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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24.4.5
심리학이 관우에게 말하다 1
- 글쓴이
- 천위안 저
리드리드출판
현대 심리학으로 읽는 삼국지 인물 열전시리즈. 이번에 읽은 책은 삼국지 영웅 중 신으로까지 추앙받는 ‘관우’편이다.
변치 않는 충성심이나 의리의 대명사로 불리는 관우. 충분히 존경받을만한 인물이지만 왕도 아니고 일개 장수일 뿐인데 시대에 따라 왕으로 추앙받기도 하고 심지어 신으로 모셔지기도 한다. 삼국지 속의 일화를 보면 성격적인 결함도 적지 않고 능력으로만 따져도 대등하거나 오히려 그 이상으로 보이는 인물이 여럿 있음에도 관우에 대한 사람들의 편애는 유난스러울 정도다.
조조가 얼마나 관우를 아꼈는지는 다음 대목에서 알 수 있다. 조조는 즉시 관우를 데리고 한 황제를 알현했다. 비록 한 헌제가 허수아비에 불과했지만, 형식적으로 황제는 여전히 백성들에게 상징적인 존재였다. 또한, 조직 내 최고 위치의 지도자를 알현하는 것은 관우에게도 매우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관례상 조조와 함께 알현을 온 자는 하사품을 받았다.
헌제는 관우에게 관직을 하사할 것을 조조에게 명했고 조조는 황제의 명에 따라 관우에게 편장군이라는 벼슬을 내렸다.
조조는 매 순간 어떻게 하면 관우를 자신의 심복으로 만들 수 있을까 고민했다. 그는 장료가 했던 말처럼 자신이 유비보다 더 많은 것을 주면 결국 관우도 자신의 곁에 남게 될 것이라 믿었다. 이는 호혜성 원리를 어떤 대상과 비교하는 상황에서 응용한 것이다.
(p.77~78)
관우를 특별하게 여기는 인물이 삼국지 안에도 등장한다. 바로 조조다.
“내가 세상을 버릴지언정 세상이 나를 버릴 수 없다.”는 말을 남긴 조조는 자신과 완전히 다르게 살아가는 관우를 귀히 여긴다. 수하들의 질투를 살 정도로 말이다.
조조의 포로가 되어 위협받자 그는 어쩔 수 없이 항복하면서도 억지스런 조건을 제시한다. 조조가 아닌 한에 투항하는 것이라거나 유비 부인들의 생계를 보장해달라는 요구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지만 유비의 소식을 알게 되면 언제든지 떠나겠다는 세 번째 조항은 이게 무슨 항복인가 싶을 정도다. 누가 승자고 누가 패자인지조차 알 수 없는 관우의 항복조건. 그럼에도 불구하고 죽이기는커녕 그의 뜻을 존중하고 마음을 얻으려 물심양면 애쓰는 조조. 그의 퍼주기 식 애정공세는 제갈량이 같은 편인 관우를 견제한 일과 비교하면 더 유별나다.
모든 걸 가진 그가 왜 그렇게 관우의 마음에 연연하는 걸까?
자신이 갖지 못한 것을 가졌기에 부러워한 건 아니었을까. 평화로운 시대였다면 관우처럼 고고하게 살고 싶었지만 시대가 허락하지 않아 그럴 수 없었다고, 자신의 행동을 시대에 투사하면서 말이다.
한편으로는 관우가 조조의 물량공세에 넘어가 충성의 대상을 바꿨더라면 어땠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긴다. 그랬다면 관우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져 오히려 하찮게 여기지 않았을까.
관우가 그의 관심을 끄는 동안 생사고락을 함께한 다른 부하들에게 소홀해지는 걸 보면 충분히 가능성 있는 일이다. 변심한 관우라니. 평범한 장수와 다를 바 없지 않은가.
관우는 조조가 하사한 물건을 받을 때마다 예의상 감사 인사만 할 뿐 단 한 번도 조조의 호의에 진심으로 기뻐한 적이 없었다.
...
조조는 이 상황을 답답해하면서도 정작 관우가 무엇을 원하는지 단 한 번도 고민해보지 않았다.
