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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ringstar
  1.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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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로 부르지 못하게끔 일제가 오래전부터 강제해 온, 유명한 금지곡 찬송가들 가운데 한 곡이었다. 순금은 잠시 어리둥절한 눈초리로 본정신이 아닌 듯한 사모의 이상한 행동을 바라보았다. 그러다 퍼뜩 정신을 차려 성가대석 근처에 놓인 풍금한테 달려갔다. 비어 있는 반주자 자리를 꿰차고 앉자마자 그니는 평안과 희락이 있던 시절 예배 때마다 익숙하게 다뤄 나온 솜씨로 발판을 힘차게 구르면서 풍금을 다그치기 시작했다. 그니는 뱃구레가 터질 지경으로 풍금한테 자귀 나도록 바람을 그뜩 먹인 다음 금지곡 찬송가 곡조에 맞추어 건반을 눌러대기 시작했다. 그러자 기나긴 휴업 끝에 오랜만에 기력을 되찾은 풍금이 반주자의 뜻을 받들어 힘찬 화음들을 예배당 바닥에 좍좍 끼얹기 시작했다.


 


  땅들이 변하고 물결이 일어나


  산위에 넘치되 두렵잖네


 


  이방이 떠들고


  나라들 모여서 진동하나


  우리 주 목소리 한번 발하시면


  천하에 모든 것 망하겠네…….


 


  아버지의 금족령에 발이 묶인 채 집안에만 갇혀 지내느라 교회를 향해 길을 나설 엄두조차 못 내던 처지였다. 예배에 참예할 기회를 일절 빼앗긴 지 몇 달, 그러니까 실로 오래간만에 마음껏 발휘해 보는 반주 솜씨였다. 건반을 누르는 손끝을 출발한 기쁨의 잔잔한 파도가 어느새 격랑으로 변해 방조제를 유린하면서 뭍을 휩쓸듯 몸통을 거쳐 가슴에 닿기 무섭게 감격의 거센 해일로 바뀌었다. 그렇듯 충만한 기쁨이 반주자의 팔로 하여금 파들파들 경기마저 일으키게 만들었다. 순금은 풍금 반주에 곁들여 사모와 함께 목청껏 금지곡 찬송가를 부르는 동안 그칠 겨를 없이 비어져 나오는 눈물을 도무지 주체할 수 없었다.


 


  만유주 여호와


  우리를 도우니 피난처요…….


 


  예배당 내부에서 터뜨리는 두 가닥 목청 말고도 창문 밖에서 여러 가닥 다른 목청들이 한꺼번에 안으로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인지 모르게 예배당 밖의 남녀 성도들도 찬송 대열에 가세하고 있었다. 감사나운 호통으로 해산을 명령하는 헌병들하고 숨바꼭질 장난이라도 벌이듯 성도들은 총검의 제지를 요리조리 잘도 피해 다니며 예배당 둘레를 빙빙 도는 틈틈이 몇 사람씩 창문마다 달라붙어 내부의 지휘 동작을 따르며 금지곡 찬송가 부르기에 잔뜩 고부라지고 있었다. 예배당 건물 안과 밖이 합력해서 급조한 대규모 성가대가 지휘봉도 없이 맨손을 휘저어대는 사모의 지휘 동작에 충실히 복종하고 있었다. 목청껏 불러 젖히는 성도들 제창이 이제 밤을 맞아 그만 잠자리에 들려는 참이던 산서의 산야를 자꾸만 흔들어 깨우고 옆구리 꾹꾹 찔러가며 연방 성가시게 굴고 있었다.


 


  세상에 난리를 그치게 하시니


  세상에 창검이 쓸데없네…….


 


  순금은 수십 명 남녀 성도들이 보내오는 뜨거운 호응 덕분에 반주하는 일에 더욱더 신명을 낼 수 있었다. 그니는 다리 가랑이에서 더운 바람이 폴싹폴싹 일어나리만큼 온 힘과 온 정성 죄 기울여 미친 듯이 발판을 굴러대는 행짜를 저지름으로써 사람으로 치면 거지반 환갑 나이에 다다른 구닥다리 풍금으로 하여금 도무지 견딜 재간 없도록 마구 닦달질하고 있었다.


 


  높으신 여호와


  우리를 구하니 할렐루야


  괴롬이 심하고 환난이 극하나


  피난처 있으니 여호와요…….


 


  못질하는 소리가 예배당 건물 전체를 텅텅 울리기 시작했다. 정면 출입문이었다. 헌병들이 출입문에다 두꺼운 널판때기 두 개를 가위표 모양으로 어긋매끼게 지르고 대못을 쾅쾅 박아 출입 금지 또는 사용 금지를 뜻하는 살치기 작업을 단행하는 중이었다. 못질이 계속됨에 따라 창문 밖의 찬송 소리는 어느새 울음을 동반한 통성 기도로 바뀌어 있었다. 곧이어 종루 쪽에서 놋종이 연방 덜그렁거리며 내뱉는 볼멘소리가 잇달아 들려오기 시작했다. 헌병대가 병력을 두 패로 나누어 한 패는 출입문에 살치는 일을 맡고 다른 한 패는 허공중에 매달린 놋종을 땅으로 끌어내리는 모양이었다. 통성으로 부르짖는 기도 소리가 더욱 기승스러워졌다. 순금은 반주자석에서 몸을 발딱 일으켜 세우면서 당장 밖으로 달려 나갈 태세를 취했다. 그러자 사모가 유령의 성가대를 지휘하던 팔을 아래로 내려뜨리면서 밑바닥을 꾹꾹 다지는 손동작으로 순금에게 마음의 음조(音調)를 한 옥타브 낮출 것을 지시했다.


 


  최 선생, 우리 주님 머리 되시는 교회를 훤화하는 저 소음 따위에 일일이 대응할 가치가 없어요. 우리가 마음속 귓문을 꽉 닫고 있으면 그만이지요.”


  그래도 사모님…….”


  저들이 무슨 행패를 부리든지 간에 우리 목사님은 승리하신 게 분명하지요. 결국 우리 하나님께서 거두신 승리지요.”


 


  순금은 반주자석에 도로 엉덩이를 부리고 말았다. 지휘자석의 사모가 몸을 낮추어 반주자석으로 조용히 다가왔다.


 


  최 선생한테 드릴 선물이 있네요.”


 


  사모는 소맷부리 안에서 뭔가를 부스럭부스럭 꺼내 순금의 면전에 슬며시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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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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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표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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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날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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