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springstar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2.6.4
“두 청춘남녀 사이에 승부는 벌써 오래 전에 다 끝났어요. 결국 승자는 연실 양으로 밝혀졌지요.”
“승부라고요? 승자라고요? 승부를 겨룬 적도 없는데 승자나 패자가 있을 턱이 있는가요?”
“그렇고말고요. 최부용 군이 패자고 이연실 양이 승자랍니다. 패자가 간절헌 목소리로 지금 승자를 부르고 있어요. 과거지사야 어찌 되얐든지 간에 인제는 승자 자격으로 연실 양 쪽에서 불쌍헌 패자한티 아량을 베푸실 때가 되얐답니다. 그 멀고도 먼 길을 돌고 돌아서 모처럼 산서까장 오셨다가 그 비열헌 인간 얼골 한 번도 구경 안 허고 그냥 발길 홱 돌려도 무방헐 정도로 지난날 두 사람 관계가 별무가관이었다고 결론 내리고 잪지는 않습니다. 그것이 무의무신을 전제헌 잠시간 불장난이나 소꼽질 같은 행동이었을 거라고는 더더군다나 생각허고 잪지 않습니다.”
“최부용이란 인간을 만났던 기억을 뇌리에서 백지 상태로 되돌리고 싶어서 제가 얼마나 오래오래 몸부림치고 얼마나 처절하게 죽살이쳤는지 누님 되시는 분께서는 짐작이나 하실 수 있으셔요? 흔히들 하는 말로, 뼈를 깎고 생살을 도려내는 고통이었어요. 이제 그 상처가 대충 아물어서 과거라는 악몽에서 그럭저럭 벗어날 만하니까 별안간에 누님 되시는 분한테서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편지가 불쑥 날아든 것이어요.”
이연실이 한 차례 심호흡을 통해 가슴속에 징건히 고여 있던 감정의 찌꺼기를 방출하고자 하는 듯했다.
“이렇게까지 말씀 드렸는데도 누님 되시는 분께서는 여전히 최부용이란 인간한테 베풀어줄 아량 같은 것이 제 흉중에 남아 있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건가요?”
“칭호 문제로 아까부텀 피차 입장이 거북헌 것 같고만요. 마땅헌 칭호가 생각 안 난다면 그냥 짤막허게 순금 씨라 부르셔도 괭기찮어요.”
그러자 얼굴 가린 양산 끝이 위아래로 연방 들썩이기 시작했다. 터져 나오려는 오열을 가까스로 억누르고 있음이 분명했다. 양산을 옆으로 걷어치움과 동시에 이연실을 꽉 보듬어주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으면서 순금은 소곤소곤 말했다.
“같은 여성 입장에서 연실 양 그 심정은 물론 이해허고도 남지요. 그렇지만 연실 양을 요대로 그냥 돌려보낼 수는 없어요. 시방 사람이 죽어가고 있으니깨요.”
그러자 갑자기 양산이 위로 번쩍 들려 올라갔다. 눈물감탕을 이룬 이연실의 눈에 정으로 쪼은 자리 같은 경악의 빛이 확처럼 새겨지고 있었다.
“부용 씨 상태가 그 정도로 위중한가요?”
“위중하다마다요. 현재 폐결핵 삼기를 통과허는 중에 있어요. 죽음을 푯대로 정허고 매일매일 달음박질허는 형국이지요. 육신이 앓는 병도 물론 위중허지만 영혼을 죽이는 병은 그보담 훨씬 더 위중헌 상태지요. 아즉까장은 그럭저럭 육신이 목숨을 부지허고 있는 것 같어도 영혼은 벌써 오래 전에 죽은 거나 매일반이랍니다.”
“아!”
이연실의 입에서 외마디 부르짖음이 터져 나왔다. 그와 동시에 주인의 손을 떠난 양산이 아래로 떨어져 내리면서 뱅그르르 매암을 돌았다. 마침내 이연실이 땅바닥에 퍽석 퍼벌하고 앉았다. 망연자실해 있는 주인을 대신해서 순금은 허리를 굽혀 굴러가는 양산을 붙잡았다.
“인제는 모든 것이 다 연실 양 마음먹기 하나에 달려 있지요. 한 생명 살리고 죽이는 문제가 시방 연실 양 손에 달려 있어요. 연실 양, 내가 이렇게 애원허겄어요. 제발 우리 부용이 조깨 도와줘요! 제발 젊은 생령 하나 살려줘요! 연실 양한티는 얼매든지 그럴 능력이 있다는 걸 나는 ale어요!”
“제가 무슨 잘못을 얼마나 범했다고, 제가 무슨 죽을죄를 졌다고 누님 되시는 분께서는 무고한 저를 이다지도 괴롭히시는 건가요? 제가 무슨 능력자나 된다고, 저 같은 것한테 무슨 힘이 있다고…… 순금 씨는 저한테 그런 무리한 요구를 하시는 건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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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