만약 에이브러햄 매슬로가 조조 곁에 있었더라면 그의 고민을 단번에 해결해 주었을 것이다. 매슬로는 사람의 욕구를 생리적 욕구, 안전의 욕구, 애정 소속 욕구, 사회적 욕구, 존경 욕구, 자아실현의 욕구 다섯 가지 단계로 분류했다. 여기에 맞춰 관우를 하나씩 하나씩 파헤쳐 보자. 과연 관우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p.93~94)
그토록 융숭한 대접을 받았음에도 관우는 왜 조조를 따를 수 없었을까?
저자는 매슬로우 이론을 대입하며 관우의 자아실현은 “한마음이 되어 도탄에 빠진 백성을 구하고 나라를 바로 세워 국가와 백성의 안녕과 번영을 지키자.”는 도원결의를 지키는 일이라고 이야기한다. ‘백성을 구하고 나라를 바로 세우는 것’만이 최종목표였다면 조조와 함께 대업을 이뤄도 상관이 없겠지만 문제는 ‘한마음’이다. 관우 같은 외곬수에게는 ‘모로 가도 서울만 가면 된다.’는 식의 융통성이 통하지 않는다. 그의 입장에서 유비와 장비를 저버린 채 이룬 대업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춘추>를 외울 정도로 탐독하며 글자 그대로의 ‘충의’를 지키고자 하는 인물, 관우. 결과의 손익을 따지지 않고 지조를 지켰기에 잃은 것도 많았고, 그래서 이름을 남길 수 있었다.
유비는 그녀들이 의지할 만한 사내가 아니었다. 늘 중요한 순간에 도망쳤기 때문이다. 이전에 유비가 여포와 전투를 벌였을 때도 지금과 똑같은 상황이었다. 당시엔 장비가 두 부인을 보호하고 있었는데, 술에 취해 자다가 그만 여포에게 성을 빼앗기고 말았다. 이때 유비의 부인은 여포의 손에 넘어갔었다. 하지만 다행히 여포가 유비와의 정을 생각하여 두 부인을 잘 보살펴주었으며 적절한 시기에 돌려보내 주었다.
훗날 장비가 두 부인을 지키지 못했다는 죄책감에 칼로 자결하려 하자 유비가 그를 끌어안았다. 이때 유비가 장비에게 한 말이 있다.
“형제가 수족이라면 아녀자는 의복과도 같네. 옷은 해지면 바꿔 입으면 되지만 수족이 없으면 어찌 살 수 있겠는가?”
이 말은 유비가 남성과 여성 동반자에 대해 어떤 관념을 가지고 있었는지 극명하게 나타낸다.
(p.69~70)
세상을 다 품을 듯 인자하고 의리를 중요하게 여기는 유비지만 그가 보듬고, 이끌고, 은혜를 베풀 백성은, 오직 남자다. 유비의 세계관에서 여자는 그저 후계자를 얻거나 살림을 건사하고 때로는 외교를 위해 필요한 수단일 뿐이니 ‘의복’이라는 비유가 어처구니없게도 적절해 보인다.
남편에게 ‘의복’취급 받는 아내라니. 그나마 유비의 ‘의복’으로라도 남기 위한 그녀들의 몸부림이 처절하다. 자신의 친아들도 아닌 유비의 후계자 아두를 위해 자결하며 훌륭한 의복이었음을 증명한 미씨부인의 비극적인 최후. 그녀의 사연이 아름답게 포장되는 걸 보면 영웅들의 대의가, 허무해진다.
어느 유튜브에서 정신과 의사가 관우가 현대사회의 인물이라면 특정 분야에서 제한적 성공을 할 수는 있겠지만 <삼국지>시대만큼의 성공을 하지는 못했을 거라는 이야기를 한 적이 있다. 충의를 중요하게 여기지만 지나치게 자존심이 강하고 융통성이 부족해 ‘꼰대’소리 듣기 딱 좋다는 것이다. 야박한 평가가 아닌가 싶었지만 부정할 수도 없었다. 결국 그런 오만 때문에 결정적 실패를 하고 말았으니 말이다. 그의 성격적 결함이 어떤 불행을 초래했는지 2권을 통해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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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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