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달콤한 서재

노란새싹
- 작성일
- 2018.6.19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 글쓴이
- 레오 버스카글리아 저
홍익출판사
엄마. 요 며칠은 바람도 살랑 살랑 불고 책 읽기 딱 좋은 날씨인 것 같아. 엄마는 요즘 어떤 책을 읽고 있어? 나는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라고 하는 아주 멋진 책을 읽고 있어. 이 책을 쓴 ‘버스카글리아’ 교수는 대학에서 ‘사랑’에 대해 강의를 하고 있대. 참 멋지지 않아? 사랑이라니. 아마 잘 모르는 사람들은 ‘연애방법’, ‘행복한 결혼생활’ 이런 것들을 가르치나? 라고 생각할 수 도 있을거야. 난 처음에 ‘사랑? 생물학 강의를 하시나?’ 라고 생각했다니까. 누가 공대생 아니랄까봐.
이 멋진 교수님이 현대인들이 외로움에 시달리는 이유는 쳐다봐주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래. 존재한다는 기분이 들지 않기 때문에 그토록 뼈아픈 외로움에 시달리는 거라는 거지. 그래서 대학교 교정을 걸을 때마다 만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한대.
“안녕하세요. 어떻게 지내세요?”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말이야. 용기가 대단하지 않아? 이때 다양한 반응들이 나타난대. 같이 “안녕하세요.”라고 인사하는 사람. “절 아세요?” 라며 대드는 사람. ‘뭐 이런 사람이 다 있어’ 라며 무시하는 사람. 그런데도 다음 날 그런 사람을 만나면 다시 인사한대. 그 사람이 또 다시 “나를 아세요?” 라고 물으면 이렇게 대답한대. “그럼요, 어제 만났던 분이잖아요!”
이렇게 멋진 책을 매일 밤 즐겁게 읽고 있어. 사랑하며 산다는 건 어떤 걸까. 생각하면서.
어제는 휴일이었잖아. 친구와 전시회를 가기로 약속해서 지하철을 기다리며 의자에 앉아있었어. 내 가방에는 <살며 사랑하며 배우며> 책이 들어 있었지. 지하철에서 읽으려고 챙겨나왔거든. 그런데 그때 옆에 앉은 어떤 남자가 “안녕하세요.” 인사를 하는거야. 그 순간 내가 든 생각이 뭐였는지 알아? ‘이 사람 뭐지?!’였어. 경계 태세를 가득 담은 눈초리로 ‘더 이상 나에게 다가오지마.’ 라는 에너지를 팍팍 풍기며 “아. 네” 라고 겨우 대답했지. 버스카글리아 교수님이 이런 날 봤다면 참 슬퍼하셨을거야. 혹시 그 남자도 이 책을 읽었던 걸까? 라는 뒤늦은 생각도 들었어.
우린 왜 이렇게 다른 사람을 경계하고 무서워하며 담을 쌓고 살아가게 되었을까? 다른 사람들이 나를 어떻게 볼까, 지나치게 신경 쓰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받는 상처가 무서워서겠지. 가까워지면 그만큼 그 사람의 인생에 깊숙이 들어가게 되니 그 또한 두렵고 말이야. 엄마는 어때? 사람들을 만나고 사람들에게 다가가서 사랑을 표현 하는 일이 쉬어? 아니면 어려워? 나는 그 일이 참 어려워.
“상처받을까 봐 겁나요.” 라는 내 말에 버스카글리아 교수님이 흥분하며 대답을 해주셨어.
정말로 슬픈 노릇입니다. 말도 안 되는 태도 아닙니까? 가끔은 상처를 받는 것도 생활의 활력소가 될 수 있습니다. 눈물을 흘린다면 적어도 살아 있다는 뜻이니까요. 아무것도 느끼지 못하는 것보다는 고통을 느끼는 게 낫습니다. 사람들에게 손을 내밀고, 사람들을 초대하고 두려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p355)
맞아. 사랑을 하고 사랑을 표현하고 그래서 상처를 받을지라도. 사랑하지 않으면 우린 사는 게 아닐 거야. 함께 끌어안고 온기를 나누지 않는다면 사는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
얼마 전에 ‘인생나침반’ 이라는 체험 전시회를 다녀왔어. 죽음 체험을 하는 곳이었지. 하늘나라로 가는 것처럼 좁고 긴 통로에 안개가 짙게 끼여 있고 살짝 춥기까지 한 그 곳을 조용히 걸어가면 한기가 도는 곳에 내 관이 놓여있어. 관 앞에는 작은 탁자가 있지. 나는 그곳에 앉아서 연필을 들고 죽기 전 마지막 편지를 썼어. 그때 그 편지도 바로 엄마에게 썼는데. 엄마밖에 떠오르지 않더라고.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편지를 쓰면서 왜 그리 미안한 것이 많은지, 후회되는 것이 많은지, 사랑한다고 말하지 못한 것도 사무쳤어. 눈물이 그렁그렁해진 나는 편지를 곱게 접어 봉투에 넣고 신발을 벗은 후 관 안으로 들어갔어. 어두운 관 안에 들어가고 관 뚜껑이 닫히자 정말 이렇게 죽는구나. 라는 느낌이 들더라. 그렇게 누워서 가만히 천장을 바라보고 있는데 물소리가 작게 들리고, 동네 어귀에서 엄마와 아이가 이야기하는 소리들이 들려왔어. 사람들이 살아가는 소리들이 아주 작게, 희미하게 들리다가 다시 물소리가 났어. 흘러나가는 물소리? 그러더니 “쿵.쿵.쿵” 관 뚜껑을 두드리는 소리가 나더니 뚜껑이 다시 열리고 빛이 쏟아졌어. 참 이상한 기분이었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난 나는 책상에 앉아 ‘버킷리스트’를 썼어. 죽기 전에 꼭 하고 싶은 목록 말이야. 그동안 많이 적어봤었는데 이렇게 죽음 체험을 하고 적으려 하니 멍해졌어. 주위에선 사람들이 흐느껴 우는 소리와 연필의 사각거림 소리만 들려왔지. 그동안 많이 적어봤던 목록이었고, 하고 싶은 일들이 참 많았는데 죽음을 체험하고 난 지금 모든 게 다 의미 없다는 생각이 들었어. 죽음을 앞에 두고 ‘책 1000권 읽기’ 따위가 다 뭐냔 말이야.
어떤 일들도 다 의미가 없게 느껴져서 한동안 난 아무것도 쓸 수가 없었어. 한참 후 내가 버킷리스트 첫 번째에 꾹꾹 눌러 적은 말이 뭐였는지 알아?
바로 “더 많이 사랑하기”였어.
왜 그토록 사랑에 인색했을까. 뭐가 무서워서 그렇게 내 사랑을 꽁꽁 감춰두고 주지 않았나. 하는 생각들이 들었던거야. 죽음 앞에 모두 부질없는 것을 말이야. 더 많이 사랑하고 사랑을 표현할 것을.
엄마. 요즘 나는 사랑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 엄마는 “잘됐네. 이 참에 빨리 좋은 남자나 좀 만나라.” 하겠지? 노력은 해볼게. 잘 될진 모르겠지만 말야.
그리고 사랑을 좀 더 표현하고 사랑을 베푸는 그런 내가 되도록 해볼게. 엄마. 사랑해.
++
삶의 무의미하다고 느껴질 때.
사무치게 외로울 때.
내가 싫어질 때.
나만 혼자라고 느껴질 때.
읽어보길 추천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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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2023.04.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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