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그니 리뷰

소라향기
- 작성일
- 2022.7.24
나는 이름이 있었다
- 글쓴이
- 오은 저
아침달
사람으로 태어나
사람을 이해하고 사람을 오해했습니다
사람이라 이해하고 사람이라 오해했습니다
사람을, 마침내 사람됨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 시인의 말 中
[ 손을 놓치다 ]
분침이 따라잡지 못한 시침
마음과 따로 노는 몸
체형을 기억하는 데 실패한 티셔츠
매듭이 버린 신발 끈
단어가 놓친 시
추신이 잊은 안부
그림자가 두고 온 사람
아무도 더듬치 않는 자취
한 명의 우리
[ 서른 ]
뜬구름을 잡다가
어느 날 소낙비를 맞았다
생각 없이 걷다가 길을 잃기도 했다
생각이 없을 때에도 길은 늘 있었다
그래도 지구는 돈다
그런데 머리는 왜 안 돌아갈까?
너무 슬픈데 눈물이 한 방울도 나지 않았다
다음 날, 몸 전체가 통째로 쏟아졌다
어른은 다 자란 사람이란 뜻이다
한참 더 자라야 할 것이다
나이를 먹어도 먹어도
소화가 안되는 병에 걸렸다
[ 한발 ]
이 사람아, 지금 오면 어떡해!
이 사람아, 벌써 가면 어떡해!
시침과 분침과 초침이
정확히 두번 만나는 동안
늦거나 일렀다
아무리 간발에 다가가도
감정을 에누리할 수는 없었다
[ 사람 ]
이 사람아 이게 대체 얼마 만이야!
우리는 길에서 만났다
처음으로 교복을 벗고 만났다
서로의 이름을 잊은 채
어딘가 낯이 익고
익숙한 냄새가 나고
사람임은 분명해서
너는 쫙 편 손바닥을 내밀었다
손바닥에는 이름 대신
손금이 구불구불했다
어떤 길을 따라가도 순탄 할 것 같았다
눈이 있는 사람
사람 보는 눈이 있던 사람
재물선이 선명해서
나는 네가 큰사람이 될 줄 알았지
너는 손으로 입을 가리며 웃었다
손금이 목구멍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것 같았다
사람을 좋아하던 사람
사람 좋은 사람
잘못을 해도 쉽게 인정해서
나는 네가 새사람이 될 줄 알았지
손금 하나를 무작정 따라가다
갈림길에 섰다
등을 댈 것이냐 돌릴 것이냐
내가 뱉었던
네가 들었던
모진 말이
등줄기로 흘렀다
어딘가 귀에 익고
친근한 말맛이 나고
억양마저 확실해서
나는 쫙 편 손바닥으로 얼굴을 덮었다
양 볼이 뜨거워서
손금이 녹아내리는 것 같았다
손바닥을 맞추곤 하던 사람이
가차 없이 손바닥을 뒤집어버리듯
등을 돌리고 비틀거리며 걷기 시작했다
이 사람아 벌써 가면 어떡해!
사람이 사람을 불렀다
방금 전까지는
사람이었던 사람을
이 사람을
... 소/라/향/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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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