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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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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님은 보고 잪으지요오…… 똥은 매랍지요오…….”

  하기야 춘풍이는 당초부터 순금에게 버거운 상대이긴 했다. 범보다 무서운 아버지도 매번 속수무책으로 춘풍이한테 당하고만 지내는 판인데, 그 춘풍이 입을 무슨 재주로 틀어막을 수 있겠는가. 결국 보속을 늦추면서 순금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흘리고 말았다. 그니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호구에서 벗어날 수 있게끔 때맞춰 구원의 손길을 파송하신 여호와 하나님에게 감사했다. 그리고 그 사역에서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된 춘풍이를 향한 감사의 염이 그니의 마음을 따스하게 데우고 있었다. 비록 집안에서 시방 아버지라는 또 다른 호구가 거대한 입을 한껏 벌린 채 기다리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그니는 이제 두려울 게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했다.

  “노잣돈은 똑 떨어졌지요오…….”

  갑자기 어디선가 이상한 노랫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를 놀려대는 소리를 어린 순금이 듣고 있었다. 부엌어멈 섭섭이네가 목소리에 짓궂은 노랫가락을 실어 어린 아씨를 마구 놀려대는 중이었다.

  알나리깔나리, 순금이는 춘풍이 시악시라네!

  부엌어멈 딸인 섭섭이뿐만 아니라 또래의 다른 조무래기들까지 합세해서 순금의 주위를 뱅뱅 돌며 일제히 목청을 드높이기 시작했다.

  알나리깔나리, 춘풍이가 순금이 신랑 되얐다네!

  어느덧 눈앞으로 다가선 감나무골을 바라보며 순금은 아직도 귓바퀴를 쟁쟁히 맴도는 그 노랫소리에 잠시 귀를 기울였다. ‘알나리깔나리’로 시작되는 그것은 세월이 불러주는 노래요 세월이 던져오는 놀림이었다. 구만리장천을 훨훨 날아 어느 겨를에 감나무골 어귀로 되돌아온 과거의 시간이 순금하고 어깨를 나란히 해서 동행하는 중이었다. 오랫동안 아스랗게 잊고 지냈던, 먼먼 옛날 일화 한 도막이 하필이면 왜 그 시간에 그런 상황에서 덩두렷이 되살아나는지 당최 알다가도 모를 노릇이었다. 이미 완숙한 여인의 경지에 들어섰는데도 순금은 댕기머리 시절 그 조무래기들 놀림노래를 떠올리며 그 나이 계집애처럼 어둠 속에서 낯꽃을 홧홧이 붉혔다.

  우연한 실수였다. 그 실수가 놀림의 빌미였다. 허연 이빨을 드러낸 채 감사납게 으르렁거리는 개한테 쫓겨 집안으로 뛰어들다 아무데나 가까운 방으로 피신한 것이 실수라면 실수였다. 겁에 질려 정신없이 허둥대던 나머지 천석꾼 대지주 외동딸만이 신을 수 있는 꽃당혜를 그만 토방에 아무렇게나 벗어던진 것이었다.

  “오매, 오매, 요게 무신 재변이디야!”

  성난 개를 대문간에서 멀리 내쫓고 돌아온 부엌어멈이 다짜고짜 탄성부터 터뜨렸다. 순금 또래의 딸을 둔 젊은 부엌어멈은 구구구 암비둘기 우는 소리로 괴상하게 웃어대기 시작했다.

  “시상에나, 원 시상에나, 우리 순금이 아씨 요 기구망칙헌 팔자를 장차 으찌 혀야 옳을꼬이!”

  연방 호들갑떨면서 섭섭이네는 질자배기 깨지는 소리로 울안에 거처하는 사람 모두를 다급히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방 안에서 놀란 가슴을 가라앉히느라 가쁜 숨만 색색거리고 있던 순금은 부엌어멈의 호들갑을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다. 방문 창호지에 뚫린 구멍으로 바깥을 빠끔히 내다보면서, 저게 웬 굿판일까, 하고 고개만 갸웃거렸다.

  “워메, 워메, 참말로 우리 순금이 아씨 큰일 나 뿌렀구만!”

  부엌어멈 호들갑에 이끌려 널따란 울안 곳곳에서 달려 나온 남녀노소 아랫것들이 행랑채 마당에 그득 모여 웅성거리고 있었다. 그들은 하나같이 목을 기다랗게 뽑아 토방께를 기웃거리면서 터져 나오는 웃음을 주체하지 못한 채 끼리끼리 시시덕거렸다.

