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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식 편의점 : 생각하는 인간 편
글쓴이
이시한 저
흐름출판
평균
별점9.6 (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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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시한 작가의 <지식편의점> 시리즈는 3년 전, 그러니까 독서에 한참 빠져들던 초기에 가이드 북처럼 읽은 책이다. 읽고 싶지만 무엇을, 어떻게 읽어야 할지 막연할 때 도움 받았고, 실제로도 저자가 소개하는 벽돌책 중 여러 권을 읽었으니 독서 마중물로는 제격이었다.

<지식 편의점> 시리즈 중 첫 책은 인문학 고전을 소개하는 ‘생각하는 인간 편’이다. 플라톤의 <국가>, 토마스 홉스의 <리바이어던> 같은 수천 년, 수백 년 된 책부터 현대의 고전이라 불리는 유발 하라리의 <사피엔스>,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총,균,쇠>,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까지. 이 책에 나오는 18권의 고전은 모두 원체 유명해서 읽지 않았어도 익숙한 인문학 명저들이다.

저자는 18권의 책을 크게 ‘질문하는 인간’, ‘탐구하는 인간’, ‘생각하는 인간’ 이라는 소제목으로 챕터를 나눠 소개한다. 인문학 고전 서평집답게 시대도 다양하고 주제도 여럿인 이야기가 모여 있어 자칫 방향성을 잃기 쉽지만 저자는 대목차로 분류된 고전들을 가독성 좋은 문장으로 재해석한다. 그 중에서도 기억에 남는 부분을 몇 군데 살펴보겠다.


<로빈슨 크루소>에는 이런 청교도 정신이 여실히 드러나는 데요. 로빈슨 크루소가 무인도에서 부지런히 몸을 움직여 그 섬을 자신의 왕국으로 만들어가는 과정이 바로 청교도가 주장하는 논리와 일치합니다. 농사를 짓고, 사람이 오지 않는데도 요새를 만들고 남은 식량은 창고를 만들어 비축하죠. 염소를 기르는 자신만의 목장도 있어요.

사실 무인도로 오기 전까지 로빈슨 크루소는 이렇게 열심히 살지 않았습니다. 신앙인의 눈으로 해석해보자면 그렇기 때문에 그 벌로 무인도에 오게 된거나 마찬가지인데요. 무인도에 와서는 그야말로 금욕적으로 생활하고, 규칙적이고 성실한 노동을 이어갑니다. 무엇보다 기도하는 생활을 잊지 않아요. 그러다가 프라이데이를 만나 그를 기독교로 개종시키고, 같이 청교도적 생활을 하죠. 이런 노력의 결과가 결국 무인도 탈출로 이어집니다.

(p.176)


여러 어려운 고전들 사이에서 의외의 책이 눈에 띈다. 바로 근대 소설의 효시로 알려진 <로빈슨 크루소>. 어린이들이 주로 축약된 명작동화로 만나는 이 책의 의미를 저자의 통찰을 빌어 알아보자.

로빈슨 크루소가 식민주의를 보여준다는 글을 언뜻 본 적은 있지만 구체적인 설명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했다. 어릴 적 열 번도 넘게 읽은 책. 로빈슨이 온갖 고생을 하며 밀을 재배하고 빵을 굽거나 원주민 프라이데이와 친구가 되는 장면을 보면 얼마나 행복했던가. 새로운 관점으로 보면 프로테스탄티즘을 실현하고 식민지를 만드는 과정에 불과한 그런 대목들은 특히나 감동의 포인트였다. 로빈슨을 응원하는 나는, 내가 그의 보이지 않는 친구인줄로만 알았지 사실은 프라이데이와 같은 입장이라는 것을 몰랐다. 그때 본 책에는 작품 소개나 뒤편의 해설에도 껄끄러운 말은 일언반구도 없었는데, 살짝 배신감마저 느껴진다.

