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의 별에도 봄이 오면

springstar
- 공개여부
- 작성일
- 2012.5.30
붉은 저녁놀을 앞뒤로 살랑살랑 흔들며 다가오는 화사한 꽃무늬 양산이 별안간 어떤 설명하기 힘든 예감을 다빡 덮씌우는 바람에 순금의 가슴은 쿵덕쿵덕 널뛰기를 시작했다. 양산의 존재는 늦가을 시골길하고 도무지 어울리지 않는 치렛거리에 불과했다. 더군다나 햇덩이를 통째로 눈에 담아도 전혀 뜨겁게 느껴지지 않으리만큼 이미 풀이 팍 죽은 석양볕인지라 굳이 양산의 도움을 빌릴 필요조차 없는 시간대였다. 내리쬐는 햇볕 때문이 아니라 낯선 외지인을 주목하고 경계하는 산골 농투성이들 따가운 시선으로부터 자신을 엄폐할 요량으로 받쳐 든 양산일시 분명했다.
곧잘 걸어오던 양산이 갑자기 움직임을 딱 멈추었다. 마치 시골 불량배가 타관 뜨내기 상대로 텃세 부리듯 앞길 떡 가로막고 있는 웬 사람 때문이었다. 어떤 예감이 몰고 오는 긴장감으로 말미암아 순금은 길 한복판에 우뚝 버티고 선 채 낯선 양산에게 길을 비켜줄 생심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저어…… 실례지만 말씀 좀……”
길을 막는 상대가 시골 불량배 아닌 젊은 여자임을 언뜻 확인한 양산이 마침내 입을 열어 수줍게 첫말을 보내왔다. 순금은 벌렁벌렁 마구 뛰노는 가슴을 손바닥으로 지그시 눌러 자발머리없이 구는 심장 동계부터 먼저 다스리지 않으면 안 되었다.
“혹시……”
“여기 감나무골이란 동네가……”
“연실 양! 맞지요? 이연실 양이 틀림없지요?”
“아!”
짤막한 부르짖음과 동시에 양산 저쪽 보이지 않는 곳에서 예사롭지 않은 기척이 전해져 왔다. 터무니없이 들썩거리고 촐랑대는 감정을 도무지 어찌할 방도가 없어 순금은 영락없이 길거리에서 양민 붙잡고 불심검문하는 관헌과도 같은 자세로 양산을 향해 바투 다가들었다.
“맞어요! 맞었어요! 이연실 양이 틀림없어요!”
마치 어떤 거역할 수 없는 완력에 의해 심하게 꺼들림이라도 당하는 것 같았다. 그때까지 방패 역할을 수행하던 양산이 휙 젖혀지면서 위로 들려 올라갔다. 동시에 양산을 가리개 삼아 내내 그 뒷전에 꼭꼭 숨어 있던 젊은 여인의 얼굴이 눈앞에 활짝 드러났다.
“아, 최순금 씨……”
달랑 이연실이란 성명삼자만 놓고 순금이 혼자서 제멋대로 추측했던 생김새와 별반 차하지지 않는, 상상 속에서 자주 그렸던 초상화하고 어금지금한 미태였다. 길에서 우연히 마주친 남정들로 하여금 한 번쯤 뒤를 돌아보게끔 만들 법한 이목구비였다. 가슴이 벌렁거리고 마음이 들썩이기는 이연실 또한 매한가지인 듯했다. 최순금이란 성명삼자 정도만 겨우 알았을 뿐 용모파기에 관해서는 전혀 백지 상태이던 편지 발신인과 노상에서 공교롭게 딱 맞닥뜨린 그 초대면 상황에 이연실은 어지간히 놀라는 기색이었다. 너무 당황한 나머지 잠시 어찌할 바를 모르고 쩔쩔매기만 하는 얼뜬 거동이나 표정이 마냥 요조해 보이던 첫인상에 상당한 흠집을 내고 있었다.
“결국에는 요로콤 와주셨고만요! 요런 날이 반다시 오리라고 믿고 나는 벌써부텀 그때를 학수고대허고 있었지요!”
일단 제 수중에 들어온 새가 다시는 멀리 날아가지 못하게끔 발목에 끈을 달아매는 절차와 수고가 필요했다. 웬만해서는 놓아주지 않을 요량으로 순금은 이연실의 옥색 원피스가 흉하게 구기질러지도록 팔소매 부위를 덥석 훔켜잡은 채 흔들어댔다.
“언젠가 때가 되면 연실 양이 반다시 산서로 찾어오실 거라고 철석같이 믿고 있었지요. 그러고 지금이 바로 그때지요. 연실 양이 내 간곡헌 소청을 절대로 거절허지 않으실 거라고 믿고 있었지요. 그러고 먼빛으로 요 양산을 보자마자 연실 양이란 걸 나는 한눈에 척 알어봤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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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