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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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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물도 시방 우아래가 있는 법이고, 일에도 시방 선후가 있는 법이네. 따른 어떤 일보담도 시방 우선적으로 시방 어르신을 호랭이 아가리에서 빼돌리는 것이 시방 제일 화급허고도 절박헌 일인지를 자네 혼자만 몰르고 있을 뿐이지 춘풍이 같은 버꾸도 시방 죄다 알고 있다네. 자네는 시방 그런 줄이나 알고 시방 딴소리 말고 그냥 얌전허니 있으소!”


 


  아버님을 빼낼 무신 묘책이라도 찾어내셨습니까?”


 


  묘책? 이 사람아, 묘책 한 보따리 옆구리에 척 끼고 있다면 나가 시방 뭣 땜시 동상들 면전에서 시방 요로코롬 우아랫 입설에 쩍쩍 금이 가드락 애간장만 바싹바싹 태우고 자빠졌겄는가!”


 


  자신의 말상대가 오랫동안 자리보전하고 누워 지낸 중병환자라는 사실도 잊은 채 진용은 버럭버럭 소가지를 부렸다. 천석꾼 살림의 집사요 대지주 광작농사의 도마름 신분으로서 매사에 계산속 빠르고 언제나 행동거지 잽싸기 비길 데 없던 진용도 이번 일만큼은 도무지 뭘 어찌해야 좋을지 전혀 맥이 안 잡히는 모양이었다.


 


  잠자다 끌려나와 동옷바람으로 압송당한 영감을 위해 관촌댁이 나들잇벌 입성을 일습으로 챙겨 꾸려준 보퉁이 받아들고 진용은 새벽바람 맞으며 읍내로 달려갔다. 하지만 까마아득히 높은 경찰서 문턱을 끝내 넘어서지 못한 채 공연히 헛물만 켜고 돌아서야 했다. 워낙 불온사상과 국체문란 사건에 무겁게 연루된 피의자니만큼 단속이 지나치게 엄중해서 돈주머니 열어 놓고 백방으로 순사들 접촉해 봐도 당최 바늘귀만한 구멍조차 안 보이더라는 것이었다. 장조카의 타고난 수완 하나 꽉 믿고 잔뜩 기대를 걸었던 터인지라 관촌댁은 반가운 기별은 고사하고 영감 코쭝배기조차 구경 못 했다는 진용의 처량한 보고에 그만 망연자실하고 말았다. 식전에 일껏 꾸려 보냈던 보퉁이 돌려받기 무섭게 관촌댁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수건으로 질끈 테메운 채 안방에 벌렁 몸져누워 버렸다.


 


  나 원 참, 드러워서! 원 세상에, 그 좋고도 또 좋은 돈 보따리를 시방 한 짐 그득 짊어지고 발싸심허고 찾어댕겨도 시방 당최 멕혀들 기미가 안 뵈는 경우도 다 있드라니깨!”


 


  진용은 자존심이 몹시 상해 있었다. 일찍이 뛰어난 수완과 변통수 모르는 충직성을 높이 산 상곡 어른이 친자식 다 제쳐놓고 집안 대소사를 거의 일임하다시피 할 정도로 중용해 온 진용이었다. 여자 턱수염 뽑아오는 일 빼고는 뭐든 주문하는 대로 척척 해치우던 진용이 그처럼 낙담할 지경이라면 이미 볼장 다 본 셈이었다.


 


  딱 한 가지, 시방 자라 콧구녁만헌 구녁이 하나 남어 있기는 헌디…….”


 


  진용이 혼잣말 비슷한 가락으로 슬쩍 운을 떼었다. 순금과 부용이 깜짝 반색을 드러내면서 진용의 입을 주목했다. 다음 말을 다그치는 부용의 시선을 슬그머니 회피하면서 진용은 무심한 듯 방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저 뭣이냐…… 고것이 시방, 글씨…… 말 끄내기가 시방 쪼깨 거시기헌 것 같어서…….”


 


  지금 이 판국에 우리가 찬밥 더운밥 개릴 형편입니까? 자라 콧구녁이든 바늘구녁이든 좌우지간 가망성이 뵈는 구녁이라면 무신 수단을 쓰든지 간에 눈 질끈 감고 한 번 부닥쳐봐야지요. 어서 말씀허십쇼, 형님.”


 


  거푸 재촉을 받고 나서야 진용은 오랜 망설거림에서 가까스로 빠져나왔다. 그는 자칫 윗목의 사촌누이 쪽으로 빗나가는 일 없게끔 자신의 시선을 공들여 단속하면서 오로지 부용의 얼굴만을 상대로 느릿느릿 입을 열었다.


 


  산서 바닥에 시방 떠돌아댕기는 소문으로는…… 시방 그 동척농장 기꾸찌라는 작자가 말이여…….”


 


  형님!”


 


  무방비 상태에서 불쑥 허를 찔린 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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