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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12.7
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
- 글쓴이
- 김선영 저
좋은습관연구소
<어른의 문해력>과 <어른의 문장력>에 이어 세 번째로 만나는 글밥 김선영 작가의 책이다. 4년간 필사를 하고 매일 인스타그램에 인증했다고 한다. 방송작가, 글쓰기 강사, 베스트셀러 작가. 글쓰기라면 남부럽지 않은 경력을 가진 저자가 수년 동안 남의 책을 보며 필사했다니 의외였다. 필사가 좋다는 이야기를 듣긴 했지만 작가 지망생이나 글 좀 잘 쓰고 싶어 하는 아마추어들이 연습 삼아 하는 일이라고 생각했으니까. 프로작가라면 자기 글만 써도 바쁠 테니 말이다. 글에 대한 저자의 애정과 노력을 보면 가만히 앉아 잘 쓰기를 바라는 헛된 마음이 자못 부끄러워진다.
이 책의 본문은 크게 3장으로 나뉜다. 1장. “흔들이지 않는 글쓰기 루틴을 만드는 법”은 글쓰기에 필요한 마음가짐과 꾸준히 쓰는 방법을 알려주고, 2장. “더 다채롭게 표현하는 법”은 표현 기술을, 3장. “인간미 넘치는 ‘쓰는 사람’이 되는 법”에서는 글쓰기의 의미를 돌아보는 시간을 갖는다.
4년 동안 필사한 1,400여개의 문장 중에서 고르고 고른 30개의 알토란같은 글귀들. <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는 제목처럼 필사는 저자의 경험과 사고를 확장시켜 또 다른 필사를 부르는 명문장들을 만들어내고 있다. 저자가 다른 책에서 좋은 글을 뽑아 필사했듯이 나도 이 책에서 따라 쓰고 싶은 글귀를 꼽아보았다.
예전에는 몰랐지만 이제는 안다. 긴급한 일과 중요한 일, 이 중 긴급한 일만 하다 보면 중요한 일은 우선순위에서 밀려 영원히 못 하게 된다는 것. 긴급하지만 중요한 일 중 하나가 독서와 운동이다. 당장 안 한다고 해서 티가 나거나, 어떤 손해가 있는 것은 아니다. 책을 안 읽었다고 해서 방송이 펑크 나거나 직장에서 잘리지도 않는다. 마찬가지로 일주일 동안 운동을 안 했다고 죽을병에 걸리지도 않는다. 그런데 일주일은 한 달, 한 달은 어느새 일 년, 그러다 평생 급한 불만 끄는 소방수가 된다.
(p.61~62)
책에서 소개하는 다른 작가의 글도 좋지만 그것을 풀어내는 저자의 거스러미 없는 문장 또한 베껴 쓰고 싶을 만치 마음에 꽂힌다.
긴급한 일과 중요한 일. 지난 한 해 나는 얼마나 많은 긴급한 일에 매여 중요한 일을 소홀히 했을까. 리뷰 많이 쓰기, 매일 글쓰기, 브런치 작가 도전하기, 독서 모임 활동. 작년 이맘때쯤 계획했던 신년 목표들이다. 그 중에 실천하고 있는 건 독서 모임 정도. 부끄럽게도 매일 글쓰기도 흐지부지되고, 그러다 보니 괜찮은 글을 골라 신청해 보겠다던 브런치는 여전히 시도도 못하고 있다. 긴급한 일에 밀렸을까, 아니면 그 정도로 중요하진 않다고 늦장 부리는 걸까. 저자의 말대로 하루 쯤 책 안 읽고, 글 안 쓴다고 큰일 나지는 않는다. 다만 연말에 이렇게 후회하고, 5년, 10년 후 더 깊은 회한에 눌릴까 두려울 따름이다.
나는 원하지 않으면서도 정말로 원하지 않는 대로 될까 봐 불안해하고, 원하면서도 정말로 원하는 대로 될까 봐 마음 졸이고 있는 것 같았다. 카오스, 땅은 혼돈하고 흑암이 깊음 위에 있는 상태. -이승우, 『한 낮의 시선』
(p.182)
신화마다 등장하는 태초의 카오스는 까다로운 변덕쟁이 인간의 마음에 대한 은유가 아니었을까. 대충 살면서도 부지런 떨고 싶고, 인정받고 싶으면서도 과한 관심은 싫고. 저자는 첫 책이 출간되었을 때 느꼈던 혼란한 감정을 고백하며 인간의 모순적인 감정을 표현한 이승우 작가의 글을 소개한다. 이승우 작가의 작품은 <생의 이면>이라는 소설 밖에 읽어본 게 없어 잘 알지 못하지만 이 문장만으로도 더 읽고 싶어졌다.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아무것이고, 아무것이라고 생각했던 건 아무것도 아닙니다. 아무것도 아닌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어요. -박웅현, 『여덟 단어』
(p.232)
어제와 오늘, 오늘과 내일이 비슷해서 딱히 글로 남길 소재가 없다는 생각이 들 때면 박웅현 작가의 문장을 떠올린다. 아무것도 아닌 일에 가만히 돋보기를 들이대고 ‘만약 생이 얼마 남지 않았다면?’이라는 가정을 덧붙여 본다. 그러면 당연하게 누리던 평범한 일상이 단박에 ‘아무것’이 된다.
(p.234)
저자는 아무것도 아닌 것들이 아무것이라는 사실을 알아차리는 일이 글쓰기의 시작이라며 사물을 진지한 태도로 대하는 일이 작가의 역할이라고 말한다.
여행지에서는 만나는 모든 게 신기하다. 낯선 음식이나 풍경도 한 몫 하겠지만 이 시간이 지나면 언제 다시 볼지 알 수 없다는 생각에 사소한 일도 특별해지는 것 같다. 굳이 낯선 곳이 아니라도 시간을 한정하면 사물이 달라 보인다. 십 수 년 살아 지겨워진 집도 이사 전날엔 손 때탄 벽지, 냄비자국 남은 싱크대, 얼룩진 욕실 거울까지 다정해 보이지 않던가.
특별한 글을 쓰는 작가라고 해서 매일 새로운 경험만 할 리는 없다. 진지한 시선으로 아무것도 아닌 것을 아무것으로 만들어보자.
필사, 남의 글 베껴 쓰기. 글쓰기 중 가장 쉬운, 생각해보면 아무것도 아닌 일. 하지만 ‘매일 쓴다’, ‘손으로 쓴다’는 조건이 붙고 나면 특별해진다. 원체 악필이라 손 글씨를 쓸 때면 민망해지지만 책을 읽다보니 따라 쓰고 싶어졌다. 정갈한 노트에 편안한 펜으로 시작해야겠다.
필사를 부르는 글밥 작가의 <따라 쓰기만 해도 글이 좋아진다>. 쓰고 싶지만, 쓰기 싫어하는, 글태기에 빠진 내게 주는 비타민 같은 책이다.
<모나리자님의 추천으로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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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