쓰레기들도 싱싱하게 자라나고



삼킬 수도 뱉을 수도 없이



 입안에서 오물이 자꾸 커간다.



밑을 수 없이, 기척처럼, 벌써



터널만큼 늘어난 내 목구멍 속으로



쉴 새 없이 덤프 트럭이 들어와



플라스틱과 고철과 때와 땀 똥을



쿵 하고 부려놓고 가고





내 주여 네 때가 가까왔나이다



이 말도 나는 발음하지 못하고



다만 오물로 가득 찬 내 아가리만



찢어질 듯 터져 내릴 듯



허공에 동동 떠 있다.



 



 



[ 시작 ]





한 아이의 미소가 잠시



풀꽃처럼 흔들리다 머무는 곳.



꿈으로 그늘 진 그러나 환한 두 뺨.



 



사랑해 사랑해 나는 네 입술을 빨고



내 등 뒤로, 일시에, 휘황하게



칸나들이 피어나는 소리.



멀리서 파도치는 또 한 대양과



또 한 대륙이 태어나는 소리.





 



오늘 밤 깊고 그윽한 한밤중에



꽃씨들이 너울너울 허공을 타고 내려와



온 땅에 가득 뿌려지리라.



소리 이전, 빛깔 이전, 형태 이전의



어둠의 씨앗 같은 미립자들이



어둠의 씨앗 같은 미립자들이



내일 아침 온 대지에 맨 먼저



새순 같은 아이들의 손가락을 싹 틔우리라.



 



그리하여 이제 소리의 가장 먼 끝에서



강물은 시작되고



지금 흔들리는 이파리는 



영원히 흔들린다.



 



 



[ 하산下山 ]





참으로 이젠 이해할 수 없는



한 세월 위에 또 한 세월을 눕히고



나는 이제  가야 합니다.



보이지도 들리지도 않는,



근원적으로 피비린내 나는



이 세상의 고요 속으로



나는 처음으로 내려서겠습니다.



어떻게 왜 그래도



이 세월은 흘러가겠지만



어느 이름 없는 묘지에 다시 한번



할미꽃들 어우러져 피어났다 스러지겠지만



 



죽어도 눈감을 수 없을 때엔



죽어도 눈감지 않는 게 좋습니다.







그렇습니다. 나보다 더 무거운



더 괴로운 이파리 위에서라도



어디서나 흔들리는 피곤한 잎사귀 위에서라도



나는 하룻밤 단잠을 자고



확실하게 떠나겠습니다.



한 경전經典이 무너지면



또 한 경전經典을 세우며.......



 



어머니 이것은 누구의 눈알입니까?



어머니 이것은 누구의 심장입니까?



 



 



[ 즐거운 일기日記 ]





오늘 나는 기쁘다. 어머니는 건강하심이 증명되었고 밀린 번역료를 받았고 낮의 어느 모임에서 수수한 남자를 소개받았으므로.





오늘도 여의도 강변에선 날개들이 풍선 돋친 듯 팔렸고 도곡동 개나리 아파트의 밤하늘에선 달님이 별님들을 둘러 앉히고 맥주 한 잔씩 돌리며 봉봉 크랙카를 깨물고 잠든 기린이의 망막에선 노란 튤립 꽃들이 까르르거리고 기린이 엄마의 꿈속에선 포니 자가용이 휘발유도 없이  잘 나가고 피곤한 기린이 아빠의 겨드랑이에선 지금 남몰래 일 센티미터의 날개가 돋고.....



 



수영이 삼촌 별아저씨 오늘도 캄사캄사합니다. 아저씨들이 우리 조카들을 많이많이 사랑해주신 덕분에 오늘도 우리는 코리아의 유구한 푸른 하늘 아래 꿈 꾸고 한판 잘 놀았습니다.



             아싸라비아



             도로아미타불



 



 



...  소/라/향/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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