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springstar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2.6.5
질척질척 물기에 젖은 목소리로 이연실이 항변을 늘어놓았다. 순금은 잠자코 남의 양산을 제 임의대로 접어버렸다. 아까부터 자꾸만 가로거치던 방해물을 제거하고 나서 순금은 연실의 어깨를 양팔로 욕심껏 얼싸안았다. 잠시 나무토막처럼 뻣뻣이 굳어 있던 연실이 느닷없이 자세를 허물어뜨리면서 순금의 가슴팍에 얼굴을 묻어왔다. 순금의 품안에 안긴 채 연실은 어린애처럼 서럽게 느껴 울기 시작했다.
“왜 저를 자꾸만 괴롭히시는 것이어요? 왜 자꾸만 제 입장을 곤란하게 만드시는 것이어요?”
순금은 마치 이제 막 곧추앉으려 용을 쓰는 눈자라기 아이 다루는 어미처럼 이연실을 단단히 곁부축했다. 그리고 그 눈자라기로 하여금 가장 기초단계이자 또한 가장 어려운 단계이기도 한, 생후 맨 처음 곧추앉기에 도전하게끔 용기를 북돋아주었다.
“쬐끔도 염려헐 것 없어요. 여직 자신도 모르고 있던 비상헌 능력이 시방 연실 양 내부에서 때를 지달리고 있어요. 내 편지 받고 연실 양이 최초로 산서행을 결심허던 바로 그 순간부텀 우리 부용이는 벌써 절반쯤 구원받은 거나 다름없다고 나는 확신허고 있어요.”
구원이라, 하고 순금은 마음속으로 가만히 읊조렸다. 구원은 대관절 어디에서 오는 것일까. 그리고 그 구원은 대관절 누구로부터 오는 것일까.
두메산골 풍경을 약략스레 비추던 해는 성미도 급하게 어느새 서쪽 나라로 꼴딱 넘어가 있었다. 세상을 온통 벌겋게 물들이던 놀빛도 거침없는 기세로 밀려드는 어둑발 세력한테 이미 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좀 전의 놀빛 대신 어둑발 한 뭇씩 각자 등짐 지고 이연실과 함께 집으로 향하는 동안 순금의 가슴속에서는 찬양이 그득 넘쳐나고 있었다. 창조주 하나님의 역사하심과 섭리하심은 기실 너무도 오묘하고 절기해서 인간의 상식으로는 감히 그 크기와 높이와 너비와 깊이를 측량할 재간이 없음을 새삼스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이연실의 강퍅한 마음을 누그러뜨려 궁벽한 산골의 옛 남자 거소까지 구원의 사절로 파송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가이없는 은택에 순금은 감사하고 또 감사했다.
순금은 발소리를 죽인 채 어두컴컴한 구석방을 향해 살금살금 다가갔다. 방문 앞에서 잠시 귀를 기울여 안쪽 기척을 살피고 나서 부용이 시방 깊은 잠에 빠져 있다고 지레짐작했다. 이제는 소리 없이 방안에 잠입한 다음 부용의 눈두덩을 불시에 손바닥으로 덮쳐 누르며, 요게 누구게, 하고 소리 칠 차례였다. 잠든 동생을 깨워, 밖에 시방 누가 와 있는지 알아맞혀보라며 방문 쪽을 손가락질한 작정이었다. 깜짝 놀라 허둥지둥 어찌할 바 모르는 부용의 자태를 머릿속에 그리면서 문고리를 살그머니 잡아당겼다. 방문이 열리는 순간, 깜깜한 내부로부터 회오리바람처럼 썰렁한 기운이 덮쳐왔다. 평지로 알고 걷다가 낭떠러지 끝을 만난 푼수로 순금은 대뜸 당혹감에 휩싸이고 말았다. 도낏날 같은 불길한 예감이 먼저 정수리부터 쪼갠 다음 등골을 타고 직선을 쩍 내리긋는 순간이었다.
없었다. 방안은 텅 비어 있었다. 눈을 씻고 봐도 부용의 모습은 안 보였다. 부용이 방안에 없다는 사실이 명백해지자 순금은 몹시 당황했다. 저보다 한층 더 당황해 하는 다른 여인이 곁에 있다는 사실도 까먹은 채 순금은 허겁지겁 안방으로 달려가면서 어머니를 소리쳐 불렀다.
“싸게 나오셔요! 싸게요!”
하지만 안방 역시 아무런 반응도 보내오지 않았다.
“섭섭이네! 섭섭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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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