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평

orz
- 작성일
- 2019.2.26
큰 가슴의 발레리나
- 글쓴이
- 베로니크 셀 저
문학세계사
타고난 몸에 큰 불만 없이 비교적 만족하며 살려고 하지만, 제 몸에서도 마음에 들지 않는 부위가 있습니다. 바로 대한민국 평균보다 큰 가슴입니다. 크면 좋은 것 아닌가 하는 분도 있을테고, 작아서 컴플렉스인 분들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저한테는 이 큰 가슴이 어깨 통증의 유발자요, 맞는 속옷을 찾지 못해 좌절하게 만드는 원흉이었습니다. 지금은 사정이 나아져서 사이즈 때문에 고민할 일이 줄어들긴 했지만, 여전히 '예쁘고 저렴한' 두 가지를 모두 충족시키는 속옷을 구하기 힘든 것이 사실입니다. 저한테는 별 의미 없는 살덩어리인 두 짝의 가슴은 조금은 불편한 존재들이었습니다.
하지만 <큰 가슴의 발레리나>의 주인공인 바르브린에게 젖가슴은 그저 무거운 두 개의 짐이 아닌, 가볍게 날아야 할 발레리나를 지상으로 추락시킨 두 개의 추와 같았습니다. 고양이를 보고 발레의 기본 동작을 배운, 본인피셜 어머니의 뱃속에 있을 때부터 발레를 했던 바르브린은 선생님으로 부터 '콩세르바투아르'를 목표로 하는 것이 어떻냐는 말을 들을 정도로 발레에 재능을 보입니다. 하지만 가슴! 바르브린에게 달린 두 개의 가슴, 덱스트르와 시니스트르가 자신들의 야망을 뽐내며 더욱 더 뾰족하게 솟아날수록 바르브린 본인의 꿈인 발레리나와는 멀어져만 갑니다.
책이 진행되는 내내 덱스트르와 시니스트르는 끊임없이 수다를 떨며 정신을 어지럽게 합니다. 엄청난 수다를 통해 자신들의 욕망 - 남성에게 만져지고 싶다던가, 환희를 느끼고 싶다던가, 이성의 관심을 받고 싶다던가 - 을 가감없이 드러냅니다. 그에 반해 바르브린은 자신의 욕망인 '춤을 추고 싶다'는 것 외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습니다. 심지어 남자친구와 아이에게 까지도요! 자신에게 닥친 일들인데도 바르브린이 주인공이라기 보다는 주변인의 입장에서 자신의 일을 서술한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습니다.
그리하여 가슴. 바르브린의 몸에 붙어서 바르브린을 형성하는 신체기관중의 하나이면서 바르브린을 주인이라 부르지만 결코 주인으로 인정하지는 않는 듯한 그 가슴. 바르브린이 무엇을 원하는가 보다는 자신들의 본능적 욕구들을 해결하는 것이 우선인 두 가슴! 가슴들의 활약으로 바르브린은 신체의 주인이지만 자신의 신체를 주도적으로 활용하지는 못합니다. 첫사랑인 올리비에를 만나게 해준 것도 가슴이었으며, 솔렌의 생물학적 아버지인 조슈를 선택한 것도 가슴의 일이었습니다. 솔렌에게 젖을 물리며 처음으로 제 기능을 해낸 가슴이지만 그것 역시 온전히 바르브린을 위한 일은 아니었습니다.
여성이 가진 신체의 아름다움을 예술로 승화시키지만 정작 여성성의 상징이라 생각되는 '가슴'을 여성의 신체에서 배제시키는 발레는 두 짝의 가슴과 그로 인해 꼬이는 남자들, 주변 남자들에게 휘둘리기만 하는 바르브린과 너무도 닮은 모습이었습니다. 바르브린이 발레를 그만두고 현대무용을 선택한 뒤, 젖가슴 두 쪽을 포함한 신체의 진정한 주인이 되어, 가슴이 지상을 향하게 하는 추가 아니고 그녀를 하늘로 솟아오르게 할 풍선이 되도록 만드는 모습은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감동을 전해주었습니다. (이 감동을 잘 전달할 수 있으면 좋을텐데, 제 배움이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두 쪽의 가슴의 엄청난 수다와 바르브린의 가슴을 향한 세상의 시선과, 그녀의 가슴을 바라보는 (주로)남성들의 시선이 과거에 겪었던 일들을 기억나게 하면서 울컥! 하고 혈압 오르게 했지만, 그 모든 화를 이겨내고 맞이한 결말은 희망적이었기에 꾹 참고 읽은 보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바르브린이 젖가슴(남성,제도,기득권,타인의 시선 등)에 끌려다니지 않고 신체의 온전한 주인이 되면서 날아오를 수 있었듯이 저를 포함한 이 시대의 여성들 또한 스스로의 주인이 되어 날아오를 수 있기를 바라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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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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