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기본 카테고리

오후기록
- 작성일
- 2022.9.18
시민의 교양
- 글쓴이
- 채사장 저
웨일북
《시민의 교양》의 저자 채사장은 2015년 아이튠즈 팟캐스트 1위로 뽑힌 <지대넓얕>의 진행자이다. 이 책은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현실 편), 《지적 대화를 위한 넓고 얕은 지식》(현실 너머 편), 그리고 인문 에세이 《열한 계단: 나를 흔들어 깨운 불편한 지식들》에 이어 출간되었다.
채사장을 유명하게 만든 <지대넓얕>시리즈와 마찬가지로 이 책도 이원론에 입각하여 세상의 여러 요소를 이분법으로 나누어 구조화시켜 설명한다. <지대넓얕>시리즈를 먼저 읽었기 때문에 이해하는 게 더 편하긴 했지만 요점정리를 잘해서 전달하는 걸로 유명한 저자답게 개념 설명이 잘되어있어 전작을 읽지 않은 독자도 이해하는 데 무리가 없어 보인다.
저자는 ‘시민’이란 사회 전체의 구성원인 동시에 독립적이고 자유로운 개별자라고 규정하고, ‘교양’이란 세상의 구조에 대해서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정의한다. 그래서 책의 제목이 《시민의 교양》이라고 한다. 그는 인문학의 추상적 개념이 현실 세계에 어떻게 적용되는지 도식화시켜 보여주며 시민이 세상을 쉽게 이해하도록 구조화시키는 것이 이 책의 목적이라고 말한다.
이 책은 세금, 국가, 자유, 직업, 교육, 정의, 미래를 주제로 7개의 챕터로 나뉜다.
각 분야의 궁극적 토대는 경제체제에 있으며 경제적 기반에 의해 둘로 나뉘는데 정부의 개입정도에 따라 형태가 달라진다고 말한다.
이런 논리로 세금에 관한 파트에서는 세금을 자본가에게 유리한 간접세와 노동자에게 유리한 직접세로 분리하여 설명한다. 정부의 개입이 커지면 직접세가 늘어 자본가에게 불리하지만 서민에게는 복지혜택이 늘고, 정부가 적게 개입하면 다수의 노동자에게 불리한 간접세의 비중이 커진다고 말한다.
국가도 같은 시각으로 보아 작은 정부를 추구하면 자본가에게 유리한 야경국가, 큰 정부는 노동자와 서민에게 혜택이 많은 복지국가가 된다고 한다. 복잡한 상황을 지나치게 도식화시킨다는 느낌도 있지만 전체적인 맥락을 파악하는 데는 도움이 되었다.
특히 한국 교육의 문제를 교육의 내용 보다 형식에 주목하여 파악하는 교육 파트가 기억에 남는다. 저자는 학교에서 배우는 교과 내용보다 교육 방식과 평가 방식의 문제점을 지적한다. 학교 다니는 12년 동안 객관식 평가에 노출되다 보면 정답(진리)이 실재한다는 절대주의 세계관을 갖게 되어 다양성을 인정하는데 어려움을 겪는다고 한다.
또한 학교생활을 통해 끊임없는 ‘경쟁’이 일상화됨으로써 학생들은 자신의 평가 결과와 무관하게 경쟁이 정당하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게 된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지속적인 평가가 학생들에게 개개인 간의 경쟁이라면 언제나 정당하다는 환상을 심어준다는 점에 있다. 즉, 실제로는 사회의 부조리로 발생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경쟁이라는 형식은 이러한 문제의 책임을 사회에서 개인으로 전환한다. (p.211)
중간 성적인 수능 5등급이 국민 평균임에도 열등생처럼 취급되고, 3등급이면 상위권인데도 인서울이 어렵다는 이유로 공부를 못한다는 말을 듣는다. 이런 일이 벌어지는 이유를 저자는 한국인의 높은 학구열이나 교육 정책이 아닌 경제문제에서 찾는다. 평균 수준으로 공부해서는 안정된 소득이 보장된 직업을 구할 수 없는 구조가 치열한 경쟁을 만들었고, 줄 세우기 학교 교육에 익숙한 개인은 그 결과에 승복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상위 10%에 들어야 먹고살 수 있다는 현실에 대한 뼈저린 이해가, 교육에서 상위 8%에 들어가야만 한다는 사회적 인식을 필연적으로 발생시킨 것인지 모른다.
......
평균적인 성적으로 정당한 대우를 받고, 평균적인 소득으로도 인간적인 삶을 영위할 수 있는 경제적 환경이 조성된 사회가 정상임에도 불구하고, 그렇지 않는 사회에 책임을 묻지 않는다.
(p.215)
학교 성적과 소득이 반드시 비례하지는 않지만 자산소득이 많지 않은 대부분의 학부모들이 좋은 성적--> 좋은 대학--> 안정된 직업 의 수순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책이 출간되고 7년의 시간이 지났지만 상황은 더 안 좋아졌다. 그동안 불황이 깊어지면서 좋은 대학도 안정된 직장을 보장해주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그 때보다 경쟁은 더 치열해졌고 그 책임도 여전히 개인에게 있다.
다른 챕터에서도 저자의 통찰력을 볼 수 있었지만 교육문제의 원인을 내용보다 형식에서 찾고 지나친 경쟁을 경제문제로 파악하는 점은 저자의 안목이 돋보이는 분석이라고 생각한다.
대부분의 내용이 좋았지만 직업과 미래 파트는 조금 아쉬웠다.
직업 파트에서 15715개(2016년 기준)나 된다는 직업을 생산수단의 소유 여부에 따라 4가지로 분류하는 점은 납득하기 힘들었다.
생산수단 외에 사회가 요구하는 특정한 기술이나 재능의 소유 여부도 소득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한다. 또한 영세상인과 재벌을 생산수단을 소유한다는 공통점만으로 하나의 카테고리로 묶는 것도 무리가 있다고 본다.
책의 마지막 부분인 미래 파트는 2015년 출간 이후 7년 동안 있었던 일들이 저자의 예측과 다르기 때문에 동의하기 어렵다. 저자는 베이비붐 세대의 노령화로 자산가치가 하락하고 소비심리가 위축되어 지속적인 디플레이션이 나타난다고 예측하였다. 그러나 모두 알다시피 최근 몇 년 동안 부동산은 2~3배씩 폭등했고 물가는 끝을 모르고 오르고 있다. 코로나와 우크라이나 전쟁 등 어쩔 수 없는 변수가 많았다고는 하지만 본시 미래를 알기 어렵다는 건 변수 때문이 아닌가.
통찰력이 있어도 미래예측, 특히 가까운 미래를 내다보는 일은 어려워 보인다. 누가 그랬던가. 미래는 예측의 영역이 아니라 대비하는 거라고.
몇 가지 아쉬움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세상의 구조를 경제체제를 기본으로 간단히 구조화시켜 보여줌으로써 우리가 현란한 눈속임에 현혹되지 않고 자신에게 이득이 되는 판단을 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책 한권을 읽는다고 금세 교양인이 되지는 않겠지만 최소한 선택의 순간이 왔을 때 길을 잃지는 않았으면 좋겠다.
- 좋아요
- 6
- 댓글
- 0
- 작성일
- 2023.04.26
댓글 0
댓글이 없습니다.
첫 번째 댓글을 남겨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