책 한권의 위력이 이렇게 큰 걸까. 로빈슨이 살던 곳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동양의 어린아이까지 의식도 못한 채로 유럽인들이 원하는 시각을 갖게 되었다는 사실이 못내 불편하다.


<자유론>의 내용은 명확합니다.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리고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개인은 무한한 생각과 행동의 자유를 가진다는 것이죠. 국가는 다른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개인의 자유를 침해할 수 없고요.

(p.232)


160년 전의 저작임에도 지금의 상황에 적용되는 이야기가 많아 읽는 동안 전혀 시간적인 괴리감이 느껴지지 않는 고전, <자유론>. 천재 철학자의 논리력에 반해서 어렵지 않게 읽은 책이지만 제대로 이해했는지 늘 의심스러웠기에 다른 이들의 의견도 듣고 싶었다.

저자는 다른 사람에게 피해를 끼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그리고 자신이 책임질 수 있는 한도 내에서 개인인은 무한한 생각과 행동의 자유를 가진다는 주제와 더불어 개별성에 주목한다. 진정한 민주주의는 개별성을 존중하는 데서 시작되며 우리는 이 개별성을 지키기 위해 끊임없이 토론하고 논쟁하고, 그에 따른 합의와 원칙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 과정이 귀찮다고 위임한다면 기껏 찾은 개인의 권리를 다시금 권력자에게 주는 것과 마찬가지라는 저자. 에리히 프롬의 책 제목이기도 한 ‘자유로부터의 도피’는 이런 귀차니즘에서 시작되는 게 아닐까 생각한다.


권력은 그 자체의 유지를 위해 점점 종교화되어가고 있어요. 최근의 선거판을 보면 알겠지만, 집권해서 무엇을 하겠다는 것보다는 상대방 후보나 당의 어떤 점이 잘못되었다는 식의 비난으로 가득차 있습니다. 저런 사람이 권력을 잡으면 안 되니 자신이 잡겠다는 이야기인데요, 자신이 권력을 잡으면 어떤 식의 정치나 정책을 만들겠다는 이야기는 딱히 부각되지 않아요. 사실 뚜렷한 정책이 없는 경우도 많고요. 본래 권력은 자신이 이룩하고 싶은 이상적인 사회를 이루기 위한 수단이 되어야 하는데, 권력을 잡는 것 자체가 이룩하고 싶은 목적이 되어버린 겁니다.

(p.247)


<자유론>에서 강조한 개인의 자유와 개별성이 사라진 사회가<1984>에 등장한다. 빅 브라더가 독재 체제를 구축하고 시민을 하나로 장악하는 세상. 그런데 왜 빅 브라더는 그토록 권력을 키우고 국민을 장악하려 하는 걸까. 책 속에는 그 이유가 등장하지 않는다. 더 큰 문제는 독자들조차 그 이유를 궁금해 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권력은 이미 수단이 아닌 그 자체로 목적이 되어버렸다.

총선이 끝나고 얼마 되지 않은 탓인지 이런 대목들이 더 크게 보인다. 4년마다, 5년마다 국가와 국민을 위해 살겠다며 한 표를 부탁하는 그분들. 그분들이 진짜 원하는 건 뭘까. 행여나 나의 한 표가 누군가의 ‘가문의 영광’으로만 머물지 않기를 바랄 따름이다.


인문학 고전을 읽고 싶지만 짧은 시간에 집중하기 어려워 미뤄두곤 한다. 그러다보니 아무래도 가벼운 책 위주로 손이 가고 고전읽기는 숙제처럼 남는다. 그렇다면 인사이트 좋은 평론가의 도움을 받아보는 건 어떨까. 원전을 보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접근이 어렵고 이해가 더디다면 전문 서평가의 책으로 시작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지식편의점: 생각하는 인간 편>.

제목처럼 편안한 옷차림으로 집근처 편의점에 들르듯 부담 없이 인문학이 주는 지식에 접근할 수 있는 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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