  “와따매, 저게 뭣이다냐? 우리 순금이 아씨 꽃당혜를 영락없이 빼다박은 저것이 대관절 어느 뉘 꽃신이다냐?”

  “우리 순금이 아씨 꽃당혜가 틀림없네그랴! 그러고 또 거룻배 사촌맨치로 너부데데
허게 생겨먹은 저 물건은 춘풍이놈 흔털뱅이 짚세기가 틀림없고!”

  “시상에나, 시상에나, 금지옥엽 우리 아씨께서 으쩌다가 그 잘난 신랑감들 죄다 제쳐두고 해필이면 춘풍이 같은 벅수를 배필로 골랐을꼬!”

  그제야 순금은 어마지두에 뛰어든 그 방이 하필이면 머슴들 거처임을 깨달았다. 비로소 맡아지는 머슴방 특유의 퀴퀴한 홀아비 냄새가 갑자기 오장을 확 뒤집기 시작했다. 천석꾼 외동딸로서 체모를 잃지 않으려고 제딴은 한껏 음전을 빼면서 순금은 방문을 열고 나이 많은 아랫것들 앞으로 조신하게 납시었다. 꽃신을 찾느라 토방을 두리번거리는 순금을 보고 마당에 모인 모든 입들이 한꺼번에 웃음보따리를 풀어놓았다. 영문도 모르는 채 졸지에 웃음가마리 신세가 된 순금은 발갛게 홍조 띤 낯꽃으로 오로지 꽃신 찾는 일에만 고부라지는 시늉을 했다. 드디어 찾았다. 앙증스레 자그맣고도 호사스러운 꽃신 한 짝이 엄청나게 큰 짚신짝 안에 옴쏙 들어앉아 있었다.

  “알나리깔나리, 순금이 아씨는 춘풍이 시악시라네!”

  순금이 제각각 따로 동떨어져 있는 꽃신 두 짝을 수습해서 발에 꿰는 동안 구경꾼들 사이에서 수상쩍은 노랫가락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아까부터 사람들이 왜 자꾸만 춘풍이란 이름에다 제 이름을 비끄러매는 것인지 아직도 그 까닭을 알 수 없어 순금은 가장 임의로운 상대인 부엌어멈을 눈으로 찾았다. 섭섭이네가 실실 웃는 낯꽃으로 다가와 사정을 친절히 설명해 주었다. 남자 신발과 여자 신발이 한데 포개질 경우, 그것은 하늘이 정해 준 배필을 뜻하기 때문에 신발 임자 되는 남녀는 언젠가 반드시 부부의 연을 맺을 팔자라는 이야기였다.

  “알나리깔나리, 춘풍이가 순금이 아씨 신랑 되얐다네!”

  때마침 바깥일 나갔던 춘풍이가 미련하게 큰 허우대를 들이밀며 대문간에 몰골을 나타냈다. 순금 대신 이번에는 사람들이 그쪽으로 우르르 몰려가 춘풍이를 놀려대기 시작했다.

  “춘풍이 너 이놈, 참말로 수지 맞은지 알거라! 오날서부텀 니놈은 우리 순금이 아씨 신랑이다!”

  “으, 신랑…….”

  어찌 돌아가는 셈판인지 알아볼 필요도 없이 춘풍이는 대뜸 천진스러운 반편이 낯꽃을 활짝 펴면서 해맑게 웃기부터 했다.

  “으떤 놈은 참말로 배가 터지게 복도 많구만. 두엄자리에 앉었다가 꿩 줏딧기 공력 하나 안 들이고 선녀 같은 우리 아씨를 각시로 얻었으니깨!”

  “으, 각시…….”

  뭐가 그리도 좋은지 춘풍이는 수많은 사람들에 둘러싸인 채 벌쭉벌쭉 하염없이 웃어대기만 했다. 순금은 그 꼴을 한참 멍하니 바라보다가 그예 참고 참았던 울음보를 으앙 터뜨리고 말았다.
 
순금은 자그마치 사흘 밤낮을 꼬박이 울었다. 둘이 먹다 셋이 죽어도 모를 온갖 별미의 군입정거리도 다 소용없었다. 부모 나이 또래 아랫것들이 번차례로 돌아가며 업어 주고 안아 주고 목말 태워 주는 것도 모조리 다 싫다고 퇴박했다. 순간의 실수로 말미암아 등신인 줄 천하 사람들 죄다 아는 춘풍이한테 꼼짝없이 시집갈 도리밖에 없게 된 제 기구한 팔자가 너무 서럽고 분하고 억울해서 코흘리개 아씨는 마냥 어기찬 울음으로 세월을 삼으며 지내야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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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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