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서 리뷰

A슐리
- 작성일
- 2015.2.23
매트릭스로 철학하기
- 글쓴이
- 슬라보예 지젝 저
한문화
지난번 『방황해도 괜찮아』 리뷰에서 다음과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오늘은 여기에 대한 철학적이고 종교적인 답변에 대한 내용을 알아보려고 합니다. 책은 『매트릭스로 철학하기』입니다. 매트릭스 1~3 시리즈는 제가 좋아하는 영화 중의 하나이기도 한데, 골백번을 봐도 영화 세부내용에 대해서는 전부 다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아마 그 내용이 방대하고 철학적으로 깊이가 있어야 하므로 제가 이해하지 못한 것이 맞을 것 같아요. |
1. 숟가락은 없어요. 그중에서도 가장 미스테리했던 장면은 "There is no spoon."입니다. 주인공인 네오가 오라클을 만나러 간다길래 심오한 내용이 나올 것이라 예상은 했지만, 너무도 갑작스럽게 그 내용이 등장합니다. 그 메세지는 오라클도 아닌 대기자실에서 기다리고 있던 어떤 여자아이의 말이었습니다. "스푼은 없어요"라니.. "숟가락을 구부리려 하지 마세요. 그건 불가능해요. 그 대신 진실을 깨달으려고 노력하세요. 숟가락은 없어요. 그러면 구부러지는 것은 숟가락이 아니라 오직 나 자신이라는 것을 알게 될 거에요." 인생 최대의 수수께끼는 스핑크스가 낸 것이 아니라 매트릭스의 여자아이가 낸 이 문장이라고 생각합니다. (질문보다 더 황당했던 것은 우리의 네오는 그 여자아이의 말을 바로 이해하고 적용한 것입니다. 제 이해력에 문제가 있는 걸지도...) |
2. 정토사
제가 아시는 분이 정토사에서 주최하는 4박 5일 체험에 참가하고 오셔서 이야기를 해줬습니다. 그게 2년 전쯤의 일이니 꽤 된 일이네요. 참고로 그 분은 교회 집사이신데 결과적으로 절에 가서 4박 5일 동안 정토사 프로그램에 참가하셨습니다. 조금 특이하다면 특이하다고 할 수 있는 분이겠네요.ㅎㅎ
프로그램이 시작하는 날 40~50명의 사람들이 줄을 맞춰서 정토사에 앉아있었다고 합니다. 그 분은 바로 눈 앞에서 스님을 본 건 처음이라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몇 분의 침묵이 흐른 뒤에 스님이 한 사람, 한 사람에게 다음과 같이 물어봤다고 합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그래서 지인은 자신의 이름을 답하였다고 합니다. 만약 제가 갔다면 "저는 OOO입니다."라고 말하듯이 말입니다. 그랬더니 스님이 다시 물어봤다고 해요. "그건 당신이 불리우는 이름이고, 당신은 누구십니까?"
다른 참가자들은 각자 누구누구의 아빠이다. 혹은 어디 회사의 대표이다. 등등 자신을 표현할 수 있는 말로 답변을 했지만 스님은 각각의 답변에 반문하며 한 명, 한 명에게 당신은 누구냐고 물어봤다고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한바퀴를 다 돌자 이번에는 당신이 슬픈 이유를 말해보라고 했습니다. |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답변을 했다고 합니다.
"돈이 없어서"
"자식이 죽어서"
"하는 일이 잘 풀리지 않아서"
"삶이 힘들어서"
등등 아주 많은 답변이 나왔지만 스님은 한결같이 반문하며, 돈이 없는게 왜 슬픈일이냐, 자식이 죽은게 왜 슬픈일이냐고 물어봤다고 합니다. 우리가 누구이고 왜 힘들까요?
저에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신 분도 이러한 질문을 받고 정확한 답변을 할 수가 없어서 머리가 정말 터지는 줄 알았다고 합니다. 그 때, 생애 처음으로 진지하게 '나'에 대해서 고민했다고 했습니다. (당시 나이가 50세가 넘은 나이셨어요.) 과연 나는 누구인가? 나는 왜 태어난 것인가? 나는 나의 존재이유를 아는가? 과연...나는 무엇인가? |
그렇게 3일을 질문에 대한 답을 알아내기 위해 잠도 자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리고선 마지막날 이에 대한 답을 찾아냈다고 합니다. 그건 바로 '무아(無我)'였다고 합니다. 바로 '내가 없다'는 것이였습니다. |
제가 이 자리에 비록 있을지라도 어느 누가 증명할 수 있을까요? 제가 입고 있는 옷이 저의 것일까요? 제가 점유하고 있으므로 저의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혹시라도 옷을 잃어버리기라도 한다면 저의 것이 아니게 됩니다. 그러므로 제가 가지고 있는 옷은 저의 것이기도 하면서 동시에 저의 것이 아닙니다. 사람들이 슬픈 감정을 가지게 되는 것도 자신의 존재로 인해 슬픈 감정을 느끼는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죽었다고 했을 때, 그 죽음에 대해 슬퍼할 사람이 반드시 존재할 것입니다.(그의 부모님이나 친구들 말입니다.) 하지만 기뻐할 사람은 없을까요? 그 죽은 사람이 흉악한 범죄자였다면 그의 죽음에 모든 사람이 슬픔이라는 감정을 느낄까요? |
이렇게 우리가 '나(我)'이라는 것이 있으므로 슬프기도 하고 기쁘기도 하고..모든 희로애락을 느낀다고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이 사실로 인해 고민하고 번뇌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연인과 헤어졌다고 한다는 것이 왜 슬픈 일이 될까요? 곰곰이 생각해보면 그 사람이 내 생각대로 움직여주고 생각하지 않기 때문에 슬픈 것입니다. '나'를 버리고 다가간다면 사람은 사람들은 그 어떤 고민도 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자신을 버리고 생각하기란 하늘의 별따기 정도로 힘든 일이라.. 사람은 항상 고민에 빠지고 힘든 것이겠지요. 우선 저도...그렇고..ㅎㅎ
매트릭스의 "숟가락은 없어요"는 바로 반야심경의 색즉시공 공즉시색을 선문답으로 표현한 문장이었던 것입니다. 저는 철학이나 심오한 생각들을 별로 선호(?)하지 않는데, 그 이유는 이러한 내용의 결론들을 '허무주의'와 쉽게 연결되기 때문입니다. 지금은 어떻게 해서라도 긍정적이고 발전적인 내용으로 연결지으려고 노력하고 있지만, 지금보다 어린 시절에는 허무주의로 자주 귀결되었던 것 같습니다.
"주거를 제공하고, 오락을 제공하고, 음식과 영양을 제공하고, 건강을 주었음에도 사람은 여전히 불행과 불만을 느낀다. 사람은 압도적인 힘을 원하는 것이다." 니체 『아침놀』 中에서
이번 포스팅은 『매트릭스로 철학하기』라는 책과 정토사에 2년 전에 참가하고 오신 지인분의 이야기를 바탕으로 적어낸 글이기 때문에 이 내용이 정답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하나의 화두를 던져주었기에 리뷰로 작성해보았습니다. 나는 누구일까요? 이에 대한 정의를 내리셨다면, 그 정의에 대한 증명을 어떻게 할 수 있나요? (2년이 지난 지금도... 나는 어리석은 중생이닭)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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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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