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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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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은 두툼한 솜이불 자락을 욕심껏 끌어올려 머리끝까지 푹 뒤집어썼다. 그다지 울고 싶은 기분이 아닌 것 같은데도 어찌 된 셈판인지 눈물이란 놈이 저 스스로 알아서 맥없이 비어져 나오기 시작했다. 주인하고는 아무런 상관도 없는, 뜨내기 손님과도 같은, 아무리 문전 축객하려 해도 무가내하로 버티는 각설이패 같은, 그야말로 불가항력의 눈물이었다. 두둑이 허물어지면서 무넘기가 터져버린 논배미 같았다. 눈자위에서 눈물이 걷잡을 수 없이 흘러내리면서 눈시울 거치고 볼따구니 지나 베갯잇까지 속속들이 적시는 중이었다. 부용은 좀처럼 그칠 기미 안 보이는 그 속수무책의 눈물더러, 네놈 하고 싶은 대로 양껏 한번 해 보라고 한동안 그냥 방치해 버렸다. 그것은 아마, 남은 평생 멋쟁이 칠피구두 신을 기회 다시 오지 않는다고 영혼이 귀띔해 주는 소리 듣고 슬픔에 휩싸인 육신이 흘리는 눈물일 것이었다. 영혼은 일찌감치 체념의 경지에 들었을지 모르지만 육신이란 놈에게는 아직도 세상에 대한 미련이 만만찮게 남아 있는 듯했다. 영혼으로부터 절망에 찬 최후통첩을 접수한 육신이 갑자기 비탄에 잠기는 것도 결코 무리는 아닐 성싶었다. 부용은 제 존재를 영혼과 육신으로 정확히 양분한 다음 서로 이해가 상충되는 두 존재 가운데 어느 쪽도 역성 들지 않은 채 순전한 방관자 입장에서 그것들 간의 심각한 갈등양상을 잠자코 구경만 하고 있었다.


 


  그때였다. 갑자기 이불자락 한쪽 끝이 소리 없이 들리면서 위로 올라갔다. 곧바로 따스한 손길이 부용의 이마 위로 명주 헝겊처럼 나긋이 내려앉았다. 그 손길이 방금 전까지 눈물깨나 흘렸던 사내 속눈썹에 아직도 그렁그렁 맺혀 있는 눈물방울들을 마치 농익은 앵두알 거두는 솜씨로 조심스럽게 똑똑 따냈다. 어느 겨를에 방안으로 들어와 앉았던지, 머리맡에서 누님이 웅숭깊은 눈빛으로 병든 동생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진용이 형님이랑 주고받던 말, 다 엿듣고 계셨던가요?”


 


  부용의 추궁에 순금은 보일락 말락 미소부터 지었다.


 


  기생첩맨치로 애지중지허던 구쓰를 진용이 오라버님한티 선사헌 것은 참말로 잘헌 일 같다.”


 


  잘허고 잘못허고가 어디 있습니까. 인제는 쓸모가 없어져부렀기 땜시 그냥 배깥에 내다버리는 폭 잡고 형님한티 인심 팍 써부린 겁니다.”


 


  아니다, 후제 쓸모가 뽈딱 되살어나는 날 반다시 돌아올 게다. 그날이 오면, 그때는 내가 새 구쓰를 너한티 선사허마. 아까막시 그놈보담도 몇 배는 더 비싸고 잘생긴 놈으로말이다.”


 


  저한티 그런 날이 돌아올 거라고 누님은 진짜로 믿으시는 겁니까?”


 


  그러면 너는 안 믿는단 말이냐?”


 


  오누이는 서로 어긋물린 톱니 틈새에서 연방 삐거덕거리는 소리 비어지는 것 같은 대화를 몇 고팽이 더 주고받았다.


 


  누님, 제 말 잘 들으십쇼. 희망이란 이름 가진 엄마는 재를 넘다가 벌써 죽어뿌렀습니다. 숲속에 숨어서 요긴목을 지키던 절망이란 이름 가진 호랭이한티 일찌감치 잡어멕힌 것이지요. 누님은 시방 그런지도 모르고 절망이란 놈한티 속아서 희망이 반다시 살어 돌아올 거라고 헛 믿는 것이지요. 절망이란 놈이 고갯마루에서 엄마 희망 잡어먹고 엄마 희망 옷으로 갈어입고 엄마 희망 얼골로 변장허고 나타났지요. 누님은 시방 그 털북숭이 절망이 집을 보던 새끼 희망 남매들 귀에다 대고, 엄마 희망이 돌아왔으니깨 어서 문을 열으라고 속살거리는 소리를 듣고 있는 겁니다. 그렇지만 누님, 속지 마십쇼! 털북숭이 가짜 희망이란 놈한티 절대로 문을 열어줘선 안 됩니다!”


 


  어쩐지 많이 귀에 익은 줄거리 같고나.”


 


  아니지요, 그게 아닙니다. 엄마 희망이 벌써 죽어 없어져뿌렀는디 어린 자식 희망들이 문고리 붙잡고 밤새드락 죽살이쳐봤자 무신 소용이 있겄습니까. 차라리 일찌감치 문 활짝 열어젖히고 절망이란 호랭이를 집안으로 불러들여서 속전속결로 끝장을 봐뿌리는 편이 더 낫을지도 모르지요.”


 


  부용아, 내 눈치 볼 필요 없다. 눈물주머니든지 울음보따리든지 아즉도 덜 풀었걸랑 마저 다 풀어라. 한바탕 서럽게 실컨 울고 나면 기분이 다소 풀릴지도 모른다.”


 


  여태까장 인생 살어오는 동안에 누님은 눈물이 바닥 나드락 원도 한도 없이 울어보고 잪은 적이 없었습니까? 만약에 없었다면, 우리 남매찌리 시방 의초롭게 작반혀서 밤이


새드락 거쿨지게 한번 울어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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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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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대표사진

    안또니우스

    작성일
    2012. 4.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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