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자연과학

daniella J.
- 작성일
- 2025.3.14
명령에 따랐을 뿐!?
- 글쓴이
- 에밀리 A. 캐스파 저
동아시아

이 책은 1994년 르완다에서 벌어진 후투족의 투치족 집단학살과 1975~1979년 캄보디아에서 발생한 폴 포트가 이끈 크메르루주(khmer Rouge) 군대가 캄보디아 시민 170~220만명을 집단학살한 사건의 가해자들을 대상으로 심층면접과 뇌파검사 등을 한 연구 결과를 보여준다.
때마침 한국에서는 2024년 12월 3일 계엄이 선포되었고 국민을 지키는 의무를 부여받은 군이 국민을 대표하는 국회에 무장한 채로 진입하여 물리력을 행사한 일이 일어났다. 계엄은 다행히 해제되었고, 이후 어떤 군은 불법적인 명령에 복종하였고 어떤 군은 확실하게 거부하였으며 어떤 군은 명령을 집행하는 과정에서 의도적인 지연으로 거부 의사를 드러내기도 했다는 것이 드러났다. 이러한 사회적 맥락 속에서 이 책이 갖는 함의는 감히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이 책의 내용만 보면 (저자는 말미에 희망을 얘기했다 하지만) 불법적이거나 부도덕한 명령을 거부하도록 시스템으로 구축하는 일은 순탄치 않아 보인다. 사람들은 집단의 영향을 받아 정당화 하려 하고 나쁜 권위에 쉽게 복종하는 경향이 있으며 강요를 받는 경우에 뿌리치는 일을 어려워 한다. 어떤 땐 설득만으로도 집단학살에 참가하기도 한다. p80-90
집단학살은 스스로 멈추는 사례는 찾기 어렵고 외부의 개입을 통해서만 중단되었다. p102
집단으로 행할 수록 주체의식을 줄어드는 경향이 나타났고 책임은 개인들 사이에 분산된다기보다는 행동한 자와 명령하는 자 간에 이동하였다. 공통점은 이런 과정을 통해 모든 당사자의 책임이 약화되었다는 것이다. p170
집단학살을 주도한 정권은 공통적으로 선전을 통해 '우리'와 '그들' 사의 차이를 과장하는 데 성공했다. 각각의 개인을 개인으로 보지 않고 집단의 구성원으로 취급하였으며, 성공적인 범주화('우리'와 '그들'의 구별) 이후엔 '그들'을 비인간화 하였다. 인간성을 제거함으로써 집단학살 즉 폭력을 용인하고 정당화 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것이다. p219
사람들은 자신이 내린 결정을 사회적 맥락 속에서 추적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인식하면, 즉 자신의 행위를 감출 수만 있다면 책임을 덜 느끼고 반사회적 행동에 가담하는 데 거리낌이 없어지게 된다고 한다. p254
책에 소개된 수많은 연구들은 우리 사회가 직면한 여러 갈등들을 대입해서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12월 3일 그 밤의 위기를 넘긴 것에 대한 해석은 다양한 관점에서 가능하다. 유튜브를 통해 투명하게 생중계된 환경, 과거의 경험으로 즉각적으로 모여든 시민들의 눈과 목소리, 사회전반적으로 높아진 교육 수준과 부당한 명령에 대한 개별적인 군인들의 도덕적 갈등과 주저함이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인지도 모른다. 그 와중에 부당한 명령에 적극적으로 거부한 인사들도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다.
그날의 위기를 넘긴 것은 운이 좋았으나 여전히 남은 사회의 분열과 갈등은 우려스럽다. 전쟁에 승자는 없다. p304 잘못된 행동에 책임을 지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우리'와 '그들'을 분리하고 '그들'을 비인간화 하는 것은 자칫 폭력의 위험만 가중시킬 따름이다. 전쟁은 가해자와 피해자 모두에게 상흔을 남기고, 이는 대를 이어 물려받는다고 한다. 1950년 같은 민족에게 총과 칼을 겨눴던 6.25전쟁의 비극이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절망과 희망을 동시에 품고서 책을 덮었다. 부디 서로를 너무 미워해서 해치는 일이 일어나지 않기를 바라면서, 나부터 더 이상 누구도 원망하지 말자 결심했다. 혼란스럽고 어지럽지만 누구도 다치지 않고 이 사태가 수습될 수 있기를 소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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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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